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불안에 비둘기적 동결 택한 한은… “시장선 5월 인하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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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금리 인하 고삐를 풀고 속도조절에 들어갔다. 미국의 고강도 관세정책으로 경기 둔화 위험이 커지면서 금리 인하 필요성은 커졌지만,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와 원·달러 환율의 급격한 변동성이 발목을 잡았다. 여기에 토지거래허가제 해제와 확대 재지정에 따른 집값 상승세와 가계부채 증가 가능성도 영향을 줬다.

그러나 동시에 한은은 기준금리가 인하 사이클에 진입해 있다는 점을 명백히 하면서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적인 면모를 보였다. 금융통화위원 전원이 3개월 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뒀고, 이창용 총재도 연내 2차례 이상 금리를 내릴 수 있다고 언급했다. 시장에서는 수정 경제 전망이 발표되는 5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가 인하될 것으로 예상한다.

◇ 기준금리 2.75%로 동결… “환율·전망 불확실성 확대”

한은 금통위는 17일 열린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2.75%로 동결했다. 이번 결정에는 0.25%포인트(p) 인하 의견을 낸 신성환 위원을 제외한 5인 모두 찬성했다. 이로써 지난 2월 재개된 인하 흐름은 일시 정지됐다. 한은은 2023년 2월부터 작년 8월까지 1년 7개월간 기준금리를 3.50%로 유지하다가, 작년 10월 금리를 3.25%로 인하한 데 이어 작년 11월과 올해 2월 두 차례 더 인하해 기준금리를 2%대로 낮춘 바 있다.

그래픽=정서희
그래픽=정서희

시장에서는 이번 동결이 어느 정도 예상됐다는 분위기다. 금융투자협회가 지난 4~9일 채권 보유 및 운용 관련 종사자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8%는 금리 동결을 전망했다. 이는 직전 조사인 지난 2월보다 43%포인트(p) 상승한 수치다. 나머지 12%는 금리 인하를 예상했다.

이번 결정의 핵심 변수는 원·달러 환율이었다. 미국이 상호관세를 부과한 지난 9일 원·달러 환율은 1487.60원까지 치솟았다가, 다음날 90일 유예 조치가 발표되면서 1446.0원으로 급락했다. 지난 한 주간 환율 변동 폭은 67.6원에 달해, 외환시장 거래 시간이 새벽 2시까지 연장된 작년 7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후에도 환율은 변동성을 키우다가 이날 금통위를 앞두고 1410원대까지 떨어졌다.

대외 불확실성 심화로 한은의 경제 전망에 흔들림이 감지된 점도 신중론에 힘을 실었다. 한은은 지난 2월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1.5%로 전망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경북 산불과 미국의 상호관세 등 이슈가 겹치며 전망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한은은 이날 배포한 보고서에서 올해 성장률이 1.5%를 하회할 수 있다고 예상하면서 1분기 역성장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금통위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관세정책의 변화가 너무 심하고, 향후 협상 가능성도 남아있어 (전망의)기준점을 어떻게 정의할지 확정되지 않았다”면서 “비유하자면 갑자기 어두운 터널로 들어온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조금 밝아질 때까지 금리 인하 속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향후 추가 인하 가능성은 활짝 열어뒀다. 이날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 전원은 3개월 이내 기준금리를 2.75% 밑으로 낮출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이 총재는 이와 관련해 “(금통위원들은)5월에 우리가 성장률 전망치를 낮출 가능성이 굉장히 큰 상황이기 때문에 금융·외환시장 상황을 보면서 적절히 대처할 수 있도록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 총재는 연내 두 차례 이상 추가 인하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는 “(시장에서는)올해 금리 인하가 두 차례 더 남았다고 예상한다”면서 “5월 경제전망에서 성장률이 얼마나 낮아지는지에 따라 추가 인하 가능성을 판단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앞서 2월 금리 인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그는 기준금리가 올해 1~2차례 더 인하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 5월 금통위선 금리 인하 가능성 우세… 25bp 유력

시장에선 이날 금통위가 1분기 역성장 가능성을 제기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 전망한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은 0.5%였는데, 2월에 예측한 이 수치는 0.2%로 낮아진 바 있다. 이날 한은은 “대형 산불, 일부 건설 현장의 공사 중단, 고성능 반도체의 수요 이연 등 일시적 요인이 겹쳤다”며 “소폭의 마이너스 성장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발표했다.

기대치에 못 미치는 1분기 성적에 연간 성장률 눈높이도 낮춰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1.5%로 제시한 바 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이번 금통위는 경제 성장률 전망치 하향 폭이 클 것이라고 시사했다”며 “추정컨대 연간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1% 초반까지 내려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한다”고 했다.

민지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도 “5월 한은이 발표할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2월에 제시된 관세 비관 시나리오 전망치였던 1.4%를 하회할 것”이라고 했다. 한은은 미국이 올해 말까지 중국을 포함한 주요 무역 적자국에 관세를 높여 부과하고, 다른 나라들이 미국에 고강도 보복관세로 대응하는 경우를 ‘비관 시나리오’로 설정한 바 있다.

현재로선 5월 ‘25bp(1bp=0.01%p) 인하론’이 우세하다. 대외적으론 미국발(發) 통상 전쟁이, 대내적으론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예측을 어렵게 만들고 있지만, 성장률이 나빠질 것이란 건 명확해서다. 이날 금통위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총재가 금리 인하 폭에 대한 힌트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 총재는 “(예상 경제)성장률을 낮추면 부양책을 통해 (수치를)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며 “그 정도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기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실제 경제성장률이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무리한 통화 정책을 동원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총재는 “저희는 잠재성장률을 2% 언저리로 보고 있다”며 “(실제 경제성장률과의 차이 전부를) 경기 부양으로 올린다면 1년은 괜찮을지 몰라도 그 다음엔 엄청난 부작용을 경험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관세 협상 진전과 추가적인 추경의 가능성을 높게 판단한다”며 “한은은 5월 기준금리를 25bp 인하하고 연내 2.25%까지 낮출 것”이라고 했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도 “성장에 대한 하방 위험과 커진 대외 불확실성 요인들에 대한 통화당국의 경계 심리가 여전히 유효하다”며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하는 가능하고, 시기는 5월이 유력하다”고 했다.

한편, 금통위의 금리 결정 이후 국고채 금리는 일제히 상승했다. 서울 채권시장에서 이날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3.4bp 오른 연 2.428%를 기록했다. 5년물과 10년물 금리도 각각 0.2bp, 1.6bp 오른 연 2.483%, 연 2.645%로 마감했다. 원화는 강세를 보였다. 원·달러 환율 주간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는 전일보다 7.8원 내린 1418.9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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