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서방 제재 뚫고 반도체 장비를 수입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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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루=오소영 기자] 러시아가 네덜란드 ASML의 노광장비를 수입해 군사용 칩 제조에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십 개 회사를 통해 장비를 수입하고 중고 장비를 개조하며 서방의 제재를 우회했다.

20일 이코노미카나 프라브다(Ekonomichna Pravda) 등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는 ASML의 노광장비를 수입하고 있다. 수입 장비는 대부분 군사용 칩 제조에 활용된다.

미국과 유럽 주요국 등 서방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를 대상으로 강력한 제재를 추진했다. 대만 TSMC와 미국 인텔·AMD 등 주요 기업들은 러시아에 칩 공급을 중단했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장비도 수출길이 막혔지만 ASML은 예외였다.

러시아는 수입 업체를 바꿔가며 장비를 도입했다. 러시아 세관 당국에 따르면 러시아는 AK마이크로텍을 통해 ASML의 노광장비를 들여왔다. 작년 7월 서방의 제재 대상에 해당 기업이 포함돼 장비 수입이 막히자 크래프텍(Krafttek)이 나섰다. 이 회사는 작년 8월부터 ASML의 장비 수입을 러시아 세관 당국에 신고했다. 180만 달러(약 24억원) 상당의 장비 16종을 러시아로 들여온 것으로 추정된다. 품목도 점점 다양해졌다.

구형 모델을 사들여 분해해 재조립하고 시장에 판매하는 경우도 있었다. ASML이 1990년대 초기에 출시한 PAS-5500은 주요 부품을 온라인에서 구매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는 이를 활용해 장비로 만들어 팔기도 했다. 판매처에는 싱가포르와 한국과 같은 서방의 제재에서 벗어난 국가도 있었다.

러시아는 구형 장비로 현대식 미사일과 무인항공기(UAV)에 쓸 칩을 생산하진 못했지만 구식 무기용 칩은 양산할 수 있었다. 레이 양 대만 산업기술연구소 컨설팅 이사는 “구형 장비는 8인치 웨이퍼를 생산하도록 설계됐다”며 “(장비로 생산한) 반도체를 자동차와 군용 차량, 심지어 탱크에 활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ASML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멘스와 슈나이더일렉트릭 등 주요 서방 업체들의 제품을 여전히 수입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러시아 제재 이슈를 다루는 국제 전문가 단체 ‘예르막-멕폴 그룹’와 우크라이나 키이우 경제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는 무기 생산 또는 국가 중요 산업에 사용할 목적으로 2700개 부품을 수입했다. 2023년 1~9월 군사 부품의 수입 규모는 80억 달러(약 11조원) 상당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과 비교해 현재 규모는 9.1% 감소하는 데 그쳤다. 군사 부품의 절반은 서방 브랜드였다. 중국을 비롯해 홍콩과 튀르키예 등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제3국에서 대부분 생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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