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차의 자존심’… 폭스바겐이 10만 명 해고 칼 빼든 ‘뜻밖의 이유’


유럽 최대 완성차 그룹 폭스바겐이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구조조정 기로에 섰다. 올리버 블루메 CEO는 2026년 8월 23일 내부망을 통해 회사 상황이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다(more than critical)”고 선언하며, 최대 10만 명 감원과 독일 내 4개 공장 폐쇄 가능성을 공식화했다.
2021년부터 2025년 사이 연간 영업이익이 반토막 난 데 이어, 2026년 상반기에도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약 12% 추가 감소했다. 독일 자동차 산업의 심장부가 구조적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중국 이익이 사라지자 드러난 고비용 구조의 민낯
전문가들은 폭스바겐의 위기를 “비즈니스 모델의 붕괴”로 규정한다. 그동안 독일 공장의 높은 인건비와 설비 투자 비용은 중국 사업에서 나오는 막대한 이익으로 상쇄되어 왔다. 그러나 중국 내 로컬 전기차 브랜드의 급성장으로 폭스바겐의 중국 수익성이 급락하면서, 독일 고비용 구조를 지탱하던 ‘현금창출원’이 사실상 소멸됐다.
블루메 CEO는 내부 메모에서 폭스바겐의 간접비(오버헤드)가 경쟁사보다 약 30% 높다고 직접 인정했다. 전체 비용 구조로는 경쟁사 대비 20~30%의 열위를 보인다. 폭스바겐이 보유한 연간 생산능력은 1,200만 대 이상이지만, 최근 3년간 실제 판매는 900만 대를 밑도는 수준에 그쳤다. 유럽에서만 연간 50만 대 규모의 구조적 과잉 생산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폐쇄 위기의 4개 공장과 ‘최후의 수단’

블루메 CEO가 “2030년대에도 수익성을 유지할 방법을 찾을 수 없다”고 공개 지목한 공장은 엠덴(Emden), 하노버(Hannover), 츠비카우(Zwickau), 네카르줄름(Neckarsulm) 등 4곳이다. 이 중 츠비카우는 폭스바겐과 아우디 전기차의 핵심 생산 거점이며, 네카르줄름은 아우디 고급 세단과 스포츠카를 생산하는 곳으로 이미 6,000여 명이 참여한 대규모 반대 시위가 열렸다.
블루메 CEO는 공장 폐쇄에 대해 “최후의,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해법”이라고 표현하면서도, 생산 중단 가능성이 있는 오스나브뤼크(Osnabrück) 공장은 방위산업체와의 협력을 통한 ‘산업적 해법’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볼프스부르크 본사, 엠덴, 츠비카우, 하노버 등지에서 직원 총회가 연달아 예정돼 있으며, 9월 초 감독이사회에서 공식 논의가 재개될 전망이다.
노조·정치권의 거센 저항…장기 협상전 불가피
독일 최대 산별노조 IG메탈의 크리스니아네 배너 위원장은 “노동자들이 이미 무겁고 고통스러운 감원을 받아들여야 했는데, 이제 또 한 번 뺨을 맞고 있다”며 공장 폐쇄에 정면 대응을 예고했다. 2024년 말 이미 독일 내 약 3만5,000~5만 명의 자발적 감원에 합의한 바 있는 노조는, 추가 5만 명 감원과 공장 폐쇄를 ‘레드라인’으로 규정한다.
폭스바겐은 니더작센주(州)가 약 20%의 의결권을 보유한 공공주주이며, 노동이사와 IG메탈이 감독이사회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특수한 지배구조를 갖는다. 실제로 지난 7월 감독이사회에서 경영진의 공장 폐쇄·추가 감원안은 노동 측과 니더작센주의 반대로 ‘보류’ 상태에 놓였다.
한편 폭스바겐 최대 주주인 포르쉐 SE와 포르쉐·피에히 지배 가족은 블루메의 구조조정 계획을 지지하며 “조치를 더 빠르게 실행해야 한다”고 공개 압박하는 등 내부 이해관계자 간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