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척수액(CSF)을 통해 뇌와 신경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두개골 내 인터페이스(ECI)’가 개발됐다. 두개골에 물리적 손상을 가하지 않고 신경계 질환을 진단하거나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Nature Biomedical Engineering」에 게재됐다.
척추를 통해 뇌까지 접근하는 방법
미국 라이스 대학의 전기·컴퓨터·생체공학 교수인 제이콥 로빈슨과 텍사스 의과대학의 신경외과 교수 피터 칸이 이끄는 연구팀은 두개골 내에서 뇌를 보호하고 영양 공급 및 노폐물 제거를 담당하는 뇌척수액을 통해 뇌에 접근하는 방법을 시도했다. 그들은 이를 두개골 내 인터페이스(Endo Cisternal Interface, ECI)라 명명했다.
두개골에 구멍을 뚫는 대신, 허리 부위의 척추 사이에 가느다란 바늘을 사용해 유연성이 높은 카테터를 삽입한다. 이 카테터는 전자기력을 통해 작동하며, 전극이 들어있어 신경 신호 기록 또는 신경 자극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카테터는 척추 공간에서 뇌실까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뇌 신경계에서 발생하는 신호를 기록하거나 자극을 가하는 등의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피터 칸 교수는 “이것은 간단하면서도 최소 침습적인 방식으로 뇌와 척수에 동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최초의 기술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뇌졸중 환자의 재활부터 간질 모니터링까지 다양한 신경학적 분야에서 새로운 치료법의 가능성을 제시한다”라고 말했다.
양 모델 통해 가능성 확인
연구팀은 이 기술의 실용성을 검증하기 위해 양을 모델로 삼아 실험을 수행했다. 먼저 뇌와 척수 주변에 있는 ‘내흉골’의 공간의 구조적 특징과 크기를 분석했다. 그런 다음 자기공명영상(MRI)을 활용해 뇌척수액이 존재하는 공간의 크기를 측정했다. 그런 다음 양을 대상으로 카테터를 삽입하고 실험을 진행하면서 인간으로부터 측정한 결과값과 대조하며 ECI의 실현 가능성을 검증했다.
연구 결과, 카테터 전극은 성공적으로 뇌까지 전달됐다. 뇌실 공간과 뇌 표면으로 유도돼, 외부에서 보내는 전기 자극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또한, 전자기 기반의 임플란트를 사용해, 근육 활성화와 같은 전기 생리학적 신호를 기록할 수도 있었다. 뇌로 전달된 카테터는 30일 정도 기능을 유지하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ECI는 별도의 약물이 없이도 신경계 내에 있는 목표 지점에 접근할 수 있다. 기존의 혈관 내 신경 인터페이스의 경우, 항혈전제가 필요하며 혈관 크기 및 위치에 따라 접근이 제한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점에서도 더욱 월등한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신경계 관련 질환, 치료 접근성 향상 기대
인간 신경계에서의 성능 문제, 안정성이 유지되는 기간 문제, 독성과 관련된 안전 문제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보다 면밀한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그를 모두 넘어선다면 ECI 기술은 광범위한 가능성을 갖게 된다.
특히 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해 신경 회복을 촉진할 수 있게 된다면, 뇌졸중을 겪은 환자의 재활에 획기적으로 기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특히 카테터를 통한 전기적 자극은 뇌 가소성을 통한 뉴런과 시냅스 재형성을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뇌전증이나 간질과 같은 발작성 질환에도 활용할 수 있다. 투여된 카테터를 기반으로 상시 모니터링이 가능할 것이며, 필요한 위치에 자극을 줄 수 있으므로 발작을 예방하거나 발작 빈도를 줄이는 등의 접근이 가능할 수 있다. 같은 원리로 퇴행성 질환을 비롯한 다양한 신경계 질환에도 적용할 수 있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이 기술은 향후 더욱 정밀하고 효과가 뛰어난 ‘신경 자극 장치’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의료 현장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과 결합한다면, 보다 정밀한 뇌파 분석과 개인의 증상에 따른 맞춤형 자극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존에 개발된 신경 분야 인터페이스와의 융합을 통해 더 높은 효율성을 갖춘 시스템을 이루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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