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무역 핑퐁게임에 갇힌 한국 철강…반덤핑 제소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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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덤핑 제소 본격화…업계 공조 속 이해관계 엇갈려

한·중 통상 마찰 우려 확산…정부·기업 균형점 ‘고민’

지난 11일 경기도 평택항에 철강 제품이 쌓여 있다.ⓒ연합뉴스

국내 철강업계가 중국산 저가 철강재에 대한 반덤핑 제소를 본격화하면서 보호무역 장벽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반덤핑 조치가 오히려 업계 내부 갈등과 통상 마찰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는 분위기다. 중국이 보복 관세로 맞설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한국 철강업계가 ‘보호무역 핑퐁게임’에 갇힐 위험이 크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동국제강그룹을 비롯한 국내 주요 철강업체들이 중국산 건축용 도금·컬러강판에 대한 반덤핑 제소를 추진하면서 업계의 반덤핑 공세가 강화되고 있다. 앞서 현대제철이 중국·일본산 열연강판에 대한 반덤핑 조치를 요청한 데 이어 후판, 도금·컬러강판까지 제소 대상이 확대되는 흐름이다.

동국제강그룹의 도금·컬러강판 전문회사인 동국씨엠은 최근 중국산 건축용 컬러강판·도금강판에 대한 반덤핑 제소를 결정했다. 회사는 세아제강 등과 함께 조만간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에 제소할 예정이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현재 관련 업체들과 조율 중으로 3월 말에서 늦어도 상반기 내에 제소 신청을 진행할 계획”이라며 “정부의 절차와 시점에 맞춰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철강업계는 중국산 저가 제품이 내수 시장을 왜곡하고 있으며 기준 미달 제품이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국내에 유입된 중국산 도금·컬러강판의 수입량은 266만5701톤(t)으로 국내 연간 평균 수요(261만7771톤)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중국산 도금·컬러강판 점유율도 지난해 40.8%까지 치솟으며 국내 철강업체들의 입지를 위협하고 있다.

반덤핑 조치는 국내 철강업체 보호를 위한 유효한 수단으로 평가되지만 업계 내부에서도 이해관계가 복잡한 상황이다.

앞서 현대제철은 지난해 12월 무역위에 중국산·일본산 열연강판의 저가 공급에 국내 철강 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반덤핑 제소를 했다. 현재 열연강판을 생산하는 현대제철 등 철강사들은 해외 저가 수입산 철강재에 따른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반면 열연강판을 사용해 완제품을 만드는 동국제강 등 제강사 입장에선 열연강판 관세 부과가 원가 상승 요인이 된다. 또 제강업체들은 열연강판에 먼저 관세가 부과될 경우 중국 업체들이 최소한의 도금·코팅 등 후가공을 거쳐 도금·컬러강판으로 둔갑해 우회 수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이에 열연강판 반덤핑 관세 조치가 시행될 경우 도금·컬러강판까지 함께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달 11일 서울 종로구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미국 신정부 철강 알리미늄 관세 대응 업계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산업통상자원부

반덤핑 조치는 한·중 무역 갈등을 심화시킬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국은 과거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자국 철강 제품에 반덤핑 조치를 부과하자 보복 관세로 맞선 전례가 있다. 한국이 중국산 철강재에 대해 강도 높은 반덤핑 관세를 부과할 경우, 중국도 한국산 철강 제품이나 기타 산업 제품에 보복 조치를 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반덤핑 제소 결정에도 불구하고 국내 도금·컬러강판 업체들의 주가가 큰 변동을 보이지 않는 것도 이러한 시장의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동국씨엠 주가는 반덤핑 제소 계획을 발표한 지난 27일 1.15% 하락한 6850원으로 마감한 데 이어 현재까지 6800원대에서 등락하고 있다.

김윤상 IM증권 연구원은 “반덤핑 제소 결정에도 최근 동국씨엠, KG스틸 등 국내 주요 도금·컬러강판 업체 주가는 큰 변화가 없었다”면서 “반덤핑 관세 부과에 따른 이해 득실이 업체별로 다르고, 상대 국가가 보복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분석했다.

결국 국내 철강업계가 중국산 저가 제품의 시장 잠식을 막기 위해 반덤핑 카드를 꺼냈지만, 보호무역과 통상 마찰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될 전망이다.

황인태 중앙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과거 중국이 보복 관세를 부과한 사례를 고려하면 이번에도 보복 조치 가능성이 충분히 예상된다”며 “각자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지만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피해 규모는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황 교수는 “철강은 한국의 중요한 산업인 만큼 정부가 피해를 입는 업계를 보완해 줄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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