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파면 음식이 나온다?’ 굴삭기까지 동원한다는 이색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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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는 봤나 삼굿구이. 얼핏 들으면 영어와 합성어 같기도, 무속 행위의 이름 같기도 하다. 아리송한 이름이지만 실제로는 대마, 삼과의 식물을 삶는 행위를 뜻하는 ‘삼굿’에 구운 음식을 의미하는 ‘구이’를 더한 순우리말이다.

대마로 옷감을 짜 입던 옛 시절, 대마를 수확한 후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대마 잎을 삶는 데서 삼굿이라는 말이 나왔다. 삼굿을 할 때 대마 잎 옆에 커다란 솥을 놓고, 그 안에 고구마와 감자 등 온갖 구황작물과 돼지고기를 함께 넣고 증기로 삶아내는 요리법으로 발전하면서 ‘삼굿구이’가 등장했다. 일손이 필요한 농번기, 서로 도와 품앗이를 하던 마을 사람들의 기력을 챙겨준 든든한 보양음식이다.

삼굿구이는 강원 영월, 전북 무주 등 국내 농촌마을 중에서도 손꼽히는 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귀한 체험이다. 그중에서 전라북도 무주군 장안마을을 찾아 직접 체험하고 맛보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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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의 화제, 무주 장안마을

2019년 귀농해 2020년부터 3년째 장안마을의 이장에 역임하고 있는 박수훈(46) 이장. 평균연령 73세인 장안마을에서는 손꼽히는 젊은 피다. 소규모 텃밭을 일구는 것이 전부였던 장안 마을에 젊은 이장이 들어오면서 마을 분위기가 180° 달라졌다.

박이장은 ‘장안의 화제’라는 SNS 운영을 시작으로 ‘생생 마을 만들기 사업’ 등 다양한 마을 지원 사업에 참가하면서 장안마을 홍보에 힘썼다. 장안마을 주민들과 함께 마을 활성화 방안을 구상하던 중 마을 어르신들이 어린 시절 경험한 삼굿구이를 떠올렸다.

장안마을에서 처음으로 삼굿구이를 선보인 것은 2021년 11월. 무주 농어촌 지원센터의 협조로 시민에 시연을 보였다. 삼굿구이와 김장체험을 함께 엮어 선보인 것이 체험객들 사이에서 호평을 얻으면서 본격적인 체험 관광으로 발전했다.

삼굿구이는 지난 8월에 진행된 ‘무주 반딧불축제’에서도 관광객을 맞았다. 200명의 체험 인원이 일찌감치 마감되는 등 인기 상품 중 하나였다는 후문이다. 더불어 지난 6월에는 모 방송사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전국 각지의 관광객들이 삼굿구이를 체험하기 위해 장안마을을 찾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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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굿구이의 모든 것

삼굿구이 체험은 대단위 단체 관광객을 대상으로 진행한다. 돌을 굽고 솥을 넣을 구덩이를 파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동력이 필요한 까닭이다. 여러 장정들이 두 팔 걷어붙이고 연신 삽질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조리를 시작할 수 있다. 조리 과정에서 에너지 소비가 상당하기 때문에 맛있는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두 손 두 발 다 들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여성으로만 구성된 단체 여행객인 경우 작은 굴삭기까지 동원한 사례도 있다고.



체험을 위해서는 먼저 2개의 구덩이를 파야 한다. 큰 구덩이에는 돌과 소나무, 참숯 등을 넣고 붉은빛으로 변할 때까지 뜨거운 불에 달군다. 약 2시간 동안 돌을 달구고 나면, 그 위를 대나무, 쑥 등의 초목으로 덮어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연기가 빠져나가지 않게 나뭇가지 위로 흙을 고루 덮어 연기가 나갈 길을 차단해야 한다. 쉴 새 없이 삽질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주의할 부분은 두 구덩이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를 막아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삼굿구이는 아궁이와 비슷한 원리를 가진다. 큰 구덩이에서 발생한 열과 증기가 해당 통로를 타고 솥으로 전해지는 원리다. 하여 이 통로가 막힐 경우 열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아 고기가 익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연신 이어지는 삽질로 구슬땀이 송골송골 맺힐 즈음이면 막아도 막아도 끝이 없던 연기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후 곳곳에 구멍을 뚫어 물을 넣으면 음식을 익힐 증기가 발생한다. 증기가 작은 구덩이로 잘 전달되는 것이 확인되면, 그 안에 솥을 넣고 나무판자 따위로 연기를 차단하면 된다. 물론 틈새로 연기가 방출된다면 다시금 삽을 들고 흙으로 잘 막아줘야 한다.

일련의 과정이 끝나면 삼굿구이 조리는 얼추 끝이 난다. 마지막 과정은 증기로 고기가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 단순히 굽는 것이 아니라, 증기로 쪄내는 요리법인 만큼 소요되는 시간도 엄청나다. 알맞게 익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은 대략 2시간 정도.

인고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도저히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솥을 개봉할 시간이 온다. 솥을 덮은 판자와 흙을 들어내면 온기를 머금은 솥이 모습을 드러낸다. 기대 반 긴장 반 설레는 마음으로 솥을 열면 맛있게 익은 삼굿구이를 마주할 수 있다.

올해 들어 진행된 삼굿구이 체험만 해도 7~8번. 그중에서 실패한 횟수는 2~3회로 손꼽힌다는데, 아쉽게도 실패 횟수에 숫자 하나 더 추가했다. 너무 열정적으로 흙을 퍼나른 탓일까 굵은 자갈이 중간에 난 통로를 막으면서 증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듯하다.



실망도 잠시, 장안마루에 마련된 조리장에서 한소끔 더 삶아 알맞게 익은 삼굿구이를 내어준다. 비록 증기가 아닌 가스불로 쪄냈다지만 2시간여 기다린 보람은 충분하다. 고기 한 점 한 점, 밤 한 알 한 알마다 대나무와 흙, 참숯이 만들어낸 특유의 훈제 향이 가득하다. 여기에 장안마을의 명물 더덕 쌈장을 콕 찍어 곁들이면 고된 노동의 피로가 씻은 듯 사라진다.

※취재 협조 = 전북도청

무주(전북) / 글‧사진 = 정윤지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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