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1일부터 택배 차량을 새로 살 때 경유 차량은 살 수 없다. 대기오염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대기관리권역의 대기환경개선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택배 차량으로 등록할 땐 친환경 연료 트럭(전기차, LPG)만 가능하다는 것이 골자다. 이 법안은 올해 4월 시행 예정이었다 내년 1월 1일로 한 차례 유예됐다. 하지만 택배업계에서는 친환경 차량 보급 부족과 충전 인프라 미비 등의 문제로 내년 1월 시행도 시기상조라며 반발하고 있다.
21일 택배업계에 따르면 10월까지 신규 등록된 택배 차량은 약 1만4000대다. 이 중 전기차량은 4400여 대였다. 올해에만 한 달 평균 1000대 이상 신규 차량이 늘었는데, 전기차는 월 400대도 채 공급되지 않은 셈이다. 경기 지역에서 택배기사로 일하고 있는 A 씨는 “새해부터 친환경 차량에 대한 보조금 지원이 시작되면서 전기차 수요가 올라간다. 전기차를 주문해도 공급 받는 데 몇 주에서 수 개월이 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주로 사용되는 택배용 전기 화물차는 ‘현대차 포터2 일렉트릭’과 ‘기아 봉고3 EV’로 각각 올해 약 2만6000대와 1만5000대가 생산됐다. 월 3000대 이상이 생산되는 꼴이지만, 택배기사들에게 따로 배정되는 물량은 없다 보니 치열한 확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친환경 차량에 대한 보조금 부족도 친환경 차량으로의 전환을 막는 요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친환경 택배 차량 가격은 경유 택배 차량의 약 2배 수준이다. 이에 정부는 1600만 원 이상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내년부터는 친환경 차량에 지급되는 보조금 액수가 기존보다 10%가량 줄어든다. 보조금 액수가 줄어드는데 친환경 택배 차량이 늘면 보조금이 빠르게 소진될 수 있다. 올해 11월부터 보조금이 소진되자 택배기사들이 아무도 전기차를 사지 않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기차량의 성능과 충전 인프라도 문제다. 포터2 일렉트릭의 경우 한 번 충전 시 주행거리는 약 200km에 그친다. 겨울철이나 언덕 지역, 많은 무게를 싣고 가는 경우엔 이 주행거리가 더 짧아진다.
환경부의 2030 충전인프라 구축 로드맵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차고지 및 택배 거점 등에 설치된 상용차 거점 충전기는 200기에 불과하다. 환경부는 2030년에야 상용차 거점 충전시설을 1만 기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B 씨는 “전기차 성능이 경유차보다 많이 떨어질 뿐 아니라 충전 속도도 급속으로 해도 40분이 넘게 걸린다. 택배 터미널이나 집에 충전기가 없는 기사들은 전기차를 사고 싶어도 못 산다”고 말했다.
이에 일부 택배기사들은 최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을 만나 면담을 했다. 국토부는 법 시행을 막긴 어렵지만, 계도 기간을 주는 방안을 고려해 보겠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택배기사 김슬기 씨는 “중대형 화물차도 매연이 심각한데, 택배 차량에 대해서만 친환경 전환을 강제하고 있다. 그렇다면 택배 전용 보조금이라도 마련해야 한다”며 “전기차 생산과 충전 인프라 등 종합적인 현실을 고려한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