[시조시인·여행작가 신양란] 이 원고를 쓰는 날이 공교롭게도 2024년 마지막 날이다. 이걸 마무리하면 2025년의 새로운 시간이 시작될 것 같다. 꼭 일 년 전, 그러니까 2023년과 2024년이 바통 터치를 하는 순간 우리 부부는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었다. 보름 동안 로마를 돌아다니다가 피렌체로 이동하여 송구영신을 했다. 피렌체 여행을 준비하며 숙소를 정할 때 어려움이 많았다. 몇 년 전 피렌체에서 조식 포함 10만 원 정도 하는 실라호텔에서 묵었는데, 그곳은 베키오 다리를 건너 몇백 미터만 걸으면 되니 편리했다. 미켈란젤로 언덕 아래에 위치해 일몰을 보고 숙소로 돌아가는 데도 어려움이 없어 좋았다. 그래서 작년에도 그곳에 묵을 생각으로 검색해 보니 숙박비가 두 배 이상 뛴 게 아닌가. 아마도 연말연시 휴가 기간이라 그랬던 것 같은데, 어쨌든 예상보다 호텔비가 비싸니 떨떠름했다. 다른 호텔들도 마찬가지여서, 구시가지 안에 있는 곳은 다 1박에 20만~30만 원 정도로 검색됐다. 나는 그 돈이면 차라리 외곽으로 나가서 시설이 좋은 호텔에서 묵는 게 낫겠다고 판단하고 힐튼 호텔을 예약했다. 호텔 예약 사이트 설명에 의하면 셔틀버스가 있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까지 운행한다고 하니 크게 불편할 것 같지 않았다. 막상 가보니 셔틀버스는 이용하기 어려웠고, 시내버스와 트램을 환승해야만 구시가지로 갈 수 있었다. 다만 시내버스도 트램도 붐비지 않아 이용할 만했다. 힐튼 호텔이야 우리 호주머니 사정으로는 황감한 숙소라 시설이 어떻고, 조식이 어떻고 하는 말할 계제가 아니다. 그런데 그곳은 우리에게 생각지도 못한 멋진 선물을 주었다. 오늘은 그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피렌체 구시가지는 옛 모습을 고수하는 까닭에 고층 건물이 없다. 조토의 종탑이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돔이 전망대 역할을 하고,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바라보면 구시가지 전체가 눈에 들어올 정도이다. 그러니 구시가지 안에 있는 숙소라면 3~5층 정도가 고작일 게다. 그러나 외곽에 위치한 힐튼호텔은 16층짜리 건물이었고, 우리 방은 6층에 있었다. 창문 너머로 구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게 신기했지만, 그건 뭐 별 거 아니었다. 12월 31일에서 새해 1월 1일로 바뀌는 순간, 창밖에 펼쳐진 멋진 광경에 비하면 말이다. 그 전날 저녁 내내 호텔 앞 공터에서 폭죽을 펑펑 터뜨려대기에 동네 아이들이 장난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해피 뉴 이어 불꽃놀이를 위한 예행연습이었음을 뒤늦게 알았다. 시곗바늘이 자정을 지나는 순간, 갑자기 창밖이 환해지면서 하염없이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런 불꽃놀이가 피렌체 전역에서 30분 동안 계속되었다는 점이다. 불꽃 모양은 소박하고 단순했다. 서울 불꽃 축제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하고 웅장한 불꽃에 비한다면 귀여운 수준이었다. 그러나 피렌체 시내 곳곳에서 동시에 새해를 축하하기 위해 쏘아올리는 불꽃은 나름대로 감동적이었다. 30분이 지나자 축제 열기는 시나브로 잦아들었고, 피렌체는 적막에 잠겼다. 그 모습을 창문 밖으로 바라보며, 나는 새해가 시작되었음을 실감했다. 매우 특별한 새해맞이였다. 만약 그때 구시가지 호텔에 묵었다면 불꽃놀이 하는 줄은 알았겠지만, 시내 곳곳에서 터지는 불꽃은 볼 수 없었겠지. 그래서 힐튼호텔을 선택하길 잘했다 여기며 피렌체에서 보낸 시간을 그리워한다.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여행자의 성당 공부><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