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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마리오의 벽돌 심포니

두 개의 원형 탑이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남양성모성지 대성당.

두 개의 원형 탑이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남양성모성지 대성당.

작고 단단한 벽돌을 한 장씩 쌓아 올려 만든 기하학적 볼륨이 형태와 리듬을 자아내고, 그 사이로 빛이 흘러들어 다채롭게 경험할 수 있는 공간. 마리오 보타(Mario Botta)가 한국에 선보인 벽돌 건축물은 ‘건축은 굳어 있는 음악(Architecture is frozen music)’이라는 표현처럼 각자의 리듬과 볼륨을 가진 교향곡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20년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한국과 인연을 이어온 그의 건축세계는 최근 매향리평화기념관과 남양성모성지 대성당의 완공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국에서 벽돌은 ‘세련된’ 건축 재료로 인정받지 못했다. 한국 도시의 근대화 과정에서 널리 사용됐지만, 너무 친숙한 나머지 세련된 현대건축의 재료로 인식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야심 찬 현대 건축가들이 벽돌에 다시 주목하고 사랑하게 된 이유는 건축 구조와 미학적 원리를 가진 벽돌의 특성 때문이다. 쌓아 올려지면서 스스로 건축물의 하중을 전달하고 고유한 색상과 질감, 밀도와 패턴을 만들어내는 특성 덕분에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이런 건축 트렌드와는 별개로 오래전부터 벽돌이라는 소재의 본질을 탐구해 왔던 건축가가 바로 마리오 보타다.

평행 육면체와 뒤집힌 원뿔 형태로 설계된 리움미술관.

평행 육면체와 뒤집힌 원뿔 형태로 설계된 리움미술관.

그는 벽돌을 사용해 초고층 오피스 빌딩과 미술관, 종교건축물 등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을 설계했고, 벽돌로 구현 가능한 공법을 시도해 왔다. 지구에서 인간이 구축하는 모든 건축물은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 마리오 보타는 이런 본질을 자신의 건축방식으로 표현하기를 좋아하는데, 특히 한 장씩 쌓아 올린 돌과 벽돌이 서로 무게를 지탱하며 이뤄진 구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한 창문이나 문 같은 개구부가 만들어낸 공간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원리들은 마리오 보타가 추구하는 건축 철학을 잘 보여준다. 그의 성장 환경과 작업 경험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스위스 티치노주 멘드리시오에서 태어난 마리오 보타는 티치노 지역의 전통 건축에서 조화와 비례, 두꺼운 조적 구조물의 존재감을 배웠다. 이후 르 코르뷔지에와 루이스 칸의 프로젝트를 위해 일하며 기하학적 형태와 빛의 조화를 체득했고, 이를 바탕으로 중력과 재료의 본질을 존중하는 독창적 건축 언어를 완성했다. 이런 철학은 보타의 대표작 중 하나로, 강남대로에 세워진 적벽돌의 교보타워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오늘날 열렬히 환영받을 만한 도시적 성취로 남은 교보타워는 고층 업무 시설임에도 철과 유리가 아닌, 벽돌을 외장재로 사용해 신선하고 파격적인 도시 풍경을 선사한다. 대로변에 면한 두 개의 타워는 개구부 없이 순수하게 벽돌 벽으로 서 있고, 브리지로 연결되는 두 타워가 마주 보면서 내부적으로 열려 있고 서로 소통하는 듯하다.

교보타워 중앙 로비는 자연광이 들어오는 유리 천장이 있는 광장처럼 설계됐다.

교보타워 중앙 로비는 자연광이 들어오는 유리 천장이 있는 광장처럼 설계됐다.

남양성모성지 대성당의 메인 홀은 곡선 천장이 특징이며, 나무 루버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성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남양성모성지 대성당의 메인 홀은 곡선 천장이 특징이며, 나무 루버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성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마리오 보타는 고층 오피스 빌딩이 도시에서 어떻게 내부적으로 관계를 만들고 외부와 연결되는지에 대해 명쾌하게 보여준다. 2004년에 완공된 리움미술관은 벽돌처럼 흙을 구워 만든 테라코타를 이용해 시멘트 모르타르를 사용하지 않고 철물을 사용하는 새로운 건식 공법으로 재료의 현대적인 적용 가능성에 도전했다. 그리고 건물 형태는 한국의 오래된 성곽 라인을 표현해 동양과 서양을 관통하는 구축 방식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을 엿볼 수 있다. 교보타워와 리움미술관에서 보여준 재료와 공법에 대한 실험적 접근과는 달리 얼마 전 문을 연 경기도 화성시의 매향리평화기념관은 역사적 기억을 담아내는 상징적 공간으로서 그 역할을 강조한다. 매향리평화생태공원 내에 있는 이 기념관은 한국전쟁 이후 2005년까지 미군의 폭격 훈련장으로 사용돼 민간인의 희생이 컸던, 아픈 땅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적벽돌로 만들어진 M자형 기둥을 가진 회랑과 콘크리트로 구성된 거대한 전망 타워의 조형이 한눈에 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원형의 전망 덱을 따라 펼쳐지는 매향리 바닷가와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 땅이 가진 기억을 소환하고, 고요하게 펼쳐지는 바다 풍경을 둘러보면서 과거의 시간과 연결돼 아픈 역사를 치유하는 경험이 가능한 것이다. 매향리평화기념관이 설계 단계에서 전시 콘텐츠 및 프로그램과 관련해 건축가와 진지하게 교감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건축이 스스로의 형태와 조형만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피하기 어려울 듯하다.

매향리평화기념관은 매향리(Maehyang-ri), 박물관(Museum), 기념비(Memorial)의 앞 글자를 따 ‘M’이라는 알파벳을 건축 디자인에 반영했다.

매향리평화기념관은 매향리(Maehyang-ri), 박물관(Museum), 기념비(Memorial)의 앞 글자를 따 ‘M’이라는 알파벳을 건축 디자인에 반영했다.

제주에 자리 잡은 ‘아고라’는 정사각형 그리드로 설계돼 피라미드 모양의 유리 프리즘을 통해 내부와 외부를 연결한다.

제주에 자리 잡은 ‘아고라’는 정사각형 그리드로 설계돼 피라미드 모양의 유리 프리즘을 통해 내부와 외부를 연결한다.

오랜 시간을 들여 완성한 남양성모성지 대성당은 그동안 한국에서 보여준 마리오 보타식 벽돌 건축을 집대성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마리오 보타가 생애에 걸쳐 사용했던 건축 레퍼토리를 모아 숙련된 장인의 솜씨로 조각한 건축물이다. 지형과 산세에 맞게 앉힌 성당의 배치에서 건축가의 깊이 있는 이해와 고민이 느껴진다. 대성당에 자리 잡은 두 개의 타워와 과장된 벽돌 기둥, 충만한 빛으로 표현된 공간, 중력을 설명하는 재료의 사용, 반복되는 적벽돌과 돌을 이용한 리듬과 패턴, 질감 등은 우리 세대가 경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건축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건축물이 음악처럼 표현되고, 사람들은 이를 경험할 수 있을까. 마리오 보타의 남양성모성지 대성당은 바로 이런 가능성을 탐구하는 작업이다. ‘붉은 벽돌의 건축’ ‘기하학적 질서와 과거에 대한 존중’ ‘전통과의 연결’로 요약되는 그의 작품은 한국에 남긴 벽돌 건축 작품을 통해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것도 성취를 넘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건축의 가치를 다시 되새기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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