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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의 미봉책…‘고려아연 사태’로 터졌다 [기자수첩-산업]

고려아연, 해외 계열사 이용해 순환출자 구조 형성…경영권 방어

공정위, 2015년 롯데 경영권 분쟁으로 순환출자 문제 해소 나서

해외 계열사 통한 순환출자는 단순 공시 강화만…규제 미도입

고려아연 사태 미규제 시 다른 대기업도 모방할 가능성 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연합뉴스

살면서 더러 그런 일들을 겪을 때가 있다. “더 급한 일이 있으니까, 우선은 이정도로”. 그렇게 대충 넘겼던 일이 잊힐 때쯤 거대한 폭풍우를 몰고 온다. ‘설마 이 일이 문제가 될까’하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잠재우고 한 차례 큰 고비를 넘기고 나면 사소한 일로 덮어둔 일이 반드시 화근이 된다.

최근 영풍·MBK파트너스와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고려아연의 순환출자 논란은 ‘덮어뒀다 화근이 된’ 대표적 사례다. 그걸 덮어둔 주체는 공정거래위원회다.

고려아연은 지난 1월 임시 주총 전날 호주에 설립된 손자회사인 선메탈코퍼레이션(SMC)을 이용해 순환출자 구조를 만들며 영풍의 의결권을 무력화시켜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 당초 이번 임시 주총 결과는 고려아연 지분율에서 우세했던 영풍·MBK의 승리가 예상됐으나 이 ‘한 수’로 뒤집혔다. 승부처가 된 한 수는 제도적 허점을 파고든 ‘꼼수’였다

영풍·MBK 측은 고려아연 경영진이 SMC를 동원해 경영권을 방어한 것이 배임에 해당하며, SMC의 영풍 지분 취득이 공정거래법상 순환출자 금지 조항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달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을 비롯해 고려아연, SMC의 전·현직 이사진을 공정위에 신고했다.

이에 한기정 공정위 위원장은 지난달 17일 고려아연의 해외 계열사를 활용한 출자 논란과 관련해 공정거래법 적용 여부를 면밀히 살펴보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다만 공정위는 현행법상 해외 계열사를 통한 순환출자는 규제 대상으로 인정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분명 국내에서는 1980년대부터 대기업집단 내 상호출자를 금지하기 위해 대대적 개혁이 있었는데 어찌 이런 한계가 생겼을까?

10년 전인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당시 롯데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해외 계열사를 통한 순환출자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롯데그룹의 순환출자 고리는 무려 75만여개에 달했다. 비판이 거세지가 롯데그룹은 2018년까지 모든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했다.

이에 공정위도 대응에 나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마련하기는 했다. 하지만 2020년 개정 당시 해외 계열사를 통한 순환출자 및 국내 기업의 해외 계열사 출자 현황 공시해야 한다는 단순 의무만 강화했을 뿐, 본질적인 규제는 도입하지 않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법의 빈틈이 생긴 것이다.

왜 당시 국외 계열사에 대한 규제를 도입하지 않았는지 묻자 공정위 답변은 이렇다. “당시 국회에서도 해외 계열사 관련 규제에 대해 깊이 논의했으나, 대기업 집단 시책이 국내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 해외 계열사까지 규제 범위를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한마디로 해외 계열사의 경우는 부차적인 문제로 봤기 때문에 미봉책으로 막은 것이다.

그 빈틈이 메워지지 못한 채 10년이 흘렀으니 현재 고려아연의 순환출자 탈법 논란은 이미 예견된 일이라 볼 수 있다. 롯데 사례 이후 10년이 지났는데도 국외 계열사를 통한 순환출자 규제가 미비한 것은 공정위의 책임이 크다.

그때 꼼꼼하게 꿰매 놓지 못한 허점을 파고 들었으니 봉합하기는 더 힘들어졌다. 양쪽이 사실관계부터 첨예하게 엇갈린 주장을 하고 있어 공정위가 언제 결론을 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인 상황이다.

특히 이번 사례는 사전적 규제 없이 사후 공시 강화에만 의존하는 방식이었는데, 결국 기업들이 그 허점을 찾아냈다는 점에서 정책 실패로도 볼 수 있다. 나아가, 정부의 대기업 신규 순환출자 구조 해소 노력이 무위로 돌아갈 가능성까지 높아졌다.

법의 허점을 이용한 새로운 경영권 방어 전략이 등장했음에도 이를 규제하지 않는다면, 하이트진로그룹 등 다른 대기업들도 같은 방식을 모방할 가능성이 큰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현재는 고려아연처럼 국외 계열사를 통한 순환출자 사례는 하이트진로그룹뿐이다.

실질적인 제재가 없으면 기업들이 알아서 법망을 피하는 수단을 개발하는 것을 용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공정위가 사태를 수습할 수단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고려아연의 순환출자 구조를 탈법행위로 규정하면 공정위는 탈법 행위 금지 규정에 따라 검찰 고발 또는 시정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롯데 사태 때 강경하게 대응하며 재벌개혁 기조를 내세웠던 공정위가 이번 사안에도 이중잣대가 아닌 엄중한 잣대로 판단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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