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논란 재점화…“다른 산업에도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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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세계보건기구(WHO) 본부 전경 [사진=뉴시스]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세계보건기구(WHO) 본부 전경 [사진=뉴시스]

【투데이신문 최주원 기자】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분류하려는 논의가 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질병분류에 포함시킨 이후 국내에서도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산업 위축과 낙인 효과를 우려하는 반면 일각에서는 체계적 관리 기준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게임산업협회 조영기 신임 회장은 29일 열린 취임 간담회에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저지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넷마블 대표 출신인 조 회장은 이번 발언을 통해 게임산업 보호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피력했다.

조 회장은 “질병코드가 공식화되면 게임은 단순한 창작 콘텐츠가 아니라 관리와 규제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며 “이로 인해 산업 성장, 투자 유치, 청년 일자리 창출 전반에 걸쳐 심각한 부작용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충분한 과학적 검증이 이루어지도록 정부, 국회, 의료계와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논란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게임이용장애의 질병코드를 국제질병분류에 포함시키면서 국내에서도 뜨거운 감자가 됐다.

국제질병분류 내 지침에 따르면 게임이용장애는 행동 장애의 하위 항목으로 정의하며 ▲게임에 대한 조절 상실 ▲게임이 일상생활보다 우선되는 경우 ▲부정적 결과에도 게임을 지속하는 행동 등이 최소 12개월 이상 관찰될 경우 이를 장애로 판단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에 최근까지도 국내에서 논의가 이뤄졌지만, 각 계층에서 게임중독 질병코드 등재에 대해 날 선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 28일 서울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게임특별위원회는 ‘게임이용장애 도입, 왜 반대하는가’를 주제로 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발제에 참여한 법무법인 대율 백주선 변호사는 현재 제시된 게임 이용 장애의 진단 기준은 9가지 중 5가지만 충족되면 진단이 가능하다는 점을 비판하며 불명확한 기준으로 질병 코드를 부여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 변호사는 “질병 코드 등재 시 과잉 치료, 불필요한 약물 처방, 게임에 대한 과도한 규제와 부정적 인식 등이 정당화될 우려가 있다”며 “게임 이용 장애를 마약, 알코올, 니코틴, 도박 중독 등과 같은 선상에 놓을 만큼 심각한 현상으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주장했다.

역시 발제에 참여한 OGN 남윤승 대표는 “게임은 크리에이티브 산업의 기반으로, 콘텐츠 시장의 31%를 차지하며 유튜브 시장의 42.7%가 게임 콘텐츠”라며 “게임이 중독 물질로 지정된다면 낙인 효과로 인해 인재 유입이 감소하고 창작자들은 자기검열을 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난 28일 서울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게임특별위원회가 게임이용장애 도입 논쟁을 주제로 정책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지난 28일 서울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게임특별위원회가 게임이용장애 도입 논쟁을 주제로 정책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게임업계에서는 게임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 콘텐츠 산업의 핵심이 된 만큼 게임 질병 등재는 창작자와 산업군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게임산업은 수출 효자 종목이자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경제 동력”이라며 “웹툰, 영화 등 다양한 IP와의 협업이 트렌드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게임 장애 도입은 게임뿐 아니라 여러 연관 산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질병코드 도입을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정책 토론회에 참관했던 한 익명의 시민은 “정신과적 장애 진단은 환자와 보호자의 진술을 수집하고 유사한 정신 질환을 체계적으로 고려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며 “낙인 효과에 대한 과도한 우려는 사실과 다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시민은 “질병코드가 명확히 마련되면 특정 취약 집단에 대한 과잉 처방 등 부작용을 줄이고 관리의 기준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말했다.

전문가들은 질병코드 도입 논의를 이어가기 전에 철저한 연구 기반이 선행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용인예술과학대학교 컴퓨터게임과 송두헌 교수는 일시적 현상으로 환자에게 낙인을 찍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12개월 이상의 추적 관찰이 필수적이지만, 현재 한국에는 게임이용장애 환자 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송 교수는 “과거 국내 정신의학과 의사가 진행한 연구에서 30명의 피실험자를 구하지 못해 중단된 사례가 있다”며 “환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연구 결과를 공개하는 것이 실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한편, 정부는 2019년부터 게임이용장애의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 등재 여부를 논의해왔으나, 현재까지도 문화산업계, 정신의학계,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 간 입장 차이로 2031년 시행 예정인 KCD 10차 개정안 반영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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