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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속도를 지키는 일

박지수

격월간 사진 잡지 〈보스토크〉 매거진 편집장. 〈잡지 만드는 법〉을 썼다.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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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은 얼마일까? 그동안 충분한 시간을 들여 책을 만들었을까? 이런 생각을 처음 한 것은 조금 난데없지만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공항의 화장실에서였다. 볼일을 보고 손을 씻기 위해 세면대 수도 버튼을 눌렀다. 누르면 물이 나왔다가 얼마 후에 자동으로 멈추는 버튼은 한국에서도 자주 접했던 것이었다. 익숙하게 버튼을 누르고 손을 씻기 시작했지만, 얼마 후 나는 조금 당황했다. 이쯤이면 멈출 때가 됐는데 물이 계속 나왔다. 한국에서는 버튼 한 번 누르면 대개 10~15초쯤 물이 나온다. 한 번 누르고 손 적시고, 또 한 번 누르고 비누칠하고, 또 한 번 누르고 손을 헹구고…. 이렇게 서너 번은 눌러야 손 씻기를 마칠 수 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에서는 한 번만 눌러도 충분했다. 적시고, 비누칠하고, 헹구기까지 버튼 한 번으로 마칠 수 있는 거다. 스코틀랜드에 한 달 정도 머물렀고, 어딜 가나 버튼식 수도라면 보통 1분가량 물이 나오곤 했다. 때로 2분 남짓 물이 나오는 곳도 있었다. 물론 그 시간 동안 물이 버려지는 것은 경제적 관점에선 비효율적이고 낭비일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공공 화장실에서 1분가량 물이 나온다는 건 손을 씻는 데 최소한 1분은 필요하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공유된 것이다. 이런 전제와 계산은 화장실 가는 데 필요한 시간, 문서를 작성하는 데 필요한 시간,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데 필요한 시간, 휴식에 필요한 시간, 휴가에 필요한 시간 등 업무나 일상사에 드는 시간과 속도를 정하는 데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 최소 시간을 여유롭게 계산하는 삶의 속도가 내심 부러웠다. 1분 넘게 천천히 우아하게 손을 씻는 그곳의 사람들을 보면서 그동안 나는 얼마나 급하게 손을 씻었는지 처음으로 알았다. 어디 손 씻는 일만 그랬을까. 언제나 마감에 쫓겨 후다닥 책을 만들던 모습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계속 이렇게 책을 만들어도 괜찮은지 의구심이 들었다. 책이란 원래 인간이 가장 오래 기억하고 싶은 것을 간직하기 위해 만들기 시작한 물건이 아닐까. 그런 만큼 충분한 시간을 들여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한 나라의 수준을 알려면 먼저 출판과 건축을 살펴보라는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봤다. 그 이유를 출판과 건축 분야에 한 나라의 문화와 기술이 집약돼 있기 때문일 거라고 짐작했다. 실제로 출판과 건축 분야가 우수할수록 일찌감치 문명과 과학기술이 발달한 국가이기도 하다. 어쩌면 책과 집 만드는 과정에 나라마다 지향하는 삶의 속도와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되기 때문은 아닐지 곱씹어보았다. 책이든 집이든 차근차근 천천히 짓는 나라라면 사람이 살기에도 각박한 곳은 아닐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삶의 속도라는 측면에서 책은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에게 불편한 물건이 될 것이다. 점점 빨라지는 삶의 속도에 비하면 책을 읽는 일도, 만드는 일도 빠르지 않다. 더 빠르게 더 많은 콘텐츠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디지털과 모바일 환경 속에서 책의 속도는 답답하고 불편할 수밖에 없다. 유튜브, 숏폼, 쇼츠, 릴스···. 클릭 한 번이면 재미있는 콘텐츠가 멈추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소비한 쇼츠 중에서 과연 기억에 남는 건 몇 편일지 생각하면 헛헛함을 감추기 어렵다. 이렇게 휘발되는 콘텐츠는 시간을 때우기는 좋지만 결코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다.

기억이 나지 않는 건 빠른 속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콘텐츠 선택에서 자신이 소외되기 때문이다. 더 빠르게, 더 많이 쇼츠를 소비할수록 알고리즘의 노예가 된다.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콘텐츠를 편하게 소비하는 일에 길들게 되면 무언가를 직접 선택하는 과정이 더욱 불편해진다. 그렇다면 느린 속도뿐 아니라 자신의 의지를 적극 개입시켜야 한다는 점에서도 책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책은 스스로 표지를 열어야 하고, 스스로 내용을 읽어야 하며, 스스로 뜻을 이해해야 한다. 저절로 표지가 열리고, 저절로 내용이 읽히고, 저절로 뜻이 이해되는 책은 없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은 절로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요즘 시대에 또 다른 가능성을 역설한다. 굳이 불편한 책을 선택한다는 건 속도를 늦추는 일이다. 이는 무한 증식하는 콘텐츠의 파도에 휩쓸려가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속도를 지켜내는 일이다. 그런가 하면 스스로 책을 고르고, 표지를 열고, 문장을 읽고, 뜻을 이해하는 독서는 알고리즘과 달리 개인의 의지가 적극 개입된다.

보통 우리 삶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곳에서, 원하지 않는 때에,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순간으로 채워진다. 이런 생활에서 점점 희박해지는 장면은 자기주도적인 활동과 자기결정권의 순간이다. 지금 여기에서 나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속도에 질식할 것 같다면 잠시 멈추는 건 어떨까. 모든 일상사가 내 의지와 무관하게 결정되는 것 같다면 작지만 나만의 선택을 해보는 건 어떨까. 나는 그 변화의 시도가 책 한 권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다. 스스로 멈추고, 천천히 바라보려는 이들에게 내가 만든 책이 가까이 닿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좀 더 천천히, 오래 책을 만들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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