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만㎡에 1만5천 종 식물”… 국가문화유산 된 우리나라 최초 사립수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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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천리포수목원과 숨겨진 기록들

태안 천리포수목원
태안 천리포수목원 / 사진=천리포수목원

한 번쯤 들어봤을 ‘천리포수목원’. 그러나 그 안에 숨겨진 특별한 이야기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수목원으로, 충남 태안의 천리포 해안가에 자리한 이곳은 민병갈(칼 페리스 밀러)이 직접 설계하고 가꾼 자연의 보고다.

그가 남긴 기록물들이 최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되면서 천리포수목원의 역사적 가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설립자의 땀과 노력, 그리고 식물학적 탐구가 고스란히 담긴 기록은 단순한 수목원의 역사를 넘어 한국 근대 생태 연구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태안 천리포수목원 봄
태안 천리포수목원 봄 / 사진=천리포수목원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나 한국에 귀화한 민병갈. 그는 1970년 태안 천리포 해변에 국내 첫 사립수목원을 세웠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도전이었다. 59만㎡ 넓이의 땅에 1만5천여 종의 식물을 심고 키운 그는 숲을 연구의 공간이자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오랜 시간 비공개로 운영되던 이곳은 2009년 밀러가든을 시작으로 일반에 개방돼 지금은 사색길과 목련원까지 공개되며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천리포의 기록

태안 천리포수목원 조성 관련 기록물 일부
태안 천리포수목원 조성 관련 기록물 일부 / 사진=국가유산청

이번에 등록 예고된 기록물은 그가 직접 작성한 토지 매입증서부터 업무일지, 식물 채집·번식·관리 일지, 해외 교류 서신과 개인 서신까지 다양하다. 1962년 9,000㎡ 규모의 토지 매입 과정부터 도입한 식물의 목록, 식재 위치, 첫눈이 내린 날까지 상세하게 기록됐다.

태안 천리포수목원 조성 관련 기록물
태안 천리포수목원 조성 관련 기록물 / 사진=국가유산청

식물 채집 일지에는 학명과 채집지, 번식 일지에는 파종 현황과 토양 개량 실험까지 담겼다. 미국 농무부, 뉴욕식물원 등 해외 기관과 주고받은 교류 서신은 천리포수목원이 단순한 숲이 아닌 세계적 연구의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태안 천리포수목원 풍경
태안 천리포수목원 풍경 / 사진=천리포수목원

이번 등록에는 부산 범어사의 대형 불화 괘불도와 괘불함, 그리고 ‘7합5작 가로긴 목제 되’ 도량형 유물도 포함됐다. 괘불도는 1905년 제작된 10m가 넘는 대형 불화로, 근대 불화 연구의 기준이 되는 작품이다.

도량형 유물은 공인기관 검정을 증명하는 ‘평’자 도장이 남아 근대 도량형 체계와 생활상을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된다.

태안 천리포수목원 꽃
태안 천리포수목원 꽃 / 사진=천리포수목원

천리포수목원의 기록은 한 사람의 꿈이 만들어낸 자연유산이자, 한국 사립수목원의 역사를 증명하는 소중한 자료다. 식물학과 미기후 연구의 가치까지 지닌 이 기록이 문화유산으로 남는다는 것은 의미가 깊다.

범어사 괘불도와 도량형 유물 역시 근대기의 생활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흔적이다. 숲길을 걸으며 이곳에 남겨진 시간의 무게와 이야기를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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