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산·민간정원·꽃길·한우까지 한 코스에…정읍, 체류형 여행도시로 뜬다

[투어코리아=김동환 기자] 주말여행지를 고르는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 유명 관광지 한 곳을 찍고 돌아오는 일정보다, 걷고 쉬고 먹고 머무는 동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도시가 더 주목받는다. 전북 정읍은 그 변화에 잘 맞는 여행지다. 내장산의 사계절 풍경을 시작으로 민간정원과 치유농장, 계절 꽃길, 단풍미인한우까지 하루 코스 안에 담기고, 여기에 축제와 가족형 관광 콘텐츠가 더해지며 ‘스쳐 가는 도시’에서 ‘머무는 도시’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실제 수치도 이를 뒷받침한다. 정읍시는 행정안전부의 ‘2025년 4분기 생활인구 산정’ 결과 평균 47만 5440명을 기록하며 전북자치도 내 10개 인구감소지역 가운데 1위에 올랐다. 구절초 꽃축제와 내장산 단풍, 지난해 9월 문을 연 ‘기적의 놀이터’가 방문 수요를 끌어올리며 가족·자연·체험 여행지로서의 경쟁력을 확인시킨 셈이다. 단풍철에만 찾는 도시를 넘어, 정읍은 이제 주말마다 다른 이유로 머물고 싶은 체류형 여행도시로 변하고 있다.
정읍의 변화는 생활인구 세부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정읍시의 2025년 4분기 월별 생활인구는 10월 51만 3704명, 11월 60만 5740명, 12월 30만 6875명으로 매월 도내 1위를 유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생활인구가 2만 8508명 늘었다.

생활인구는 주민등록인구와 외국인뿐 아니라 통근·통학·관광 등의 목적으로 하루 3시간 이상 머문 체류 인구까지 포함하는 지표다. 단순 방문객 숫자를 넘어 도시 안에서 실제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의 규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관광도시 경쟁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특히 정읍은 ‘오래 머무는 도시’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2025년 4분기 정읍시의 체류 인구는 37만 907명으로 전국 평균 26만 444명, 전북 평균 23만 7653명을 크게 웃돌았다. 평균 숙박일은 3.9일로 전국 평균 3.8일, 전북 평균 3.3일보다 길었고, 평균 체류일도 3일로 전북 평균 2.8일을 앞섰다.
1인당 평균 카드 사용액은 13만 3300원으로 전국 평균 12만 300원, 전북 평균 11만 1500원을 모두 상회했다. 전년 대비로도 2만 1500원 증가해 관광객 유입이 지역 소비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읍 여행의 출발점으로는 내장산단풍생태공원이 제격이다. 내장동 내장호 주변에 자리한 이곳은 단풍 명소로만 알려진 내장산의 이미지를 사계절 산책 여행지로 확장하는 공간이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단풍나무 11종을 비롯해 다양한 수목이 식재돼 있고, 잎이 아기 조막손처럼 작은 애기단풍도 만날 수 있다.
단풍체험전시관, 석가원, 분재원, 습지원, 단풍동화숲, 단풍터널길, 고향의 정원 등 단풍을 주제로 한 공간이 이어져 가볍게 걷기 좋다. 공원 안에서는 내장산 서래봉의 산세도 한눈에 들어와 자연 속에서 여유를 즐기려는 여행객에게 알맞다.

정읍의 매력은 자연에만 머물지 않는다. 산외면 오공리에 있는 김명관고택은 정읍의 깊은 역사성을 보여주는 장소다. 조선 중기 사대부 주택의 면모를 갖춘 이 고택은 흔히 ‘아흔아홉 칸 집’으로 불린다. 김동수의 6대조인 김명관이 정조 8년에 건립했으며, 창하산을 등지고 동진강 상류의 맑은 물이 흐르는 자리에 위치한다. 대문 앞에는 30여 평 규모의 연못이 있고, 사랑채는 고택 안에서도 가장 화려한 건축미를 보여준다.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는 구조와 거의 원형대로 보존된 건축 양식은 조선 후기 사대부 가옥의 중후한 분위기를 전한다.
최근 여행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정원형 휴식’도 정읍에서 만날 수 있다. 산내면 능교리의 정읍오브제는 전북 제8호 민간정원으로 지정된 공간이다. 넓은 자연 속에 식물과 조형물이 어우러지고, 쾌적하게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탁 트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정원 내부에는 수제차와 녹두빙수, 과일모찌 등을 맛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어 여행 중 쉬어가기 좋다. 관광지를 서둘러 이동하기보다 한 장소에서 오래 머물며 사진을 찍고, 차를 마시고, 풍경을 즐기는 요즘 여행 방식과 잘 맞는다.
구룡동의 햇빛정원은 농촌의 여유를 체험 콘텐츠로 풀어낸 카페형 치유농장이다. 이곳에서는 자연 속에서 계절별 체험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고, 신선한 음료와 디저트도 함께 맛볼 수 있다. 도시의 대형 카페와는 다른 한적한 분위기, 농가의 정취, 어렵지 않은 체험 요소가 결합돼 가족 단위 여행객이나 조용한 쉼을 원하는 방문객에게 어울린다. 짧은 주말여행에서도 ‘쉼’의 감각을 분명하게 남길 수 있는 장소다.
여행의 만족도를 좌우하는 먹거리도 빼놓을 수 없다. 신정동에 위치한 단풍미인한우홍보관은 정읍의 특산품인 한우를 맛볼 수 있는 공간이다. 프리미엄 한우 구이를 비롯해 떡갈비 정식과 불고기 등 다양한 한식 메뉴가 준비돼 있다. 내장산과 정원, 고택을 둘러본 뒤 지역 대표 먹거리로 식사를 마무리할 수 있어 여행 동선의 완성도가 높다. 자연을 보고, 걷고, 쉬고, 지역의 맛까지 경험하는 흐름이 정읍 여행의 소비자 체감도를 끌어올린다.

여름부터 초가을까지는 정읍의 경관농업지구가 새로운 볼거리로 떠오른다. 정읍시는 농촌에 방치된 유휴 공간과 경작지를 활용해 계절감을 살린 경관 작물을 심고 있다. 그중 장명동 구량지구와 내장상동 금붕지구 일대에는 화려한 여름꽃이 피어나 시민과 관광객의 발길을 끌고 있다. 도심에서 쉽게 오갈 수 있는 곳에 조성돼 일상 속 산책지이자 여행객을 위한 사진 명소로도 활용도가 높다.
장명동 구량지구는 삼각형 모양으로 이어진 3개의 농지로 구성됐다. 이곳에는 아주가와 버들마편초가 함께 심어져 입체적인 꽃 풍경을 연출한다. 특히 버들마편초는 바람에 흔들리는 보랏빛 군락으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산책로와 사진 촬영 명소로 인기를 얻고 있다. 6월 초 만개해 오는 10월 초까지 피어 있을 것으로 예상돼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오랜 기간 볼거리를 제공할 전망이다.
내장상동 금붕지구에서는 붉은 꽃양귀비가 초여름 정취를 더한다. 선명한 붉은빛의 꽃양귀비는 주변 농촌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계절 여행의 감성을 살린다. 이곳에서는 지난달 30~31일 이틀 동안 마을 자체 추진위원회가 주관하는 소규모 꽃양귀비 축제도 열렸다. 주민들이 직접 가꾸고 준비한 꽃밭을 방문객과 함께 즐기는 지역 공동체형 행사라는 점에서 대형 축제와는 다른 친근한 매력을 지닌다.

여행객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 공간도 늘고 있다. 정읍근대역사관은 지난 4월부터 유아를 대상으로 정읍의 근대 역사를 쉽게 풀어낸 체험 교육을 운영 중이며, 앞으로 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좌와 일일 강좌도 추가할 예정이다. 과거 농협 양곡 창고로 쓰이던 유휴 공간을 문화 시설로 바꾼 전북 아트플랫폼에서는 지역 예술인과 시민을 위한 미디어아트 교육과 학생 체험 과정이 준비되고 있다. 세계등록유산인 무성서원의 가치를 알릴 무성서원 유교수련원도 본격 운영을 앞두고 있어 전통 유교 문화와 현대적인 인성 교육이 만나는 체험 거점이 될 전망이다.

공연과 전시도 정읍 여행의 체류 시간을 늘리는 요소다. 시립예술단은 올해 처음 ‘월간 상설 공연’을 도입해 국악단, 농악단, 합창단이 매월 정기적으로 무대에 오르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농악단의 ‘동네방네 연희 한마당’은 지난 3월까지 총 17회 공연을 마쳤고, 관내 15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찾아가는 ‘작은 학교 문화 나눔 음악회’도 진행 중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구석구석 문화가 있는 날’ 공모 사업에도 선정돼 오는 11월까지 정읍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와 함께 총 20여 회의 문화 행사를 마련할 계획이다.
정읍시립미술관과 시립박물관의 전시 일정도 눈여겨볼 만하다. 시립미술관은 거대 곰 인형을 주제로 한 매체 예술 기획전 ‘버라이어티 베어’의 두 번째 계절 전시 ‘봄, SPRING’을 지난 5월 24일 마무리하고, 5월 28일부터 세 번째 기획인 ‘젤리, GUMMI’를 새롭게 선보였다. 하반기에는 세계적인 미술 거장들이 영감을 얻고 사랑했던 장소들을 조명하는 대규모 기획전도 예고돼 있다. 시립박물관에서는 정읍 출신 서화가 석지 채용신을 조명하는 기획 전시 ‘꽃과 새, 상징을 담다’가 오는 6월 14일까지 열린다.

하반기 대형 축제도 정읍을 다시 찾게 만드는 요인이다. 정읍시는 6월 임진왜란 당시 조선왕조실록을 내장산으로 옮겨 지켜낸 역사를 재현하는 ‘이안 기념행사’를 예년보다 큰 규모로 개최할 예정이다. 이어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함께하는 정읍 예술제, 시민 참여형 행사인 문화로 대동, 백제 가요의 맥을 잇는 정읍사 문화제 등이 연이어 관광객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자연과 역사, 예술, 축제가 한 도시 안에서 이어지며 정읍의 여행 선택지는 더욱 넓어지고 있다.

유호연 정읍시장 권한대행은 “내장산 단풍과 구절초 축제 등 기존 자연경관을 중심으로 한 관광 자원에 그치지 않고 현대적인 관광 수요에 맞춰 전 세대를 아우르는 관광 기반 시설을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지방 소멸 위기에 대응하고 생활인구 확대를 위해 머물고 싶고 다시 찾고 싶은 도시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