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암살자(들)’ 이민호, 자유로움을 입고 더 깊어진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여유롭고 능글맞지만 진실 앞에서는 거침이 없다. 배우 이민호가 영화 ‘암살자(들)’에서 맡은 영일은 무거운 시대 한가운데서 유독 생동하는 인물이다. 이민호는 가벼움과 진지함을 자유롭게 오가며 영일의 입체적인 면모를 살린다. 자신이 돋보이기보다 작품과 인물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모습에서도 한층 깊어진 배우의 모습이 엿보인다.
오는 23일 개봉하는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영부인 저격 사건을 소재로, 그날을 둘러싼 의혹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추적극이다. 이민호가 연기한 영일은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사회부 기자다. 자신의 배경을 취재에 활용할 만큼 능청스럽고 여유롭지만 기자라는 일에는 누구보다 진심이며,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몸을 사리지 않는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이민호는 그런 영일을 “활어 같은 인물”이라고 표현하며, 유해진·박해일 등 선배 배우들 사이에서 “잘 묻히는 것”을 이번 작품을 시작하며 스스로에게 던진 가장 중요한 숙제로 꼽았다. 영일을 만들어간 과정부터 허진호 감독·박해일과의 작업, 배우로서의 고민까지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해당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일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어갔나.
“영일의 버전이 몇 가지 있었다. 처음 대본을 봤을 때는 눈에 띌 만큼 배경적인 게 보이진 않았는데, 촬영하고 편집해 나가면서 그런 지점들이 조금 더 부각된 것 같다. ‘쌍화차 좋아하세요?’라든지 기자들이 탄압을 한 번 당하고 나서 모여서 술을 먹는 장면 같은 건 다 만들어서 했다. 비극을 희극으로 만들고 싶은 느낌이었다. 영일을 굉장히 건강한 친구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배경이 우선시되지 않고, 그 배경의 발단이 되는 가족 관계도 존중하면서 자신이 가고자 하고 싶은, 살아있다고 느낄 만한 요소들을 찾는 청춘의 일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재환(박해일 분)을 ‘좋은 어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처음 만난 상대라고 상상했다. 그런 재환의 밑에서 처음으로 사회에 던져져 자신의 욕망을 찾아가고 경험해 나가는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표현하고자 했다.”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었나.
“활어 같은 인물이었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철구(유해진 분)나 재환은 굉장히 사회적인 것들로부터 계속 짓눌려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 면에서 영일은 든든한 배경이 있기 때문에 그들보다는 자유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극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서 그 지점을 가장 우선시했다. 다만 그게 작품 전체에 묻히지 않거나 나대는 걸로 보이는 지점까지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그 수위를 감독님과 많이 이야기했다. 그리고 영일은 자신이 가진 것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지금으로 따지면 ‘MZ’ 같은 느낌이지 않았을까. 억압받는 시대상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도 주관이 뚜렷하다. 그게 참 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는 조금 앞서 나가는 인물, 큰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배경을 가진 영일이 기자라는 직업을 택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했나.
“그 사건이 일어난 해 반유신운동이 적극적으로 일어났다는 사실을 공부하면서 알았다. 그렇다면 이미 대학가에서 공부 좀 하고 엘리트라고 불릴 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런 운동의 움직임이 충분히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영일은 현장에 나가서 운동을 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더 세련된 방식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런 것들에 참여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영일이 추구하는 자유와 진실에 대한 건강한 생각을 가진 인물이 하기에는 기자라는 직업이 가장 적합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나.
“감독님이 시대에 대한 언급은 많이 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놓여 있을 때 이 인물이 어떨까라는 질문을 많이 하셨다. 그 시대상의 정서와 바이브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공부를 많이 하고 들어갔다. 가장 중요한 정서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진정한 주인공은 보이지 않는 그 시대적 정서와 분위기이기 때문에 그것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중에서도 반유신 운동이 딱 그때쯤이었다는 게 영일에게 가장 부합하는 키워드여서 그런 쪽으로 많이 생각했다.”
-극 중 영일이 재환을 바라봤던 것처럼 박해일을 바라봤을 것 같다. 호흡은 어땠나.
“늘 고뇌에 빠져 있는 소년 같았다. ‘뭐 저리도 많은 질문을 아직도 짊어지고 계실까’ 싶을 정도로 매 컷이 끝나면 고뇌에 잠겨서 뭔가를 고민하고 생각한다. 또 어떤 때 보면 아직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궁금해하는, 그런 양면성이 존재하는 분이었다.”
-허진호 감독은 이민호에게도 ‘소년미’가 있다고 하더라.
“나는 비극을 희극으로 만드는 한순간의 매직을 되게 좋아한다. 가장 비참하거나 힘들 때 위트 한 스푼이 얹어지면 긍정으로 바뀌는 힘이 있다고 믿는데, 그 부분을 ‘소년미’라고 표현해 주신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가끔 엄청 진지하고 무거운 상황일 때 혼자 빵 터질 때가 있는데, 그 빵 터지는 에너지를 그래도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 다행히 눈치가 빠른 편이어서 눈치를 봐가면서 ‘여기서 해도 되겠다’ 할 때 터지는 편이다.(웃음)”
-허진호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우리가 소개팅 같은 걸 할 때 아니고서야 누군가에게 계속 질문을 하는 대화를 하기가 쉽지 않지 않나. 이번에 허진호 감독님을 보면서 ‘질문의 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됐다. 쉼 없이 이 사람에 대해서 또는 어떤 상황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면서 배우가 그 지점까지 혼자 도달하는 과정에서 가장 진실된 모습을 찾고 추구하는 감독님이었다. 나한테는 새로운 작업 방식이었는데 그런 점이 너무 좋았다. 첫 촬영 때는 그래도 ‘이랬으면 좋겠다’는 명확한 디렉션을 몇 가지 주셨는데, 첫 촬영 이후부터는 거의 그런 디렉션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자유롭게 연기했고, 가장 진짜 같은 모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었다.”

-‘쌍화차 좋아하세요?’라는 대사가 배우의 아이디어였다고. 어떻게 떠올리게 됐나.
“그 신은 원래 대사가 좀 더 길었다. 앞에서 한마디를 하고 마지막에 ‘끝나고 시간 있으세요?’라고 하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너무 의도가 뻔히 드러나는 설명적인 대사여서 감독님한테 ‘이거 대사가 좀 재미없는 것 같다. 다른 거였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고민해 볼게. 너도 고민해 봐’라고 하셨다. 현장에 가서 첫 테이크를 갈 때 따로 말씀드리지 않고 그 한마디를 했는데 좋아해 주셔서 그걸로 가게 됐다. 그 한마디에 의도와 캐릭터가 갖고 있는 상황의 매력이 맺어지는 것 같아서 하게 됐다. 나도 쌍화차는 안 마셔봤지만 쌍화차를 알지 않나. ‘커피 한잔하실래요?’ 같은 건 요즘도 할 수 있고, 그런 것들을 상상하다가 ‘카페를 가나?’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러다 ‘쌍화차’라는 단어가 딱 생각났다. 그런데 ‘쌍화차 한잔하러 가실래요?’도 재미가 없으니까 그냥 ‘쌍화차 좋아하세요?’라고 물어본 거다.”
-일본 장면에서 영일이 기자라는 직업과 자신이 추구하는 신념에 진심인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그 순간 영일의 마음을 어떻게 생각했나.
“피해자의 사망을 눈앞에서 목격하지 않았나.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 했다. 다만 극 전체를 봤을 때 그 충격과 안쓰러움을 계속 가져가는 건 해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안에만 묵혀 있던 것이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겠다는 상황을 목도했을 때 그렇게 거침없이 손을 내뻗는 모습으로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연기했다. 나도 늘 본능적이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망이 있다. 어떤 상황을 딱 마주했을 때 물론 이성적인 사고는 하겠지만 몸이 먼저 반응하는 순간들이 있지 않나. 그럴 때 나는 부끄럽고 싶지 않고 그냥 본능적이고 싶다는 욕망이 있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내가 똑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도 ‘저럴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 보면,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손가락 없어도 장가갑니다’라는 대사도 좋았다.”
-앞서 비극을 희극으로 바꾸는 순간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배우에게 유머는 어떤 힘을 갖고 있나.
“‘손가락 없어도 장가갑니다’와 일맥상통하는 게 있다. 내가 스무 살 때 교통사고가 크게 났는데,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의사가 엄마한테 ‘못 걸을 수도 있어요’라고 이야기했다. 의사로서는 최악의 상황을 얘기한 거겠지. 그런데 그때도 수술실에 들어가면서 엄마한테 ‘나 군대 안 간대’라고 해맑게 말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부터인 것 같다. 영일과 이민호라는 사람이 맞닿아 있는 지점도 그런 부분이 아닐까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수술실 문이 닫히고 나서는 엉엉 울었다. 씩씩한 척하다가. 스무 살 때니까. 그때부터 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그런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힘들고 어려울 수 있는 상황에서도 긍정의 에너지로 같이 또 다음을 도모하는 게 기저에 깔려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파친코’ 이후 작품과 연기를 대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의 행보를 스스로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앞으로 배우로서 더 추구하고 싶은 방향도 궁금하다.
“이번에 선배님들을 보면서 확실히 느낀 건 기술적으로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우선시돼야 한다는 거였다. ‘좋은 사람’이라고 하면 조금 고리타분한 단어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포용력이 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고 정서적으로 많은 사람을 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결국 내가 그런 사람이 돼야만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선배님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잘하고 있다, 아니다에 대한 생각은 어렸을 때부터 해본 적이 없다. 그냥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고, 그에 대한 평가가 좋든 안 좋든 앞선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내 컨디션이 오락가락할 정도로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면에서 ‘파친코’를 접했던 시기가 인생에 대한 고민과 배우로서의 고민이 많이 겹쳐 있을 때였다. ‘파친코’라는 작품을 통해 자유로움을 한 번 느끼고 왔고, 그다음부터는 더 거침없이 내가 느끼는 것 또는 꽂히는 것은 그냥 하게 되는 그런 삶을 지향하고 있다.”
-그 시기를 기점으로 연기뿐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변화가 있었던 건가.
“에너지의 전환인 것 같다. 그래서 자기 인생을 바라보는 본인만의 관점이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이른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사회에 던져져서 많은 사랑을 받아봤고 그 소중함을 외면하지 않고 온전히 느끼는 사람이다 보니까 책임감과 그 틀 안에서 모두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 개인적인 욕망보다 우선시되는 삶의 관점이었다. 그 이후부터는 또 다른 에너지를 내고 싶었고, 인생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원하는 시기였다. ‘파친코’ 때부터 완전히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인생의 관점으로 변했다. 연기적으로 갑자기 뭔가 변했다거나 그런 건 전혀 없었는데, 사람 하나가 한순간에 바뀌어버리니까 에너지가 다르게 나온 것 같다. 나의 어떤 태도나 뭔가를 대하는 방식은 달라진 게 없는데 마음이 좀 달라졌다. 이제는 내 마음이 동요하면 하는 거고, 동요하지 않으면 예전 같았으면 했겠지만 지금은 안 한다. 이번 촬영장 같은 경우에는 정말 마음이 더 가고 애정이 가고, 내가 더 보고 싶은 그런 욕망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 더 많이 그렇게 했던 현장이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스스로에게 던진 가장 큰 숙제는 무엇이었나.
“나는 상황이 큰 것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까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을 만한 캐릭터들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고, 나와 덜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지점도 없지 않아 있었다. ‘파친코’라는 작품도 만약 한국에서 제작됐다면 그 역할에 나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라는 물음을 던져보면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암살자(들)’도 마찬가지다. 유해진 선배, 박해일 선배 사이에 이민호라는 배우가 있을 때 과연 잘 묻어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나 또한 이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라고 생각했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다. 튀지 않게 그 안에서, 그 시대와 선배님들 사이에 잘 묻히는 게 나한테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다. 앞으로도 어떤 작업을 하든, 개인적으로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그 상황에 잘 묻히는 것이 지금 이 시대를 잘 살아가고 있다는 방증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그런 숙제를 안고 살아갈 것 같다.”
-청춘 스타에서 출발해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서 표현할 수 있는 것도 넓어지고 깊어졌다. 스스로도 배우로 익어가고 있다는 걸 체감하나.
“나이를 먹는다는 게 썩 반갑지는 않다.(웃음) 늘 막내이고 싶은 욕망이 있다. 내가 어른인 척하고 싶을 때 어른인 척하고, 뭔가를 실수해도 ‘아직 막내니까, 어리니까’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청춘의 시기가 가장 편한 것 같다. 그런데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모든 것에 대한 책임에서 현실적으로도 회피할 수 없는 나이대에 접어들다 보니까 가끔은 그냥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와 소통할 때 그 사람의 고충이 무엇인지 이야기하지 않아도 짐작이 되고, 그 고충까지 품으면서 대화할 수 있는 지점들이 생겨난다는 것에서 조금 더 깊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결국 연기를 할 때도 대본으로 접하는 건 그 상황이지만, 상황 이면의 것을 헤아리면서 연기하려고 하다 보니까 그런 지점에서 그렇게 봐주신 게 아닌가 생각한다. 다만 내 안에 소년미는 계속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세상을 조금 더 자유롭게 바라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