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의 국가대표팀 40년 뒷바라지가 2024 파리올림픽에서 절정을 맞았다. 대한민국 양궁 대표팀이 이번 올림픽에서 양궁 종목에 걸린 금메달 5개를 모두 차지하면서 신기록을 쏟아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직접 프랑스 파리로 날아가 경기를 관람하고 선수들을 격려했다.
여자양궁 대표팀(전훈영·임시현·남수현)은 여자 단체전 10연패 금자탑을 쌓았다. 또한 양궁에서만 이번 대회 금메달 3관왕이 2명(김우진·임시현)이나 배출됐다.
남자 대표팀 맏형 김우진 선수는 이번 대회(3개)를 포함해 올림픽에서만 총 5개의 금메달을 목에 건 최초의 한국 선수가 됐다. 동·하계 올림픽을 통틀어 한국 선수 통산 최다 금메달리스트 신기록이다.
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앵발리드 경기장에서 열린 남자양궁 리커브 개인 결승전에서 김우진 선수가 슛오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미국 대표팀 브래디 엘리슨을 이기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경기결과는 6대 5.
결승전인 만큼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호각지세의 승부가 펼쳐졌다. 김우진은 1세트와 3세트를 내주고 2세트와 4세트에서 엘리슨을 추격하는 경기를 펼쳤다. 5세트에서는 두 선수 모두 10-10-10을 쏘면서 승부가 나지 않았다. 점수 5대 5 상황에서 화살을 한 발씩 쏴서 승부를 결정짓는 슛오프에 돌입했다. 여기서도 김우진이 먼저 10점을 쐈고 엘리슨도 10점을 맞혔다. 하지만 김우진의 화살이 과녁 정중앙에 가까워 최종 금메달을 차지하게 됐다. 정중앙에서의 거리는 김우진 화살이 55.8mm, 엘리슨의 화살은 60.7mm로 기록됐다.
김우진은 남자양궁 국가대표 최초로 단체전(김우진·이우석·김제덕)과 혼성전(김우진·임시현), 개인전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낸 첫 선수로 역사를 썼다. 여자양궁 국가대표 임시현 선수와 함께 나란히 3관왕에 이름을 올렸다. 양궁 종목에서만 금메달 3관왕이 2명이나 배출되는 기염을 토했다. 올림픽에서 여자양궁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적이 저조했던 남자양궁이 이번 대회에서는 대등한 성적으로 한국양궁의 전 종목 석권에 힘을 보탰다. 한국양궁 국가대표팀 최종 성적은 금메달 5개와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 등이다. 대표팀 전원이 금메달을 하나 이상씩 획득했다. 감독과 코치는 홍승진(청주시청) 총감독을 중심으로 양창훈(현대모비스양궁단) 감독과 김문정 코치가 여자 대표팀을 이끌었고 박성수(인천계양구청) 감독과 임동현(청주시청) 코치가 남자 대표팀을 지도했다.
금메달 5개를 포함해 총 7개 메달을 휩쓴 국가대표팀의 이번 양궁 신화는 선수 개개인들의 헌신과 노력이 주된 요인이지만 현대차그룹의 조력도 숨은 공신으로 평가받는다. 그룹 회장이 직접 나서 챙기는 만큼 한국양궁에 대한 현대차그룹의 지원은 신속하고 전폭적으로 이뤄졌다. 특히 이번 올림픽에서는 한국양궁 대표팀이 경기를 펼칠 때 관중석에서 경기를 관람하는 정의선 회장의 모습이 자주 나왔다. 남자 대표팀이 단체전 결승전에서 프랑스를 제압하고 금메달을 확정했을 때에는 여자 대표팀 선수 3명과 관중석에서 손을 번쩍 들어올려 환호하기도 했다. 국내 다른 대기업도 현대차그룹처럼 올림픽 1개 종목씩 도맡아 전폭적인 지원이 더해진다면 더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985년부터 대한양궁협회 회장사를 맡아 40년 동안 한국양궁에 대한 지원을 이어왔다. 국내 단일 종목 최장 기간 스포츠단체 후원 기록이면서 아버지 정몽구 명예회장에 이어 2대째 이어지고 있는 후원이다. 정의선 회장은 2005년부터 대한양궁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정 회장이 협회 회장을 맡고 있지만 후원사인 현대차그룹이 협회 운영이나 대표팀 선발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위한 조치로 학연이나 지연, 파벌 등으로 인한 불합리한 관행이나 불공정한 선수 발탁이 없고 대표팀은 철저하게 경쟁을 통해서만 선발된다고 한다. 때문에 지난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일지라도 다음 대회 대표로 선발된다는 보장은 없다. 매 올림픽마다 한국양궁 국가대표 선수 이름이 생소한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 한 스포츠협회가 국가대표 감독 선임 과정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은 모습과 크게 비교되는 모습이다. 해당 협회는 협회장과 동문을 중심으로 임원진 및 선수간 파벌을 형성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논란을 야기했다. 최근 감독 선임 과정에서는 한 외국인 감독 후보자가 면접에서 PPT를 100장 가까이 발표하고 협회가 요구하는 연봉까지 맞출 정도로 정성을 보였지만 결국 탈락했다. 대신 그동안 국가대표 감독직을 맡지 않겠다고 밝혀온 한국인 전 대표팀 감독을 별다른 면접 절차 없이 대표팀 감독에 다시 발탁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대한양궁협회는 해당 협회와 달랐다. 정의선 협회장과 현대차그룹은 협회 내부 업무에 관여하지 않고 대신 협회의 안정적인 운영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재정 안정화부터 양궁 과학화 기반 경기력 향상, 우수선수 육성 시스템 체계화, 선수 생활을 마친 양궁인 지원, 한국양궁 국제 위상 강화 등 선수단 강화를 위한 제반 여건 개선에만 집중한 것이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특기인 연구·개발(R&D) 역량까지 양궁에 접목했다. 대표적으로 선수 개인훈련용 슈팅로봇과 슈팅 자세 정밀 분석을 위한 야외 훈련용 다중카메라, 휴대용 활 장비 상태 확인 장비, 신소재 복사냉각 모자, 선수 맞춤형 그립 등이 있다.
이번 대회의 경우 3년 전 도쿄올림픽이 끝난 직후부터 파리올림픽을 준비했다고 한다. 이번 대회 경기장을 재현한 시설을 충북 진천선수촌에 조성해 선수들이 미리 올림픽에 적응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파리 센강 강바람에 적응할 수 있도록 경기도 여주시 남한강변에서 양궁 연습을 진행했고 전북 축구경기장에서 소음 적응 훈련도 지원했다. 파리올림픽이 임박한 지난달 중순에는 선수단을 미리 출국시켜 시차에 적응할 수 있도록 했고 양궁 경기장에서 10km가량 떨어진 곳의 한 스포츠클럽을 통째로 빌려 한국양궁 대표팀 전용 연습장으로 운영하기도 했다. 이번 올림픽 양궁경기는 선수들 개인의 노력과 함께 정의선 회장과 현대차그룹의 선제적인 지원이 만들어낸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완성됐다는 평가다.
정의선 회장은 이번 올림픽 양궁 종목 금메달 석권에 대해 “기대 이상의 성적을 보여준 것으로 선수들에게 제일 고맙다”며 “선수들이 꿈꾸는 걸 이뤄서, 선수들 본인이 가진 기량을 살려 모든 걸 이뤘다는 점이 제일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정의선 회장의 기쁨은 선수들과 촬영한 기념사진 표정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한국양궁의 원동력에 대해서는 선대 회장과 선수들, 협회로 공을 돌렸다. 정 회장은 “우리나라가 양궁을 처음 시작하게 됐을 때 노력하신 선대 회장님이 계셨고 양궁협회 시스템과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졌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협회와 우리 선수들, 스텝들의 믿음이라고 본다. 서로 믿고 한마음이었기 때문에 더 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외국민(교민·교포)를 포함한 국민과 정부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정 회장은 “티켓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경기장까지 찾아와 응원해준 국민께 감사하다”며 “특히 현지에서 응원해주신 재외국민분들이 없었으면 우리 선수들이 상당히 외롭게 시합을 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정부와 대통령을 비롯해 문화체육부와 대한체육회의 지원에 대해서도 감사하다”며 “이런 모든 것들이 합쳐져서 이렇게 좋은 성과를 냈고 우리(정 회장과 현대차그룹)에게는 큰 행운이고 영광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민범 동아닷컴 기자 mb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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