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감염을 막는 데 있어 특정 중화 항체보다 백혈구의 일종인 T세포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이를 토대로 백신 접종 및 관련 정책에 대한 변화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중화 항체 없어도 감염 막는다?
듀크 의과대학과 싱가포르 의대(NUS) 연구팀은 싱가포르 종합병원과 협력해 감염과 백신 관련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T세포만으로도 바이러스 감염을 완전히 막을 수 있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이전까지 백신 접종을 통해 ‘중화 항체’를 형성해야만 감염을 막을 수 있다고 했던 것과 상반되는 내용이다.
중화 항체란 바이러스가 세포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단백질을 말한다. 특정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체내에 들어왔을 때, 이에 해당하는 항체가 바이러스에 결합해 무력화시키는 것이 기존의 감염 대응 원리였다.
이를 ‘항균 면역’ 또는 ‘살균 면역’이라 한다. 이 방식은 매우 효과적이어서 지금까지 널리 사용돼 왔다. 하지만 듀크-NUS 연구팀이 「네이처 미생물학(Nature Microbiology)」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서는, 중화 항체 없이 T세포만으로도 바이러스 감염을 막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황열병 백신으로 일본뇌염 막을 수 있어
연구팀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2023년 3월 30일부터 10월 31일까지 약 7개월에 걸쳐 연구를 수행했다. 먼저 21세에서 45세 사이의 참가자 33명을 모집한 다음, 참가자들에게 황열병 예방에 사용되는 약화된 생백신을 투여했다.
그 후 28일이 지난 뒤 약화된 일본뇌염 바이러스를 인위적으로 접종해 면역 반응이 나타나는지를 살폈다. 실제로 질환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지만, 가벼운 관련 증상과 혈액 검사를 통해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측정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황열병과 일본뇌염은 유전적으로 연관된 바이러스다. 일본뇌염 백신 자체가 황열병 백신의 골격을 활용해 만들어졌다. 따라서 황열병 백신을 접종할 경우 일본뇌염에도 대응할 수 있는 T세포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두 백신은 다르다. 따라서 황열병 백신을 접종하면 황열병에 대한 중화 항체가 만들어질 뿐, 일본뇌염 바이러스의 중화 항체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즉, 연구팀은 ‘황열병 백신으로 형성된 T세포가 일본뇌염 감염도 막을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백신 접종 횟수 달라질 수도
연구 결과, 황열병 백신으로 형성된 T세포는 일본뇌염 바이러스 감염을 효과적으로 제어했다. 즉, 일본뇌염 바이러스의 복제 또는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된 세포를 제거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또한, T세포의 작용으로 인해 생성된 항체의 양도 감소했다. 이미 감염이 제어됐기 때문에 새로운 항체가 생성될 필요가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또한, ‘충분한 수준의 T세포가 존재할 경우, 일본뇌염 바이러스가 전혀 감지되지 않는 수준까지 통제됐다’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는 참가자 중 약 15%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즉, 감염이 아예 발생하지 않은 ‘완전 예방’이 가능했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이를 토대로 급성 바이러스성 질환을 막아내는 데 있어, T세포가 최전선 방어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 중화 항체가 필수적이며, T세포는 이를 보조하는 요소라고 보았던 기존까지의 패러다임에 도전장을 내민 셈이다.
싱가포르 종합병원 감염병과 수석 컨설턴트인 시린 칼리무딘 조교수는 “백신을 설계하고 개발하는 방법을 다시 한 번 검토해야 한다”라며 “높은 수준의 항체를 생성하는 백신이 반드시 높은 수준의 T세포를 만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그는 “우리 연구 결과는 일부 백신에서 더 광범위한 T세포 반응을 유발할 수 있을 때, 바이러스 감염을 더욱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 결과는 특정 백신에 한정된 것이므로 보다 넓은 영역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 연구 결과에 따라 향후 백신 개발은 물론, 일반인들의 백신 투여량 및 투여 횟수 등에 관한 정책 개발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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