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개발은 대표적인 ‘고위험 고수익(High Risk-High Return)’ 사업이다. 혁신 신약 개발에 성공할 경우 수조원대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성공 가능성은 매우 낮다. 뿐만 아니라 반도체, 자동차 등 타 제조업의 개발기간이 평균 3년인 것에 비해 제약바이오는 호흡이 매우 길다. 제약바이오 산업의 핵심인 신약 연구개발(R&D)에는 약 1조~2조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개발 기간은 평균 10년 이상이 소요돼 종종 ‘마라톤’에 비유되곤 한다.
신약 개발 과정별로 △타깃 발굴 2~3년 △후보물질 발굴 및 스크리닝 0.5~1년 △후보물질 최적화 1~3년△독성실험(비임상) 1~3년 △임상1~3상 5~6년 △허가 1~2년 등이 소요된다. 이처럼 개발기간이 긴 이유는 신약 개발에 주로 활용되는 수억개에 달하는 화합물을 살펴야 하고 의약품 특성상 인체 안전성과 효능을 명확하게 증명해야 해서다.
전통적인 신약 개발 과정에서 후보물질 탐색, 선정 등 신약 후보물질 발굴을 위해 전문인력이 400~500개에 달하는 문헌과 논문, 보고서 등을 분석, 필터링하는 과정을 거친다. 전체 신약 개발 비용 중 3분의 1 이상이 후보물질 발굴 단계에서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4~7년 걸리는 신약 초기 단계, AI로 1년만에 끝내
반면 인공지능(AI)은 한번에 100만 건 이상의 논문 탐색이 가능해 초기 단계부터 시간과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 타깃 발굴, 후보물질 스크리닝, 물질 최적화 등에만 총 4~7년 소요되지만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1년이면 신약 후보물질 발굴이 가능하다.
전임상부터 임상 1~3상까지 10년가량 소요되던 개발기간도 7~8년으로 줄일 수 있다. 전주기 신약 R&D에 소요되는 기간이 절반가량 단축되는 셈이다. 현재 수조원이 드는 비용도 최소 6000만원 수준까지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국내외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신약 R&D에 AI 활용을 확대하면서 세계적으로 신약 후보물질 발견을 위한 AI 솔루션 시장의 규모도 증가하고 있다.
AI 신약 개발 글로벌 시장 규모는 2022년 6억980만 달러(약 8000억원)에서 연평균 45.7% 성장해 오는 2027년 40억350만 달러(약 5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국내 AI신약개발 생태계 활성화와 경쟁력 확보를 위해 연합학습 기반 AI신약개발 플랫폼 구축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우리나라도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도로 지난해부터 일명 ‘K-멜로디(MELLODDY, Machine Learning Ledger Orchestration for Drug Discovery)’ 사업인 ‘연합학습 기반 신약개발 가속화 프로젝트’를 본격 진행하고 있다. K-멜로디는 유럽의 EU-멜로디를 벤치마킹한 사업이다.
EU-멜로디는 AI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신약 후보물질 발굴을 지원하는 AI 예측 모델 연합학습 플랫폼 개발을 위해 유럽의 산학연이 함께 진행한 대규모 민관협력(Public Private Partnership, PPP) 프로젝트다.
EU-멜로디 사업에는 얀센, 아스트라제네카, 노바티스 등 유럽의 대형 제약기업 10곳과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NVIDIA), AI 신약개발 회사 익토스(IKTOS) 등 AI·IT 기업 7곳이 참여했다. 지난 2019년 6월부터 2022년 5월까지 AI 신약개발에 AI 플랫폼을 적용한 결과 개별 기업이 AI 모델을 개발하는 것보다 다수 기업들이 연합한 AI모델의 성능이 최대 4% 뛰어난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K-멜로디’ 사업에 모이는 관심, 신약개발 성공률 높여
K-멜로디 사업에는 22개 제약사와 다수 AI·IT 기업, 대학 및 공공기관이 참여해 기업간 분산된 데이터를 모아 공용 AI 모델을 개발, 이를 신약 개발 프로젝트에 활용할 예정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2028년까지 5년간 신약 개발에 필수적인 △물성·투과도·분포용적·수송체 약물 분포 영향력 예측 △대사 안정성 △심장·간·내분비 독성 △발암성 등 예측을 위한 연합학습 AI 모델 개발과 함께 AI플랫폼이 적극 활용될 수 있도록 약 348억원을 지원한다.
K-멜로디 사업이 성공적으로 실용화된다면 개별적으로 AI 신약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제약기업들간 협업 활성화를 이끌어낼 수 있고 아직까지 국내에서 성공하지 못한 혁신 신약 개발의 가능성도 한층 높일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신약 후보물질 발굴부터 질환 맞춤형 약물 개발까지 전 과정에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하면서 신약 개발 속도와 성공률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면서 “국내 제약기업들도 AI 기업과의 협력을 강화하며 신약 개발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