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기 잇템 트렌치코트, 시작은 전쟁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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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치코트(trench coat)는 단순한 패션 아이템을 넘어 클래식과 우아함의 상징이 되었다. 시대와 유행을 초월하며 지속적인 사랑을 받는 이 아이템이 본래 전쟁터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은 흥미롭고도 아이러니한 역사를 품고 있다. 트렌치코트의 유래는 19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장교들이 참호(trench)에서 싸우며 입던 실용적인 군복이 트렌치코트의 원형이다.

처음부터 패션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옷은 아니었다. 군인들의 활동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전쟁터의 혹독한 환경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능적인 옷이었다. 1879년, 토머스 버버리(Thomas Burberry)는 개버딘(gabardine)이라는 혁신적인 방수 소재를 개발했다. 가벼우면서도 견고하고, 통기성과 방수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이 소재는 군복의 이상적인 소재로 주목받았다.

이후 영국군은 버버리에게 참호전을 위한 기능성 코트를 의뢰했고,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트렌치코트의 기본적인 디자인이 완성되었다. 더블 버튼 구조로 바람과 추위를 막고, 허리 벨트로 몸에 딱 맞게 조절하며, 견장과 손목 스트랩 등 다양한 기능적 디테일이 추가되었다. 특히, 견장은 계급장을 부착할 수 있도록 실용성을 높였다.

하지만 트렌치코트는 전쟁이 끝나고 난 뒤 더욱 빛을 발했다. 전장에서 벗어나 도심 속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든 트렌치코트는 194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대중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특히, 1942년 개봉한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험프리 보가트가 트렌치코트를 입고 등장한 모습은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고, 그의 스타일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클래식 패션의 상징이 되었다.

1950~60년대는 트렌치코트가 남성 패션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여성 패션의 중심으로 부상한 시기다. 당시의 패션 아이콘 오드리 헵번은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트렌치코트를 우아하게 연출하며 여성들의 필수 아이템으로 각인시켰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트렌치코트는 단순한 실용성을 넘어 세련미와 우아함의 상징으로 새롭게 정의되었다.

70년대와 80년대에도 트렌치코트는 계속해서 진화하며 다양한 스타일로 변화했다. 영국의 또 다른 명품 브랜드 아쿠아스큐텀(Aquascutum) 역시 트렌치코트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으며, 패션계를 대표하는 다양한 디자이너들이 자신만의 스타일을 더하며 트렌치코트의 위상을 더욱 높였다.

21세기 들어서도 트렌치코트의 매력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다양하게 변형되었다. 클래식한 베이지 컬러뿐 아니라 네이비, 블랙, 카키 등 다양한 색상으로 선보이며, 길이나 실루엣에서도 다채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최근의 트렌드는 오버사이즈 실루엣으로 편안하고 스타일리시한 룩을 연출하는 것이 주목받고 있다.

✦ 스타일링 TIP – 지금 가장 트렌디한 트렌치코트 연출법

1. 클래식의 현대적 재해석, 오버사이즈 트렌치
크롭 티셔츠와 와이드 팬츠 또는 캐주얼한 조거 팬츠와 매치한 오버사이즈 트렌치코트는 간결하면서도 시크한 매력을 발산한다. 스니커즈나 로퍼를 더해 가벼우면서도 스타일리시한 일상 룩을 완성할 수 있다.

2. 우아한 도시 여성을 위한 슬림핏 트렌치
슬림핏 트렌치코트는 비즈니스 캐주얼룩의 핵심 아이템으로 손색없다. 깔끔한 셔츠나 블라우스 위에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테일러드 팬츠나 펜슬 스커트를 매치하면 품격 있으면서도 우아한 비즈니스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다.

3. 스트리트 스타일의 완성, 믹스매치 스타일링
데님 재킷, 후드티와 함께 매치한 트렌치코트는 편안한 캐주얼 스타일을 더욱 세련되게 만들어 준다. 비니, 선글라스, 크로스백 등 다양한 액세서리와 매치하면 더욱 개성 넘치는 스타일로 연출할 수 있다.

결국 트렌치코트는 패션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전쟁터에서 탄생했지만, 평화로운 도시 속 패션 아이콘으로 진화하며 전 세대의 사랑을 받고 있다. 유행을 타지 않고 매 시즌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는 트렌치코트는, 앞으로도 변함없이 우리의 옷장 한켠을 지켜줄 것이다. 매년 봄과 가을이 되면 자연스럽게 꺼내 입게 되는 이 옷은, 단순한 아이템이 아닌 스타일의 철학과도 같다.

올해도 트렌치코트를 꺼내 입고 거리로 나서 보자. 오래될수록 더욱 멋스러워지는 트렌치코트처럼, 우리 자신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깊이 있는 매력을 더해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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