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여행 전통마을 탐방 영덕 인량마을

인량전통테마마을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길 178 나라골보리말체험학교

경북여행 중에 들른 인량리는 경북 영덕군 영해에서 서쪽으로 십리 되는 곳에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아늑하고 남쪽에 물이 가로놓여 흐르는 산자수명한 큰 마을이기에 예전부터 영남의 터가 좋은 땅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여행 중에 들러도 좋은 기를 받는다고 하는 명당.

경북여행, 인량전통테마마을 영상 52초.

보통 전통마을이란 곳이 단체로 무언가 체험을 하거나 축제 또는 특정 이슈가 있어야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외에는 전통마을을 여행지로 선택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마련된 주차장이 꽤 넓다.

하지만 쿠니는 여행지 중에 전통시장만큼은 아니지만 전통마을 탐방을 종종 하는 편인데 명당이라 알려진 곳을 방문할 때 알게 모르게 편안한 기운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곳 인량마을 역시 경북여행 중에 들른 곳.

우리나라 전국 지자체 어디에서건 그럴듯하다 판단되면 관광상품으로 만들려 노력하고 없던 매력도 찾아내 관광자원으로 개발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는 자원이 부족한 나라이면서도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나라이니 방문할 만한 이유만 생긴다면 전국 거의 모든 곳이 여행지로 적합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이유로 우후죽순 지원금을 받아 시설을 갖추고 무언가를 만들어 나가지만 항상 한계에 부딪히는 것이 지원금이 책정된 만큼만 활성화된다는 것. 경북여행 장소 곳곳에서도 그러한 점을 느끼고 있고 전국 어디서나 비슷하게 느껴지는 아쉬움이다. 한정된 예산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며 동시에 성공 확률도 높이려면 어떤 방법이 좋을지 지자체뿐만 아니라 여행자 스스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마을을 지나다 걸음을 멈춘 이곳은?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등록되어 있는 정담 정려비다.

보통 정려비라 하는 것은 국가에서 미풍양속을 장려하기 위해 표한한 뒤에 세우는 비로 대게는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그 모범으로 한다. 이 정려비의 주인공인 정담은 조선 명종 때인 1548년 평해군에서 태어난 인물로 24세 때 영남동도병마사의 비장(상급자를 따라다니며 일을 돕던 무관 벼슬)이 된 후 1583년 오랑캐를 소탕할 때 돌격장이 되어 큰 공을 세웠으며 이후 35세 때 무과에 합격하여 여러 직급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 김제 군수로 웅치에서 육탄전으로 싸우다가 45세 때 사망하자 숙종 16년인 1680년에 나라에서 정려가 내려 나무로 만든 비를 세웠고 정조 5년인 1782년에 석비를 세우게 됐다.

쩌으기 큰 건물은 새로 지은 건물로 원모제라 들은 듯한데 정확하진 않다.

이젠 기억력이 찌릿찌릿하여…

이곳은 청오당(淸悟堂)이라 부르며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애국지사 박주억(병량) 선생의 생가라고 한다.

본래부터 이런 잘 지어진 생가는 아니었고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에 가담하면서 독립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재산을 탈탈 털어 처분했기에 종택 없이 지내왔다고 한다. 이에 종중(宗中 ; 가문)에서 뜻을 모아 이곳에 새로 종택을 짓게 된 것이라고.

경북여행 중 들른 풍수지리상의 명당, 인량마을의 들에는 곧 베어내야 할 벼가 누렇게 읽어가고 있다.

명당이라 그런지 보이는 모든 것이 평화롭고 평안하다.

오호~ 신기하도다!

뭔 나무가 이리도 배배 꼬였는지 모를 일이다.

나무를 본 지인들이 뭐라 뭐라 설명을 했는데 그 얼마 되지 않은 시간 동안 기억을 깡그리 날려버렸다.

이 말의 옛 지명은 ‘잉량화(仍良火)’였다고 한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뒷산의 생김새가 마치 학이 나래를 펼친 것과 같다 하여 비개동, 나래골, 익동이라 불렸는데 광해 2년인 1610년에 인량으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영해 부지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이곳 인량마을은 팔성종실이 거주하고 있는 곳으로 예로부터 사람들이 순후하고 예의와 겸양이 있는 마을이라 했다.

또한 효행과 학문이 높은 선비가 많아 벼슬이 끊이지 않으니 부내에서 으뜸인 마을이라 했다.

이 고건물은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영덕 충효당 종택이다.

이 건물들은 조선 성종 연간에 건립하였으나 선조 때 뒤편으로 이건하였고 가옥의 배치는 ‘ㅁ’자형 평면의 정침(거처하는 곳이 아니라 주로 일을 보는 곳으로 쓰는 몸채의 방), 사랑채를 건축했고 두 건물 사이 뒤쪽에 사당을 두었다.

충효당이라 함은 정침과 독립된 사랑채를 이르는 ‘당호’로 정자와 같은 모양이나 대청 삼면에 문을 설치하여 주거건축 용도에 적합하도록 꾸며놓았다.

움직임을 멈추고 잠시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째 잠이 스르르…

피곤했던 겐지, 평안한 곳이게 스며든 졸려움인지.

한 폭의 그림 같은 모양새가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이 하나의 장면만으로도 인량마을 탐방의 의미가 풍성해진 느낌이며 이번 경북여행 전체에 풍요로움을 준다.

사물을 보아도, 사람을 보아도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보아서 좋은, 즐거운, 기쁨이 느껴지는 때와 상황 그리고 사물과 풍경에 이은 사람의 말과 표정 등이 더 많다. 시간 흐름이 아쉬울 정도면 지금 이 순간이 참 좋다는 의미가 되려나?

이 과일이 석류가 맞죠?

그렇게 들은 듯한데 그것마저도 기억이 가물거린다.

영덕 충효당 종택의 정침은 뒤편에 뒤편에 여성 공간이 자리하고 전면 좌측 부분에 충효당과 남성 공간이 작은 사랑을 배치하여 당시의 생활규범을 보여준다.

한옥이 멋스럽고 좋아 보이지만 겨울에 난방이 어렵고 여러 불편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 한옥에서 살고 싶단 생각이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전통마을 탐방을 하고 나면 그리움이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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