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력의 질긴 바퀴벌레… 살충제 적응하다
바퀴벌레, 지구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 녀석들은 끈질긴 생명력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공룡이 멸종할 때도 살아남았고, 빙하기도 버텨낸 참 대단한 녀석들이다.
바퀴벌레의 무시무시한 ‘생존력’은 뛰어난 ‘적응력’에서 발현된다. 이들은 짧은 순간에도 생존을 위해 입맛을 바꾸고, 교미 방식까지 바꿨다.
지난 2022년 5월 미국 롤스캐롤라이나주립대 곤충학 연구진은 권위 있는 생물학계 저널인 ‘커뮤니케이션 바이올로지’에 한 편의 연구를 소개했다.
사람들이 흔히 보는 바퀴벌레는 독일바퀴·미국바퀴·일본바퀴·먹바퀴 등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사람과 가까운 바퀴벌레가 ‘독일바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관찰되는 종이기도 하다.
연구에 소개된 바에 따르면 바퀴벌레의 사랑은 다소 과격하다. 암컷 독일바퀴에서 퍼져나온 페로몬이 수컷 독일바퀴를 유혹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사랑이 시작된다.
페로몬에 이끌린 수컷 독일바퀴는 암컷과 접촉하면서 등의 날개를 펼친다. 곧이어 숨겨진 샘이 드러나고 여기서 달콤한 분비물이 나온다.
이 분비물은 암컷을 유혹하는 데 쓰인다. 단맛을 좋아하는 암컷은 수컷의 분비물을 맛보기 위해 수컷의 등 위로 올라타고, 수컷은 이때 자신의 생식기를 암컷의 몸 안에 삽입한다.
수컷의 음경에는 갈고리가 달려 있는데 수컷은 이 갈고리를 이용해 최대 90분 동안 암컷과 붙어 있는다. 이 시간 동안 정자를 생산해 암컷 몸 안으로 밀어 넣고, 번식에 성공한다.
사랑 방식도 바꿨다
다만 이러한 바퀴벌레의 사랑 방식은 최근 들어 변화하고 있다. 90분 동안 이어지던 사랑은 3초로 짧아졌다.
1980년대 독일바퀴가 ‘단맛’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해충 구제업자들은 달달한 물질에 살충제를 섞어 바퀴벌레 퇴치제를 만들었다. 사람 입장에서는 획기적이었지만 바퀴벌레에겐 재앙인 셈이다.
‘죽음의 단맛’을 본 독일바퀴 중에는 단맛을 ‘쓴맛’으로 느끼는 개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단맛을 좋아하는 독일바퀴는 살충제에 의해 죽고, 단맛을 싫어하는 개체들이 크게 늘어나 이제는 거의 모든 바퀴벌레들이 단맛을 좋아하지 않게 됐다.
바퀴벌레의 사랑에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컷의 등에서 나온 달콤한 분비물이 암컷을 유혹하는 수단이었는데, 암컷들이 더 이상 단것을 먹지 않으면서 수컷 독일바퀴 사이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암컷은 분비물의 단맛을 느끼고 그대로 도망가 버리니 제대로 된 교미가 이어질 수 없다. 수컷이 교미를 시도할 때 이미 암컷은 사라지고 없는 셈이다.
이대로라면 바퀴벌레가 ‘멸종’되는 게 맞지만 이들은 또 한 번의 진화를 통해 적응했다.
암컷이 등의 분비물을 맛보고 도망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3초가 걸린다. 본래 90분 동안 교미하던 수컷들은 이에 맞춰 자신의 교미 시간을 3초로 단축시켜 버렸다.
또 암컷을 유혹하는 분비물의 레시피를 바꿔서 단맛마저 줄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발견한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곤충학 연구진에 따르면 독일바퀴의 이러한 변화는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비슷하게 관찰된다고 한다.
아마 단 맛에 살충제를 섞는 바퀴벌레 퇴치제를 사용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사람은 또다시 바퀴벌레를 죽이기 위해 새로운 살충제와 퇴치 전략을 세우겠지만, 바퀴벌레 또한 이에 기막히게 적응하며 끝까지 ‘공존’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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