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서구 청라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차 화재로 ‘전기차 포비아’(공포증)가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해당 차량에 세계 10위권 수준의 중국산 배터리가 탑재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소비자의 ‘배터리 제조사 알 권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완성차 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 1일 발생한 벤츠 준대형 전기 세단 EQE 화재 사고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배터리 공개 정보 요구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벤츠 전기차 소유주를 중심으로 이뤄진 ‘메르세데스-벤츠 EQ 클럽’에서는 “벤츠는 차주에게 배터리 브랜드를 알려줘야 한다”는 게시글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이번 사고 차량인 벤츠 EQE에 탑재된 배터리 때문이다. 당초 알려진 세계 1위 배터리 업체인 중국 CATL 배터리가 아닌 중국 ‘파라시스’(Farasis) 제품인 사실이 지난 5일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 확인됐다.
파라시스는 지난해 세계 10위로 비교적 덜 알려진 업체다. 게다가 탑재된 파라시스의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는 2021년 중국에서 화재 위험으로 리콜을 실시해 품질 우려를 키웠다. 중국 배터리사들은 주력제품인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에서는 기술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지만 뒤늦게 뛰어든 삼원계(NCM·NCA) 배터리의 경우 배터리 품질에 대한 의구심이 지속돼 왔다.
삼원계 배터리는 LFP 배터리보다 비싸고 안정성을 잡기 어렵지만, 주행거리가 길고 에너지밀도가 높으며 무게도 상대적으로 가볍기 때문에 기술적 난도가 높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LFP 배터리는 시장에서 (품질이) 어느 정도 입증됐지만, NCM·NCA 배터리는 후발주자”라며 “배터리 수율 개선에만 천문학적 비용을 쏟는 한국과 달리 중국의 (NCM) 기술력이나 안정성은 업계 내에서도 의문이 많다”고 말했다.
이에 소비자들은 “벤츠가 1억 원이 넘는 차량에 품질이 떨어지는 듣도 보도 못한 배터리를 탑재했다”는 실망감을 쏟아내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파라시스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 목록까지 돌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벤츠 모회사인 다임러는 2018년 파라시스와 10년간 170GWh(기가와트시) 규모의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2020년에는 벤츠가 파라시스 지분 3%를 인수하며 협력 관계는 더 견고해졌다.
벤츠 측은 파라시스 배터리 탑재 차량이 얼마나 많은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배터리뿐 아니라 모든 부품의 납품처 정보는 밝히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화재가 난 전기차 EQE를 비롯해 EQA, EQB 등 다수 모델에서 초기 물량에 파라시스 배터리가 탑재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벤츠의 한 판매사 딜러는 “전기차 구매 고객들이 자신의 차량 배터리 제조사를 알려달라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며 “딜러 역시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아 명쾌한 답변을 줄 수 없어 답답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배터리는 전기차의 핵심 부품이다. 주행거리 등 성능은 물론 안전 측면에서도 그 중요성이 절대적이다. 그런데 벤츠뿐 아니라 전기차 제조사들은 대체로 배터리 용량과 주행거리 등 기본적인 제원 외에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는 데에는 적극적이지 않다.
자동차 회사가 알려주지 않는 한 고객이 스스로 배터리 제조사 등의 정보를 확인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 전기차 배터리는 차량 하부에 깔리기 때문에 운전석 앞 보닛을 열어도 제품을 육안으로 확인할 길이 없다.
업계는 이번 벤츠 전기차 화재로 전기차 정보 공개 범위가 확대할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OECD 다국적 기업 가이드라인’은 “기업은 소비자가 정보에 기초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검증할 수 있는 명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며 “배터리 원산지나 제조사 출처를 숨기는 것은 소비자를 오도하는 불공정한 표시로 지양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정부는 내년 2월 ‘전기차 배터리 안전성 인증제’를 도입한다. 또 자동차 배터리 식별번호를 차량 등록 시 별도로 등록해 운행부터 폐차까지 배터리 이력을 관리할 계획이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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