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배추에 진딧물이 나타났다 [윤용진의 귀촌일기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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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에 진딧물이 또 나타났어!”

아내가 호들갑을 떨며 나에게 소리쳤다. 진딧물이라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텃밭으로 달려갔다. 나는 배추에 진딧물이 나타났다는 소리만 들으면 심장이 쿵쿵거린다. 벌써 몇 년째 진딧물에 당하고만 있으니, 나도 모르게 몸이 먼저 반응하나 보다. 그나마 진딧물을 일찍 발견하면 먹을 게 남지만 늦게 발견하면 그해 김장 배추는 끝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난 진딧물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텃밭이나 과수원을 가꾸면서 제일 만만한 게 바로 진딧물이었으니까. 대개 가뭄이 들면 진딧물이 극성을 부리는데, 진딧물을 해치우는 일쯤은 누워서 떡 먹기였다. 아내는 채소에 바글바글 붙어있는 진딧물을 보면 징그럽다고 도망부터 가려 한다. 하지만 진딧물은 보기와는 달리 쉽게 제거할 수 있는데, 간단하게 비눗물만으로도 처치할 수 있다.

배추에 진딧물이 보인다. 약을 치기에는 이미 늦었다. ⓒ윤용진

하지만 김장 배추에 나타나는 진딧물은 또 다른 얘기다. 진딧물은 초기에는 잘 보이지 않다가 뒤늦게 나타난다. 배추 결구가 시작될 때쯤에 진딧물은 배추 속에 자리를 잡는다. 날씨가 추워지면 진딧물은 더 깊이 파고든다. 배추를 수확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농약을 칠 수도 없고, 약을 친들 깊이 파고든 진딧물이 죽을 리도 없다. 결국 진딧물이 깨알같이 박혀있는 배추는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진딧물이 발생하면 주위로 퍼져나가는데, 밭 전체가 망가지는 건 시간문제다. 방제를 하기에 조금 늦었다 싶으면 김장을 빨리 담그는 게 그나마 피해를 줄이는 길이다. 진딧물이 배춧속까지 깊이 파고들기 전에 말이다.

바로 재작년에도 그랬다. 과수원 일에 매여 있다가 뒤늦게 진딧물을 발견했다. 더 이상 시간을 끌다가는 남아나는 배추가 하나도 없을 것 같았다. 그때 급하게 김장부터 담갔는데, 진딧물이 붙어있는 잎을 떼어내니 배추 크기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파란 배춧잎은 하나도 없는 속도 차지 않은 노란 배추만으로 김장을 담갔던 처참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농사를 처음 지었던 2007년에도 배추를 제법 잘 키웠던 것 같다. ⓒ윤용진

예전에는 배추 키우는 일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가을에 김장 배추를 심으면,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자랐던 것 같다. 배추 모종을 심은 뒤, 벌레들이 모종을 갉아먹지 않도록 곧바로 방제를 한 차례만 해주면 끝이었다. 혹시 나중에 배추벌레가 보이면 잡아주면 되고. 이른 아침이면 배추 속 깊숙이 숨어있던 벌레들이 밖으로 기어 나오는데, 그때를 놓치지 않고 잡아주면 된다.

아내는 배추벌레가 징그럽다고 젓가락으로 잡고 나는 장갑 낀 손으로 잡는다. 어려서부터 농사를 지어오신 옆집 아주머니는 맨손으로 배추벌레를 잡으신다. 난 아직도 맨손으로 잡으려면 찜찜하다.

한동안은 큰 배추를 만드는 데 꽂혀 지내기도 했다. 남들보다 큰 배추를 만들어 보겠다고 온갖 영양제를 배추에 뿌려주기도 했다. 내 노력이 먹혔는지 한 포기에 9.5kg 짜리 배추도 만들어봤다. 그때 배추가 너무 커서 여덟 쪽으로 쪼개었는데 아내는 배추 한쪽도 무겁다고 투덜댔다. “나는 작은 배추가 좋다니까!”라며 아내가 나를 무섭게 째려봤다. 그냥 내버려 두었으면 틀림없이 10kg도 넘는 배추를 만들었을 텐데, 그 이후로는 어쩔 수 없이 배추를 작게 키우고 있다.

예전에 배추 키우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때는 병도 없이 잘 자랐다. ⓒ윤용진

언젠가부터는 배추 키우는 일이 시들해졌다. 배추를 크게 키워본들 잔소리만 들을 뿐이고, 농사에 대한 열정도 서서히 식어갔다. 최근 들어서는 배추밭이 망가지기까지 했다. 예상치 못한 날씨의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탓이다. 농사 일지를 찾아보면 최근 3년간 한 해도 진딧물로 애를 먹지 않은 때가 없었다.

올해는 무름 병(배추 밑동이 썩어가는 병)까지 발생했다. 그러고 보니 무름 병으로 김장 배추 망쳤다는 분들이 내 주위에도 많으시다. 우리 집은 무름 병 증세가 보이는 배추를 초기에 다 뽑아버렸다. 공연히 치료한다고 돈 들이며 고생하느니, 미련 없이 뽑아버리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그 때문에 배추밭 여기저기에 듬성듬성 빈자리가 보인다. 몇 포기 뽑아버린 것 같은데 가만히 보니 빈자리가 꽤나 많다. ​

올해 배추는 꼴이 영 말이 아니다. 여기저기 빈자리도 많고. ⓒ윤용진

올 가을에는 수시로 배춧속을 들여다봤다. 배추를 많이 심지도 않았지만 뽑아버린 배추도 제법 됐으니까. 이상하게도 배추를 많이 심은 해에는 농사가 잘 되지만, 조금 심은 해는 꼭 흉작이 되는 것 같다.

10월 19일. 역시나 진딧물이 나타났다. 다행히도 배추 서너 포기에서만 진딧물이 보였다. 배추는 이미 속이 차기 시작했고, 농약을 치기에는 시기적으로 늦었다. 며칠만 지나도 진딧물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평소 같으면 비눗물로 진딧물을 잡겠다고 나섰겠지만 이번에는 한가롭게 보낼 시간이 없었다. 마음이 급해 천연자재라는 ‘님오일’을 구입했다. 설명서를 보면 진딧물을 한 방에 몽땅 해치울 수 있어 보였으니까. 예상을 못 한 건 아니지만, 천연자재는 농약만큼 강력하지가 않다.

겨우 진딧물을 제거했다 싶었는데, 11월 초순이 돼 진딧물이 또다시 나타났다. “올해 김장 배추 사야 하는 거 아냐?” 불안한 듯 아내가 물어왔다.

“글쎄, 배추 몇 포기에서만 진딧물이 보이는데?” 늦기 전에 ‘님오일’을 한 차례 더 뿌려줘야겠다. 이상 기온으로 11월 초순에 날씨가 따뜻하니 벌레들이 기승을 부리나 보다. 하지만 우리 집 배추는 아직 속이 덜 찼고, 김장을 하려면 더 기다려야 한다.

아내는 큰 배추가 싫다고 한다. 큰 배추가 이렇게 멋지기만 한데. ⓒ윤용진

최근 들어 왜 우리 집 밭에 진딧물이 기승을 부리는 걸까? 단순히 날씨 탓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내 재배법을 따라 배추를 키우는 지인 한 분은 진딧물을 전혀 보지 못했다고 하신다. 문득 내가 토양 살충제를 너무 조금 뿌려준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딧물은 땅속에서 올라온다. 그런데 우리 집은 토양 살충제를 모종 심을 자리에만 조금씩 뿌려주었으니, 땅속에 있는 진딧물을 죽이기에는 너무 양이 적었던 것 같다. 거기에다가 11월 초에도 한여름 날씨가 계속되었으니 여름인 줄 알고 진딧물들이 땅 밖으로 기어 나왔나 보다.

요즘은 농약 없이는 김장 배추마저도 제대로 키울 수 없는 것 같다. 다시 생각해 보면, 진딧물이 많이 꼬이지 않는 작물에는 모종 심을 자리에만 토양 살충제를 뿌려줘도 된다. 하지만 가을배추처럼 진딧물에 취약한 작물에는 밭 표면에 골고루 뿌려주는 게 나을 것 같다. 올해는 이미 지났으니 어쩔 수 없다지만, 내년부터는 확실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어떤 이유 때문이든 농사를 망치면 나만 손해니까.

농사 경력 17년인데 아직도 요 모양이란 생각에 문득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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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귀촌인을 위한 실전 텃밭 가꾸기

저자
윤용진
출판
W미디어
발매
2022.03.19.

글·사진=윤용진(농부·작가)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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