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해서 직접 뛴다?…’정용진 표’ 책임경영 본격 시동

[주간유통]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편집자]
또 한 해 멀어져간다
여러분은 언제 한 해가 마무리된다는 느낌을 갖게 되시나요. 아침 출근길에 찬바람이 몰아쳐 ‘아 좀 더 따뜻한 옷 입고 나올걸’이라는 생각이 들 때, 카페에 들어서서 고민 없이 “아이스 아메리카노 톨 한 잔이요”라고 외치던 제가 ‘아…따뜻한 아메리카노 달라고 할까’ 망설일 때 저는 한 해가 가고 있다는 걸 실감하는데요.
일을 하면서도 한 해가 끝나간다는 걸 느낄 때가 있습니다. 바로 신세계그룹, 롯데그룹, CJ그룹 등 유통업계의 대기업들이 정기 임원 인사를 발표할 때입니다. 일반적인 규모의 기업들은 대표이사가 바뀌는 정도만 뉴스거리지만 이정도 규모의 그룹들은 인사 자체가 뉴스거리입니다.

누가 새로 자리를 얻고 누가 잃었는지도 봐야 하고 전반적인 인사의 흐름을 보며 올해의 인사는 어떤 테마였는지도 분석해야 합니다. 외부 인사를 충원했는지, 젊은 인재는 얼마나 키웠는지, 여성 인재는 발굴했는지도 이슈죠. 어떤 때는 실적이 좋아 승진자가 많고, 또 어떨 때는 책임을 묻는 인사 때문에 많은 분들이 옷을 벗기도 합니다.
특히 최근 몇 년간은 인사 시기가 점점 당겨지는 추세입니다. 예전엔 11월 말에나 나오던 정기 인사가 이제는 10월부터 나오고 있죠. 인사가 빠르다는 건 상황이 절박하다는 의미입니다. 지난해엔 신세계가 추석 전인 9월 말 정기 임원 인사를 단행하는 강수를 두기도 했습니다.
올해에도 유통업계에서 스타트를 끊은 건 신세계였습니다. 업계에선 추석 전에 인사가 날 수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정상적으로(?) 추석 이후인 지난 23일 정기 임원 인사를 실시했습니다. 특히 이번 인사는 정용진 회장이 전권을 쥔 뒤 이뤄진 첫 정기 임원 인사라는 점에서 정 회장의 인사 방향성을 엿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변화의 용진, 안정의 유경
이번 인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당연히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이마트입니다. 이미 지난 6월 정 회장은 자신이 이마트와 신세계프라퍼티의 각자대표이사를 맡아 책임경영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요. 이번 임원인사에서 공식적으로 대표 자리에 올랐습니다.
정 회장을 보좌할 투톱으로는 김홍극 신세계까사 대표가 발탁됐습니다. 김 대표는 2018년 인수 이후 적자를 면치 못하던 신세계까사를 2024년 흑자로 돌려놓는 확실한 성과를 냈습니다. 지난해엔 매출과 이익이 모두 줄었지만 부동산 경기 불황이라는 ‘핑계’가 있었습니다. 김 대표는 앞서 신세계TV쇼핑 대표 시절에도 흑자전환에 성공한 바 있습니다. 내년엔 이마트와 SSG닷컴 대표를 맡으며 그룹의 중추 역할을 할 전망입니다.
재미있는 건, 김 대표가 2018년 신세계TV쇼핑 대표로 부임한 이후 지금까지 8년간 ‘신세계백화점’ 계열에서 활약해 왔다는 점입니다. 이마트 계열사들과 신세계백화점 계열사들은 임원 인사 역시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인재 기용’에 있어서는 분리 없이 ‘효율’만을 고민한다는 방증입니다.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경영전략실도 물갈이됐죠. 최택원 SSG닷컴 대표가 경영지원총괄로, 박승학 조선호텔앤리조트 레저사업부장이 대외협력본부장 자리에 올랐습니다. 김 대표가 이마트로 떠난 신세계까사는 CJ올리브영을 오래 책임져 왔던 허민호 대표가 ‘컴백’했습니다.
반면 올해 실적이 좋았던 정유경 회장의 신세계백화점 쪽은 인사폭이 크지 않았습니다. 김 대표가 이마트로 옮긴 신세계까사 대표 자리에 허민호 대표를 앉힌 게 눈에 띄는 정도입니다. 허 대표는 신세계백화점과 신세계인터내셔날에 있다가 동화면세점을 거쳐 CJ, 코스맥스에 몸담았습니다. 23년 만에 친정에 돌아온 셈입니다. CJ올리브영을 지금의 위치에 올린 역량을 통해 까사미아와 JAJU를 키우는 미션을 받았습니다.
가차없다
업계에선 올해 정 회장의 인사가 ‘신상필벌’에 무게를 뒀다고 평가합니다. 계열사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면 과감하게 승진시키고, 성과가 미흡하다면 여지없이 내쳤다는 겁니다. 경영전략실 멤버가 대거 교체된 것 역시 지난 6월의 ‘스타벅스 논란’에 대한 책임을 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사실 이전에도 정 회장은 과감한 인사를 한다는 평이었습니다. 회장직에 오른 지 한 달 만인 2024년 4월 유동성 위기에 빠진 신세계건설의 대표를 교체했고요. 두 달 후엔 G마켓과 SSG닷컴의 대표도 물러나도록 했습니다. 세 대표는 정기 임원 인사를 무사히 넘긴 지 반 년도 되지 않아 짐을 싼 셈입니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임기’는 무의미하다는 신호입니다.

정 회장이 실권을 잡으면서 매해 임원진들의 연령이 크게 낮아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지난해 임원 인사에서는 총 32명의 신규 임원 중 44%인 14명이 40대였습니다. 1960년대생 임원들이 대거 퇴임하며 그 자리를 1970년대생들이 채웠습니다. 40대 대표이사도 3명이나 배출했죠.
올해에도 마찬가지로 1960년생 임원들이 비운 자리를 1970년대생들이 채웠습니다. 신규 임원 36명 중 14명이 40대에 임원을 달았습니다. 2024년 8%였던 그룹 내 40대 임원 수는 이제 18%가 됐습니다. 명백한 세대 교체 신호입니다.
인사가 마무리됐다고 안심할 수도 없습니다. 신세계 측은 “이번 인사를 시작으로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는 수시 인사를 단행해 조직 쇄신 작업을 이어나갈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유임됐다고, 신규 선임됐다고 해서 자리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미 ‘전례’도 있습니다.
신세계그룹은 향후 몇 년간이 그룹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계열 분리라는 큰 숙제도 있고, 리플렉션AI, 스카이댄스 등 글로벌 기업들과의 협업도 걸려 있습니다. 이같은 시기에 그룹의 오너가 전권을 쥐고 인사에 나선다는 건 본인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뜻입니다. 정용진의 ‘책임경영’은 이제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