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 이코노미]소음없는 가전의 소음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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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특유의 목소리가 있듯 가전제품에도 특성에 따라 고유의 시그니처 사운드가 있다. 오븐은 따뜻하고 아늑함, 에어컨은 청량하고 시원함, 로봇청소기의 사운드에서는 청결한 느낌이 전해져온다.

국내 가전업계는 1초도 되지 않는 이 찰나의 소리를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소리만으로도 어느 브랜드의 제품인지, 제품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이는 곧 회사의 아이덴티티와도 직결된다. 소리는 회사와 제품이 소비자의 일상에 어떤 방식으로 자리 잡을지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청각적 사용자 인터페이스(AUI, Auditory User Interface)를 구성하는 ‘사운드 디자인’을 강화하고 있다.

가전제품은 집안에 항상 자리하고 있다는 특성 때문에 소음을 줄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이 때문에 가전제품에서 나는 사운드 또한 사용자에게 거슬리지 않으면서도 시각·촉각적 유저 인터페이스(UI)와 어우러져 직관적으로 상황을 인지할 수 있도록 돕도록 만들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일종의 공감각적 효과를 겨냥한 셈이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나는 셔터 소리나 전기자동차 시동음 등이 AUI가 적용된 사례다.

사소하게 느껴지는 이 차이는 국내 업체들이 해외 가전 제조사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해준 차별점 중 하나다. 세탁기를 예로 들면 해외 제조사가 만든 세탁기에서는 단순히 삑삑거리는 비프(beep)음이나 “빨래가 완료됐습니다” 같은 딱딱한 음성이 나오지만,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제품에서는 경쾌한 노래가 나와 소비자들에게 이색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삼성전자는 삼성 생활가전의 브랜드 사운드인 ‘비욘드 더 호라이즌(Beyond the Horizon)’을 중심으로 다양한 제품들의 감성을 표현하고 있다. 갤럭시 스마트폰 브랜드 사운드로 스마트폰 벨소리로 사용하는 ‘오버 더 호라이즌(Over the Horizon)’의 형제격이다. 삼성전자는 비욘드 더 호라이즌의 기본 멜로디를 오븐, 인덕션, 냉장고, 청소기, 세탁기 각 가전의 특성에 맞는 새로운 변주곡과 편곡으로 만들어 넣었다. 이 소리들은 각기 다른 제품들에서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소리를 낸다.

비욘드 더 호라이즌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미지는 ‘편안함’이다. 사용자가 제품을 사용하는 동안 느끼는 사운드의 통합적인 감각이 직관적이며, 집이라는 공간에 적합한 ‘편안한 감성’을 주는지를 고려해 디자인한다. 삼성전자는 멜로디도 ‘메시지’라는 생각으로 궁극적으로는 ‘대화하는 가전’을 만들겠다는 것이 목표다.

LG전자는 ‘전략UX거버넌스팀’ 내에서 사운드 디자인 업무를 담당한다. 사운드만을 담당하는 직원뿐 아니라 다양한 담당자들이 팀 안에서 유기적으로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LG전자의 유명한 세탁기 사운드도 이 부서에서 만들어졌다. 한때 유튜브에서는 “띵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리리리, 띵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리리”하는 세탁기 종료음에 맞춰 악기를 연구하거나 춤을 추는 영상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LG전자 관계자는 “제품의 아이덴티티를 부여하는 요소 중 하나가 사운드”라며 “멜로디를 통해 회사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역할도 수행한다”고 말했다.

LG전자는 고객의 선호나 특정 시즌에 맞춰 사운드를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등 차별화된 경험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엔 세탁기, 건조기, 스타일러 종료음이 모두 같아 어떤 제품이 끝났는지 구분이 어렵다는 고객의 목소리를 반영해 기존 2종에서 12종으로 종료음과 시작음 등을 늘렸다. 고객은 익숙한 기본 종료음부터 클래식, 올드팝 등 다양한 멜로디를 취향대로 선택할 수 있다.

가전업계가 사운드 디자인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결국 소비자가 느끼는 자사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데 있다. 제품을 조작할 때 출력되는 소리가 심미적·사용적·기능적 가치를 담고 있다면 사용자가 제품과 브랜드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긍정적으로 개선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청각적 요소들을 고유한 형식으로 일관되게 구현해 기업 브랜드에 대한 감정, 기억, 행동을 불러 일으키는 비즈니스 전략인 ‘사운드 브랜딩’의 개념”이라며 “삼성 가전만의 아이덴티티 사운드를 계속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예주 기자 dpwngk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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