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이 “슬픈 일”, 송강호가 “거절했다” 말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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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경비구역 JSA'를 연출한 박찬욱 감독. 정유진 기자 noir1979@maxmovie.com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개봉 25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한 박찬욱 감독. 정유진 기자 noir1979@maxmovie.com

‘실제로 판문점에서 찍었나.’

박찬욱 감독이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제작 명필름)로 해외 영화제를 방문할 때마다 받았다는 질문이다. 남한과 북한이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 국가로서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상에 있는 판문점이 작품에 등장하는 것에 대해 놀라 질문한 것이다.

박 감독은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 ‘실제로 찍을 수 있었다면 이런 영화가 필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고 답했다”며 “아직도 변함없이 이 영화의 내용이 젊은 세대에게 똑같은 감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건 어찌 보면 슬픈 일이다. 개봉 50주년 때에는 그저 옛날 얘기로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이것마저 안 되면 유작됐을 수도 …”

박 감독의 이 같은 말은 4일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공동경비구역 JSA’ 관객과의 대화(GV)에서 나왔다.

박 감독은 이 자리에서 데뷔작 ‘달은…해가 꾸는 꿈'(1992)에 이어 두 번째 영화 ‘3인조'(1997)를 내리 흥행 실패했던 사실을 짚으며 “이 영화(‘공동경비구역 JSA’)마저 놓치면 유작이 될 수도 있다는 절박한 마음이 있었다”고 지난날을 돌이켰다.

‘공동경비구역 JSA’은 2000년 개봉한 박 감독의 세 번째 영화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이병헌 이영애 송강호 김태우 신하균이 출연해 5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 영화는 흥행과 더불어 북한 주민들을 부정적인 이미지로 묘사했던 기존의 남북 소재 영화들과 달리 남북 병사들의 우정을 그리며 남북 관계에 대한 대중의 인식 변화에 기여해 높이 평가를 받았다. 이 때문에 감독은 사실 영화를 만들면서 국가보안법을 걱정해야 했다.

박 감독은 “지금도 국가보안법은 존재하지만 1990년대 후반에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며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해석이 가능한 법 조항이 있어서 비장한 각오로 만들었는데, 영화가 개봉할 때쯤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고 정상회담을 하면서 우리가 했던 걱정은 기우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동경비구역 JSA’를 퀴어 소재로 만들고 싶었지만 제작사의 반대로 무산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하며 “이 영화를 만들던 1999년에는 실현시키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21세기에 만들어졌다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관객과의 대화 행사는 올해로 문화사업을 시작한지 30주년을 맞이한 CJ ENM에서 마련했다. 2020년부터 대중문화 분야에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인물들을 비저너리로 선정해 해마다 발표해온 CJ ENM은, 올해는 문화사업 출범 30주년을 기념해 업계에 패러다임 전환을 이끈 작품들을 조명하는 ’30주년 기념 비저너리 선정작’ 행사를 마련했고, 영화 부문에 ‘공동경비구역 JSA’가 꼽혔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송강호, 이병헌, 신하균.(왼쪽부터). 사진제공=CJ ENM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송강호, 이병헌, 신하균.(왼쪽부터). 사진제공=CJ ENM

●”화창한 30대…화양연화의 시작”

이날 행사에는 박 감독뿐 아니라 ‘공동경비구역 JSA’의 주역 이병헌 이영애 송강호 김태우 네 명의 주연배우들이 함께했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관객과의 대화는 특급 감독과 특급 배우들의 만남에 큰 관심을 모았다.

이 작품에서 남한의 이수혁 병장 역을 연기한 이병헌은 “해외에서 저에 대해 설명할 때 항상 대표작으로 언급되는 작품”이라며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그 가치를 인정받은 작품이라는 것이 참 감격스럽다”고 소감을 전했다.

극중 한국계 스위스인으로 군 정보단 소령 소피 역을 연기한 이영애는 “이 영화를 20대에 만났기에 30대의 제가 있고 ‘친절한 금자씨'(2005)도 할 수 있었다”며 “화창한 30대를 보낼 수 있게 해준 기적 같은 작품이다”고 의미를 뒀다.

북한의 오경필 중사 역을 연기한 송강호는 “1995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데뷔한 뒤 수많은 굴곡을 겪으며 첫 번째 화양연화가 왔는데 그 중심에 ‘공동경비구역 JSA’가 있었다”고 말한 뒤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훌륭한 선배이자 거장으로 존경하고 있다”고 박 감독에 향한 존경을 표했다.

남한의 남성식 일병 역을 연기한 김태우는 “지금이면 감독님 때문에 출연했을 텐데 당시에는 시나리오 때문에 한 것”이라며 “개봉 전 기술 시사를 보고 나서 이런 좋은 영화에 출연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천운 같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영화 촬영 현장에서 박찬욱 감독과 배우들. 사진제공=CJ ENM
영화 촬영 현장에서 박찬욱 감독(왼쪽에서 세 번째)과 배우들. 사진제공=CJ ENM

●”두 개 망한 감독과 세 개 망한 배우”

특히 박 감독의 초창기 흥행 실패 경험과 관련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늘어놓은 배우들의 너스레가 현장에 큰 웃음을 안겼다.

이병헌은 “예전에 ‘두 개 작품을 완벽하게 망한 분과 세 개 작품을 완벽하게 말아먹은 제가 만나서 찍은 영화가 ‘JSA’다. 이보다 좋은 조합이 어디 있냐’고 말한 적이 있다”고 떠올렸다. 이에 질세라 이영애도 “저도 ‘JSA’를 하기 전에 ‘인샬라’라는 영화를 말아먹었다”고 밝혔다.

송강호는 ‘공동경비구역 JSA’를 한 차례 고사했던 일화로 이야기에 꽃을 피웠다. 그는 “시나리오가 뭐까, 완벽을 추구한다고 할까”라며 “그때까지 볼 수 없었던 시나리오여서 (감독에 대한) 믿음이 안 갔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어 “그러다가 명필름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하고 감독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바리를 입고 걸어오시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품격과 기품에 압도됐다”며 “그 순간 믿음이 갔다”는 말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얼마 전 TV를 통해 ‘공동경비구역 JSA’를 다시 본 소감도 전했다. 송강호는 “나에게도 ‘이병헌 부럽지 않은 시절이 있었구나’ 싶었다”며 너스레를 떤 뒤 “박찬욱 감독님의 명작들은 공통적으로 지우려야 지울 수 없는 깊이, 기품이 있다”고 치켜세웠다.

'공동경비구역 JSA' 가  CJ ENM 30주년 기념 비저너리 선정작에 꼽혀 이날 박찬욱 감독과
‘공동경비구역 JSA’ 가 CJ ENM 30주년 기념 비저너리 선정작에 꼽혀 이날 이병헌, 이영애, 박찬욱 감독, 김태우, 송강호 주역들이 함께했다. 정유진 기자 noir1979@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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