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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와 함께 먹는 돼지고기 직화구이··· 조형진 일산갈비 – [이용재의 식당탐구 – 32]

이용재 음식평론가는 한국 식문화를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비평가입니다. 식재료, 조리도구, 조리 문화, 음식과 관련한 문화 콘텐츠까지 우리가 잘 몰랐던, 혹은 우리가 쉽게 지나쳤던 것들을 친절하게 설명해 줍니다. 이용재 평론가는 격주로 더농부에 ‘식당과 음식 이야기’를 펼칩니다. 맛있는 한 끼에서 그가 얻은 통찰을 함께 나눠 보실까요?

조형진 일산갈비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직원들이 고기를 다듬는 장면을 마주할 수 있다. ©이용재

조형진 일산갈비의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직원 여러 명이 고기를 다듬고 있었다. 한 번만 그랬던 것도 아니고 복수의 방문에서 예외 없이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나는 왠지 이 광경이 여러모로 마음에 들었다. 그냥 여러 명이 칼질을 수월하게 하는 상황 자체부터 마음에 들 뿐만 아니라 그렇게 고기를 다듬는 상황 자체가 무엇인가의 징표처럼 다가왔다. 고기의 신선함을 채 자리에 앉기도 전에 보장 받는 느낌이랄까?

조형진 일산갈비를 찾은 건 돼지고기를 고수에 쌈 싸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고수를 처음 접한 건 1998년 여름이었다. 당시 나는 군복무를 막 마친 뒤 미국 여행 중이었는데 베트남 쌀국수(포)를 먹을 기회가 있었다. 이제 우리에게도 전혀 낯설지 않은 포가 당시 미국에서는 상당히 널리 퍼져 있었다. 베트남 사람 뿐만 아니라 한인이 운영하는 가게가 나올 정도였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낯선 음식인지라 속으로 상당히 긴장했던 가운데, 역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건 딸려 나온 고수였다. 흔히들 ‘비누향’이라고 칭하는 고수의 향에서 사실 말로 표현하기 좀 어려운 낯섦을 느꼈다. 그래서 결국 이래저래 나는 처음 접하는 포를 그다지 즐기지 못했다. 하지만 4년 뒤 다시 미국 땅을 밟았을 때 나는 달라져 있었다. 무엇이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수가 전혀 낯설지 않았고, 특히 포에 딸려 나오는 건 먹어도 먹어도 성에 차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좋아하게 됐다. 고기와 어우러지는 특유의 향이 정말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고기와 어우러지는 고수 특유의 향은 정말 매력적이다. ©이용재

고수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하자면 우리에게도 사실 낯선 풀 혹은 식재료가 아니다. 포나 2000년대 중후반부터 자리를 잡아 나가기 시작한 동북지방의 중식을 통해 저변이 넓어졌지만 사실 고려 시대에 전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조선시대의 ‘도문대작’이나 ‘훈몽자회’에 기록이 남아 있으며 강회나 김치를 만들어 먹어왔다.

그런 고수를 한국식 직화구이와 먹을 수 있다니 기대를 안 할 수가 없다. 대표 메뉴인 눈꽃생갈비(뼈삼겹)를 시키고 고수는 냉장고에서 셀프로 가져온다. 숯불이 식탁에 오르면 늘 그래왔듯 본능적으로 고기를 굽고 고수를 곁들여 먹는다. 예상대로 돼지고기 특유의 고소함과 고수의 향이 잘 어울리는 가운데, 나는 신선함에 대해 생각한다.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고기를 다듬는 광경에서 보장받는 것처럼 느꼈던 신선함 말이다.

조형진 일산갈비의 대표 메뉴인 눈꽃생갈비.©이용재

물론 고기의 신선함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과 조금 다르다. 만약 갓 잡은 동물로부터 느낄 수 있는 싱싱함 같은 걸 생각한다면 곤란하다. 동물은 죽으면 사후 강직을 겪는다. 근육이 수축돼 뻣뻣해진다는 말이다. 따라서 질기다 못해 딱딱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좋아하는 활어회가 사실 최선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그 탱탱한 질감을 즐기려고 먹는다고들 하지만 오래 씹으면 피곤하다.

한편 맛의 측면에서도 갓 잡은 동물은 손해를 본다. 효소의 작용으로 분해가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아무래도 섬세한 맛을 떨어지게 된다. 그나마 단백질 구조가 단순한 생선은 괜찮지만 ‘육고기’라면 사정이 많이 달라진다. 도축 후 적정한 숙성이 맛과 질감 모두를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숙성이 정말 훌륭한 과정인 것 같지만 한편 또 그렇지도 않다. 고기를 위한 만능열쇠는 아니라서 무턱대고 오래 둔다고 맛과 질감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무턱대고 오래 둔다고 고기의 맛과 질감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이용재

특히 돼지고기는 쇠고기와 사정이 많이 다르다. 지방 특히 근육에 껴 있는 마블링과 수분 덕분에 쇠고기는 몇십 일 동안의 긴 숙성이 가능하고 고기를 공기에 노출시키는 드라이에이징도 가능하다. 하지만 돼지고기는 대체로 진공 포장이 된 상태에서 웻에이징을 4~10일 시키는 것이 최선이라고 한다. 물론 돼지고기를 드라이에이징 하는 실험도 진행 중이지만 아직까지는 보편적이지 않다.

굳이 이렇게 고기 숙성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 이유는 요즘 숙성이 특히 돼지고기에 좀 남용된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쇠고기에 이미 숙성이 보편화되다 보니 돼지고기에도 숙성의 개념을 반영시키려는 시도가 흔해졌는데 결과가 미심쩍은 경우를 꽤 맛보았기 때문이다. 숙성을 잔뜩 강조했는데 구워 씹는 순간 불쾌한 맛의 수분이 고기에서 삐져나오는 등 맛의 정점을 지난 듯한 느낌을 주는 고기였다.

그렇게 소위 숙성을 시킨 고기보다는 차라리 평범한, 도축과 유통 과정에서 흔히 거치는 수준의 공정을 거친 고기가 차라리 낫고 조형진 일산갈비에서 먹은 게 그러했다. 돼지고기에서 기대할 수 있는 맛과 향의 해상도 및 각이 활발하게 잘 살아 있는 느낌이랄까? 이런 고기에 상추와 깻잎을 바탕으로 깔고 고수를 얹으니 각 요소들이 최선을 다해서 내주는 균형 감각이 참으로 즐거웠다.

맛과 향의 해상도 및 각이 활발하게 잘 살아 있는 느낌의 눈꽃생갈비. ©이용재

다만 이런 즐거움을 모든 메뉴에서 맛볼 수 있는 건 아니다. 균형을 맞춰보려고 주문한 양념돼지갈비는 평범하다 못해 기대 이하였다. 무엇보다 얇은 고기를 양념에 오래 재워 두어 이미 단백질의 변성이 일어나 있었다. 우리는 양념이 고기를 연하게 만들어 주므로 오래 재워 둘 수록 좋다고 믿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간장도 산이므로 오래 재워 두면 고기의 표면이 너덜너덜해져 질감이 불쾌해진다. 실제로 서양에서는 실험을 통해 고기를 30분 이상 재울 경우 더 이상 내부로 침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도출한 바 있다. 양념과 재움에 대한 믿음이 강한 한국에서 이 실험 결과가 얼마나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이지만 하여간 업데이트된 현실은 그렇다.

양념을 오래 재워둔다고 고기가 맛있어지는 건 아니다. ©이용재

먹고 가게를 나오며 고기를 열심히 다듬는 분들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고기를 얼마나 숙성시키시나요? 양념갈비는 반나절, 눈꽃생갈비는 하루를 시킨다는 대답이 들었다. 나는 이 대답이 왠지 마음에 들었다. 내가 숙성이 좋을 거라 믿고 있다고 짐작해 답을 그렇게 해준 것 같지만 사실 가게에서 추가 숙성을 엄청나게 하지는 않는다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기에서도 그런 맛이 났으며, 그렇기에 고수와 굉장히 잘 어울렸다.

직화구이는 좋으나 싫으나 한식의 핵심이 되었다. 음식평론가로서는 이러한 현실이 그다지 달갑지는 않다. 무엇보다 개별 음식점 간의 차별화가 너무 어려워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만약 차별화가 필요하다면 작은 요소들이 핵심 역할을 맡을 것이라 본다. 반찬이랄지 요즘처럼 코키지 프리 같은 여건 등이 그럴 것이며, 조형진 일산갈비가 보여주듯 고수도 하나의 좋은 예가 될 수 있겠다.

조형진 일산갈비의 냉면과 밑반찬.©이용재

조형진 일산갈비

0507-1407-2055

서울 경기 파주시 송학1길 67-17

<메뉴>

눈꽃생갈비(1인분 200g) 1만 5000원

돼지갈비(1인분 250g) 1만원

냉면 6000원

된장찌개 1000원

공깃밥 1000원

<영업 시간>

금~화 11:00~22:00

(매주 수요일 휴무)

글·사진=이용재(음식평론가·번역가)

정리=더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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