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되는 앎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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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 삶의 소소한 기쁨은 아침 출근길에 버스에 앉아서 하는 10분 정도의 이탈리아어 공부다. 어학 학습 앱인 ‘듀오링고’를 켜두고 매일 두 개에서 세 개 정도의 새로운 단어를 배우고, 스무 개 정도의 문제를 풀면 10분이 지나간다. ‘설탕 넣은 커피 주세요’에서 ‘내 친구는 밀라노에서 왔어’를 지나 ‘나의 자매는 키가 크고, 내성적이다’를 더듬더듬 말할 수 있는 정도까지 왔다. 엄밀히 따지면 핸드폰 마이크에 대고 단어를 나열하는 정도지만, 이렇게 계속하다 보면 누군가와 대화도 할 수 있겠지라는 마음이다.

사실 2024년 6월의 내가 이탈리아어 공부를 하고 있으리라는 것을 한 달 전만 해도 몰랐다.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이탈리아에 가고 싶어졌고, 친구들과 ‘언젠가 렌트해서 유럽을 여행하자’는 얘기를 나눴던 것이 생각나 단톡방에 말을 던졌다. 주말에 만난 우리는 2026년 여름이나 가을 사이 여행을 가기로 하고, 24개월짜리 ‘계’를 시작했다. 대강의 코스와 예산을 생각하고, 그곳에 존재할 우리를 미리 상상하니 금방 신이 났다. 신이 난 김에 ‘이탈리아어로 와인 정도는 주문하고 싶으니까’ 공부도 같이 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지도 못했던 이탈리아어 공부가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기초적인 배움을 한 게 언제더라? 친구들과 단톡방에서 그날 배운 이탈리아어를 떠들면서 재미있어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커피에 설탕을 안 넣어 먹잖아. 이걸 어디다 써먹지?” 같은 푸념을 하는 것 자체가 재밌어서 내일의 단어와 내일의 표현을 또 기다린다.

여행을 가기 위해 시작했지만, 사실 그 목표가 아주 강력한 동력이 되지는 않는다. 2년 뒤에는 완벽한 번역기가 등장할 수도 있고, 여행을 하는 우리가 현지인과 나눌 수 있는 대화는 아주 제한적일 거라 몇 개의 단어로 소통이 끝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계속하는 이유는 아주 흐릿한 목적으로 뭔가를 배우는 경험이 내게 매일의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내 삶에서 목적 없이 그냥 새로운 것을 알아간다는 기쁨으로 뭔가를 경험하고 배운 적은 그다지 많지 않다. 특히 외국어 학습의 길은 더더욱 그랬다. 영어는 당연히 해야 하니까(그리고 시험을 봐야 하니까), 중국어는 앞으로 유용한 언어가 될 거라고 하니까, 일본어는 어학 시험에 도전해 볼까 싶어서.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 기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모두 어떤 목표를 두고 해야 하는 것을 수행하는 과정이기도 했기 때문에 약간의 조급함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그 동력이 학습 속도를 높이고, 성취의 기쁨을 선사하기도 했다. 다만 속도나 성취를 생각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순순한 기쁨을 엉뚱한 언어를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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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즐겨 듣던 ‘일 디보’의 가사에 자주 등장하는 ‘per favore(영어로는 please라고 번역할 수 있다)’가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던 날, 그 노래가 얼마나 간절히 애원하는 노래였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예상치 못했던 세계를 이해하는 이런 경험이 앞으로 천천히 공부를 해나가는 한 계속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음악을 듣거나 영상을 찾아보던 내 출근길이 2년 뒤 이탈리아의 여행길을 매일 기대하게 만드는 시간이 되었다. 아직 멀었고(물론 생각보다 또 빠르게 찾아오겠지만), 가서 쓸 말은 많지 않으니 오늘 ‘고맙다’를 알았으면 내일 ‘미안하다’가 뭔지 알면 되는 정도의 속도로, 또 그걸 까먹으면 그 다음날 다시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성과와 성취, 의미에 몰두하기 쉬운 일상에 찾아온 10분 덕분에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된다.

그동안 내게 7월은 조급해지는 계절이었다. 벌써 일 년의 절반을 보냈으니 남은 반을 더 잘 살아야 할 텐데 하는 마음이 들곤 했으니까. 나와 같은 누군가가 있다면 지금 내 일상과 아무런 접점이 없는, 그래서 목표가 없어도 좋은 뭔가를 배워보면 어떠냐고 얘기해 보고 싶다. 뭔가를 하는 그 행위 자체로 기쁨이 되는 경험이 남은 절반을 더 풍요롭고 즐겁게 만들어줄 수도 있으니까.

홍진아

카카오 임팩트 사업팀장이자 프로N잡러. 〈나는 오늘도 내가 만든 일터로 출근합니다〉 등의 책을 썼고, 밀레니얼 여성을 위한 커뮤니티 서비스 ‘빌라선샤인’을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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