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말, 볕이 강해지고 공기가 눅눅해질 때쯤 밭 가장자리, 논둑, 길가 풀숲에 누렇게 올라오는 풀이 있다.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줄기가 숨이 찬 듯 들썩인다. 그래서 이름도 헐떡이풀이다. 예전엔 누구나 알았던 흔한 들풀인데, 지금은 이름조차 생소하다.
헐떡이풀은 이른 여름 들판의 풍경 일부였다. 콩 심고, 보리 수확이 한창일 때면 풀숲 틈에서 얼굴을 내민다. 어린순은 부드럽고 여려서 예전엔 나물로도 먹었다. 지금처럼 무농약 재배가 중요하지 않던 시절, 사람들은 주변에서 자라는 나물을 식재료 삼았다. 그중 하나가 헐떡이풀이다. 쓴맛이 거의 없고, 향이 약해 데쳐서 무치거나 된장국에 넣기 좋다.
이름은 촌스러워도 꽃은 예쁘다

이름만 들으면 거칠고 투박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헐떡이풀은 오히려 섬세하다. 줄기가 가늘고 길게 뻗어 올라가며, 끝에 노란 꽃이 핀다. 꽃은 작고 앙증맞은 형태로 모여 피는데, 마치 민들레를 축소해 놓은 듯한 인상이다. 꽃이 피기 전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무리 지어 피면 그 자리 전체가 노란빛으로 물든다.
잎은 가장자리가 물결처럼 굴곡져 있고 길쭉한 타원형이다. 손끝으로 만져보면 매끈하고 부드럽다. 줄기는 연하고 수분이 많아 쉽게 꺾이지만, 그만큼 먹기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특징 덕분에 예전에는 풀밭에서 발견하면 곧장 뜯어다 반찬으로 만들기도 했다.
예전엔 나물 반찬으로 식탁에 올랐다

헐떡이풀은 봄나물보다 시기가 늦어, 초여름 무렵에야 본격적으로 자란다. 다른 나물은 이미 꽃이 피거나 줄기가 질겨지기 시작할 때, 이 풀은 오히려 더 부드럽다. 예전 어르신들 말로는 “다 자라도 질겨지지 않아 오래 먹을 수 있는 풀”이라 했다.
가장 일반적인 조리법은 데쳐서 무치는 방식이다. 물에 살짝 데친 뒤, 찬물에 헹구고 물기를 짠다. 여기에 소금과 참기름만 넣어 무치면 끝이다. 향이 강하지 않아 아이들도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다. 국을 끓일 때 넣으면 은근한 풀내가 국물에 스며들며 감칠맛이 배어난다. 미역국처럼 진한 국물보다 맑은 된장국이나 나박국에 잘 어울린다.
헐떡이풀은 장아찌로도 담근다. 데친 줄기를 간장에 담가두면 색이 짙어지고, 풋풋한 향이 사라지면서 입맛을 돋운다. 오랜 시간 보관해도 무르지 않고 아삭함이 유지돼 반찬으로도 쓸 수 있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헐떡이풀’

한때는 논밭 주변 어디서나 자랐던 들풀이지만, 지금은 흔치 않다. 제초제 사용이 늘면서 자생지가 줄어들었고, 이 풀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도 적어졌다. 이름이 특이해도 찾는 사람이 없으면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자란다. 특히 강원도, 전남 고흥, 경북 봉화 같은 곳에서 헐떡이풀이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주로 인위적인 손길이 닿지 않은 길가나 숲 가장자리, 밭 가장자리에 자리 잡는다.
헐떡이풀은 다른 잡초와 달리 뿌리가 얕고 번식력이 강하지 않다. 그래서 환경에 민감하다. 토양이 바뀌거나 오염되면 금세 자취를 감춘다. 반면 조건만 맞으면 해마다 같은 자리에 올라온다. 비료도 필요 없다. 흙과 햇볕만 있으면 자란다.
지금도 예전 방식 그대로 자연에서 채취해 먹는 사람들도 있다. 주로 시골 어르신들이다. 헐떡이풀을 보면 봄이 지나간 걸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꽃이 피는 시기를 보면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어서다. 흔하디흔한 풀에서 계절을 읽는 감각은 도시에서는 얻기 어렵다.
헐떡이풀은 그렇게 다시 여름을 알려준다. 조용히 피고, 눈에 띄지 않게 시든다. 이 풀을 알아보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지금, 그 존재 자체가 과거의 시간들을 기억하게 만든다. 잊힌 들풀이지만, 식탁에서 다시 볼 날도 언젠가는 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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