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트라(Tatra)가 이뤄낸 엄청난 혁신

120

타트라 77의 당시 가격은 990파운드로 메르세데스-벤츠와 롤스로이스의 중간 가격대였다
타트라 77의 당시 가격은 990파운드로 메르세데스-벤츠와 롤스로이스의 중간 가격대였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자동차 업계에서는 주목할 만한 수 많은 혁신이 등장했다. 독립식 서스펜션, 놀라운 승차감 개선, 리어 엔진 탑재, 더 나은 견인력과 내부 패키징, 공랭식 엔진, 구조 단순화, 효율적인 차체, 공기저항계수 개선과 그로 인한 성능 및 효율성 향상, 그리고 앞뒤 무게 배분 최적화와 이를 통해 얻어낸 정교하고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다이내믹 성능 같은 게 모두 이 시기에 등장한 혁신 기술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한데 담아낸 차는 없었다. 타트라 77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모든 요소는 타트라 체코 공장의 수석 엔지니어였던 한스 레드빈카(Hans Ledwinka)가 아들 에리히(Erich), 동료이던 에리히 위벨라케르(Erich U¨belacker)와 함께 개발한 백본(backbone) 섀시 콘셉트(이전까지 필수였던 차체 측면 레일 제거)와 더불어 타트라 77을 당시 전 세계 그 어떤 자동차와 비교하더라도 “중요성 측면에서 분명히 뭔가 다른” 위치로 끌어올렸다.  

리어 액슬 바로 뒤쪽 백본 구조 위에 배치한 타트라의 인상적인 V8 3.0L 경량 엔진은 그 형태만큼이나 독특했다. 이 엔진은 반구형 연소실과 드라이 섬프(dry sump), 오버헤드 밸브를 갖추고 있었는데 푸시로드가 아니라 중앙 캠축에서 뻗어 나온 긴 로커(rocker)로 여닫는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타트라 77의 엔진 냉각 방식 역시 엔진 자체만큼이나 특이했는데, 냉각용 재킷(jacket)으로 둘러싼 실린더는 흡기와 배기 모두를 위해 일찍 열리는 구조였다.  한편 타트라 77은 풍동실험을 이용해 디자인한 최초의 자동차 중 하나인데, 그 덕분에 이 세단형 차체의 공기저항계수(Cd)는 0.25(당시 평균은 약 0.7)라는 놀라운 수준이었다.  

타트라가 실험에 사용한 장소는 정확히 말해 체펠린(Zeppelin)의 풍동터널이었다. 디자이너 폴 재레이(Paul Jaray)는 과거 이 유명한 비행선 제조사에서 일했던 적이 있었고, 그 덕분에 당시만 해도 대다수 자동차 업체들이 잘 몰랐던 공기역학 지식을 갖고 있었다.  이토록 놀라운 수치를 기록하고도 재레이는 만족하지 않았다. 배기량을 더 키운 V8 3.4L 엔진으로 성능을 강화하고 1935년에 등장한 타트라 77a는, 더욱 높은 수준의 공기역학 기술을 적용하고 있었다. 이 차의 공기저항계수는 0.22로 추정된다. 

아, 그리고 이 차는 이동식 반사경을 갖춘 ‘제3의 헤드라이트’를 차체 앞머리 한가운데에 배치하고 있었다! 타트라 77의 실내는 아주 넓고(앞좌석과 뒷좌석 모두에 어른 세 명이 뒷좌석에 편안히 앉을 수 있었으며, 심지어 이 차는 무척 드물게 중앙 운전석을 제공했다) 놀라우리만큼 고급스러울 뿐 아니라 잘 꾸며져 있었다.  사실 이 모두는 타트라에게도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원래는 낮은 가격대의 소형차를 위한 아이디어였지만, 타트라는 이미 그런 소형차들이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으며 잘 팔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소형차에 섣불리 혁신을 가했다간 자칫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타트라 87은 획기적인 77의 강점을 더욱 가다듬었다
타트라 87은 획기적인 77의 강점을 더욱 가다듬었다

1935년 당시 타트라 77을 시승한 <오토카> 기자는 “운전이 무척 흥미로웠고, 무게(약 1700kg)와 엔진 크기를 고려할 때 가속력이 좋았으며 급회전 시 차체 기울기 변화에 과하게 민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승차감은 정말 편안했고, 포트홀이 즐비한 거친 언덕을 빠른 속도로 질주한 경험은 한마디로 놀라웠다. 함께 차에 타고 있던 네 명 중 그 누구도 다른 차를 몰고 그 코스의 거친 노면에서 감히 그 절반의 속도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타트라의 실내에서는 거의 아무런 충격도 느낄 수 없었다”고 적었다.  

전쟁 중 나치 장교들에게 타트라 운전을 금지시켰던 건 유명한 일화다. 바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 치명적 사고 때문이었을 것이다.  1942년 브리스톨 항공기 엔진 디자이너 로이 페든(Roy Fedden) 경은 우리가 했던 것과 같은 시승차를 운전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영국 브리스톨의 도로에서 경험했던 접지력과 가속 능력에 감탄했다고 말했다(굳이 덧붙이자면, 알파 로메오 밀레 밀리아(Mille Miglia) 버전에 이은 두 번째 정도 수준이었다). 타트라는 1936년 87을 개발하면서 이 같은 장점들을 더욱 개선했다. 이후 1950년까지 새로 개발한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이었다. 

AUTOCAR Archive_크리스 쿨머 (Kris Culmer)

 

+1
0
+1
0
+1
0
+1
0
+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