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실패작”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사
한때 묵직한 중성 보이스로 대한민국을 사로잡았던 가수 문주란. 무대 위에서 빛나던 그녀의 노래는 깊은 울림을 주었지만, 그 음색 뒤에 숨겨진 인생사는 한 편의 파란만장한 드라마였다.
문주란이 처음 대중 앞에 선 건 겨우 열여섯 살 때였다. 어린 나이에 ‘동숙의 노래’로 데뷔하자마자 대중의 사랑을 받았지만, 그때부터 그녀는 남모를 고통을 안고 살아야 했다.
문주란은 “엄마를 너무 일찍 여의고, 새엄마 밑에서 자라야 했다. 아버지는 세 번이나 결혼하셨고, 저는 어머니가 셋이나 되는 복잡한 가정에서 컸다”라고 고백했다. 그녀의 인생에 ‘엄마’라는 존재는 늘 갈망이자 상처였다.
마음이 아프고 외로울 때마다 불렀던 단어, “엄마”는 그녀에게 그리움 그 자체였다. 그러나 꿈에서도 한 번 나타나 주지 않았다는 그 이름은 여전히 가슴에 묻어둔 슬픔이다.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노래에 묻어나는 감정의 깊이는 바로 그 상처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가수로서 성공의 길도 결코 순탄치 않았다. 어린 나이에 데뷔했던 만큼, 문주란은 일찍부터 온갖 소문과 루머에 시달려야 했다.
그녀는 “남진과의 스캔들이 터졌다. 그때 나는 남자의 ‘남’자도 몰랐을 때였다. 순수하게 음악만 생각하던 아이였는데, 하루아침에 소문들이 돌면서 버거운 무게를 견뎌야 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 고통은 문주란을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갔고, 그녀는 음독 후 보름 만에 겨우 눈을 떴다. 살을 에는 듯한 절망을 견뎌내야 했던 시간은 오랜 시간 동안 문주란을 괴롭혔다.
상처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첫사랑은 예상치 못한 비극으로 다가왔다. 문주란의 첫 연인은 유부남이었다. 그녀는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해서 사람에게 너무 쉽게 기대게 됐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사람이 유부남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이 사랑은 문주란에게 대낮 납치라는 충격적 사건까지 불러일으켰다. 그녀는 “그 사람의 부인이 사람을 사주해 방송국 앞에서 저를 납치했다. 참 끔찍했다”라고 그날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문주란은 “그런 아픈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도 시집가서 평범하게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럴 운명이 아니었나 보다”라고 덧붙였다.
제 인생은 실패작이에요
가수로서의 성공과 화려한 삶 뒤에는 늘 고독이 따라다녔다. 그녀는 결혼도, 출산도 경험하지 못한 삶을 스스로 “인생의 실패작”이라 칭하기도 했다.
문주란은 “한 여성으로서는 실패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후회는 없다. 가수가 되려면 외로움과 아픔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노래를 좋아해주는 분들이 있는 거다”라며 자신의 고통이 오히려 음악으로 승화된 이유를 설명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문주란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 같다. 남자들한테 환멸을 느꼈다. 모두가 가수 문주란에게만 관심이 있었지, 인간 문주란을 진심으로 사랑해 준 사람은 없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의 말에는 이룰 수 없었던 사랑과 상처가 짙게 배어 있었다.
문주란은 여전히 무대에 선다. 이제는 75세, 세월이 흘렀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한과 슬픔, 그리고 세상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엄마의 얼굴을 떠올릴 수 없고, 스스로를 인생의 실패작이라 칭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그녀의 노래가 세월이 지나도 우리 마음을 울리는 이유는, 그 울림이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인생 그 자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가 꿈에라도 나타나 주길 바랐다는 문주란의 소망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녀의 음악은 수많은 이들의 마음속에서 계속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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