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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올트먼 등 AI리더들이 찾는 이 남자…“한국AI, ‘컴퓨팅 파운드리’에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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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리더들과의 대화는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했다. ‘AI는 인간을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가.’ 이준표 대표는 그 질문 속에서 한국의 위치를 다시 계산했다.

문상덕 기자 mosadu@fortunekorea.co.kr 사진 김용호

●이준표 SBVA 대표 2003년 컴퓨터 원격제어 SW업체 ‘에빅사’, 2009년 영상검색 기술업체 ‘앤써즈’를 창업했다. 2015년 SBVA(구 소프트뱅크벤처스아시아)에 합류, 2018년 대표직을 맡았다.


10월 말 서울, 이준표 대표는 얀 르쿤 교수와 만났다. 뉴욕대 교수인 그는 메타에서 ‘최고 AI 과학자’ 직을 맡고 있다. 저녁 식사로 시작한 자리는 새벽 3, 4시까지 이어졌고, 그사이 와인 여섯 병이 동났다. 이날 밤, 얀 교수가 한 말을 이 대표는 오래 씹어야 했다.

“얀은 새로운 지능을 구상하고 있었어요. ‘넥스트 LLM’이 아니라요. 앞으로 AI 경쟁은 LLM 성능이 아니라 ‘지능을 재정의하는 것’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하더군요.”

얀 교수는 언어모델이 아닌, ‘월드 모델’을 준비하고 있다. AI 모델이 실제 세계의 원리를 이해하고, 예측한 다음, 답하도록 한다는 것. 사람의 사고방식을 닮았다. “LLM은 사람의 말을 흉내 내서 그럴듯한 답을 내놓는 것”이란 점에서 근본적으로 달랐다.


이준표 대표가 10월 29일 SBVA 사무실에서 뉴욕대 얀 르쿤(왼쪽) 교수, 조경현 교수와의 대담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사진=최근우]
이준표 대표가 10월 29일 SBVA 사무실에서 뉴욕대 얀 르쿤(왼쪽) 교수, 조경현 교수와의 대담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사진=최근우]

지난 1년간 이준표 대표는 샘 올트먼 오픈AI CEO, 아라빈드 스리니바스 퍼플렉시티 CEO, 얀 르쿤 뉴욕대 교수, 앤드류 응 스탠퍼드대 교수 등 AI 리더들을 두루 만났다. 이들과의 대화는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하곤 했다.

‘AI가 정말 인간의 확장을 도울까?’

반면 국내 논의는 오랜 시간 생존에 머물러 있었다. ‘AI 3대 강국’, ‘한국형 파운데이션 모델’ 같은 구호가 대표적이다. 기술력에서 선두를 따라잡겠다는 취지이지만, 목적지가 안 보이는 추격이란 지적도 적지 않았다. 무작정 추격하기엔 미국, 중국만큼의 자원이 없다.

이 대표 역시 지난해 본지 대담에서 범용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에 신중했다. 한국이 잘 만들 수 있는 응용 서비스에 집중하자는 것. 

“‘한국형 윈도’에 투자할 시간에 윈도를 받아들이고, 그 위에 내가 속한 산업이나 다른 국가에서 많이 쓸 만한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전략이 더 승산이 있겠다.”

다시 만난 이 대표는 한층 구체적인 전략을 말했다. “국가 차원의 컴퓨팅 파운드리.” “연산 능력을 빠르게, 대규모로 확보하고, 인접국들에 공급하자”는 게 골자다. “반도체 공급망과 각종 제조 역량, 전력 인프라, 일관된 정책 기조” 등을 갖춘 한국이라면 가능한 전략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말했다. “이게 한국이 글로벌 AI 생태계에 기여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AI 3대 강국, 목표 없는 질주

김수연 “특정 제조 영역의 혁신이나 공공의 혁신을 꾀하고 싶다는 건지, 아니면 우리만의 역사관을 제대로 갖춘 AI를 만들겠다는 건지…. 뭘 하겠다는 게 없어요.”

배경훈 “우리가 뭘 하고 싶은가를 명확하게 정해야 합니다. 오픈AI와 같은 톱클래스 수준의 모델을 만드는 곳이 없어서 고민인가요. 딥시크 수준의 모델을 원하는 건가요.”

※포춘코리아 2025년 4월호, 김수연 EY컨설팅 AI 리더 및 배경훈 당시 LG AI연구원장(현 과기부 장관) 대담.

통역가

이준표 대표는 10월 1일 서울 서초구 SBVA 사무실에서 샘 올트먼 CEO와 만나 AI 생태계 발전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SBVA]
이준표 대표는 10월 1일 서울 서초구 SBVA 사무실에서 샘 올트먼 CEO와 만나 AI 생태계 발전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SBVA]

올해 2월과 10월,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방한했을 때 이 대표가 호스트 역할을 했다. 이 대표가 그에게 인터뷰 의향을 묻자, 그는 ‘이재용 회장 만나고 나서, 이재명 대통령 만나기 전 시간이 비니까, 그때 사무실로 찾아가겠다’라고 답한 게 시작이었다. 지난 11월, 그는 오픈AI와 함께 서울에서 국내 스타트업 창업자들과 상견례 하는 자리를 갖기도 했다. 

두 사람은 2018년 관계를 맺었다. 올트먼이 와이콤비네이터 대표로 있던 때였다. 같은 업계 관계자로서 접점이 많았다. 이 대표는 “이후 손정의 회장님과 함께 만나는 등 사적, 공적인 만남이 잦아지면서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져 왔다”고 말했다.

가을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퍼플렉시티의 아라빈드 스리니바스 CEO를 찾았다. SBS 다큐멘터리 ‘넥스트 샘 올트먼’ 촬영차였다. 이 대담 역시 그가 다리 역할을 했다.

이 밖에도 이 대표는 뉴욕대의 얀 르쿤, 조경현 교수를 사무실에 초청해 대학생들과 대담하는 행사를 열었다. 때때로 앤드류 응 스탠퍼드대 교수를 만났다.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그리고 그의 동생 손태장 미슬토 회장과의 깊은 인연은 세간에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은 한국을 ‘테스트 베드’로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인은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흡수하는 데 거부감이 적고, 그래서 성공 가능성을 가늠하기 적절한 시장이라는 것. 단적으로 한국의 챗GPT 유료 사용자 수는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 샘 올트먼이 한국에 스타게이트 데이터센터를 짓기로 한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렸다. 이 대표는 “거의 모든 리더들이 입을 모아 묻곤 한다”며 말했다. “‘한국은 왜 이렇게 빠르냐?’라고요.”

이들 리더가 한국을 찾을 때, 이준표 대표를 함께 찾았다. 이 대표는 스스로를 “통역가”라고 설명했다. “단순히 사람과 사람을 잇는 게 아니”라면서 “실리콘밸리 엔지니어와 서울의 기업가처럼, 각자의 언어와 맥락을 알아듣기 쉽게 통역하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준표 대표는 10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아라빈드 스리니바스(오른쪽) 퍼플렉시티 CEO와 만나 대담했다. [사진=SBVA]
이준표 대표는 10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아라빈드 스리니바스(오른쪽) 퍼플렉시티 CEO와 만나 대담했다. [사진=SBVA]

Q 지난 1년간 여러 테크 리더들을 만나셨죠. 뇌리에 남은 인사이트가 있었다면.

이분들이 한국에 올 때마다 들고 오는 주제가 충격적이었어요. 올해 (AI 영상 생성 모델인) ‘비오3’, ‘소라2’가 나온 게 그랬죠. ‘그렇게 빨리 나온다고?’

2주 전 얀 르쿤 교수님과의 저녁이 가장 많이 생각나요. 저녁 먹은 뒤에 둘이서 새벽까지 와인을 여섯 병이나 마셨어요. 올 한 해 통틀어 손꼽히게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Q 어떤 대화를 나눴나요?

(AI 기업들이 목표로 하는) AGI(범용인공지능)를 비판하셨어요. (트랜스포머 아키텍처를 바탕으로 하는) 지금의 LLM은 인간 사고 과정과는 다르단 거예요. 인간은 가설을 세워요. 가설은 세계의 작동 원리를 가장 효율적으로 설명하는 모델이에요. 그리고 인간은 실험하고 데이터를 확보해서 가설을 검증해요. 검증한 가설은 이론이 되고요. 이게 인간의 사고, 정확히는 ‘인과관계’를 만드는 과정이에요. 그런데 LLM은 이렇게 세계를 탐구하지 않아요. ‘사람들의 언어 패턴을 보니(학습) 이 답이 가장 그럴듯하다(확률)’는 식으로 결과를 내요.

그날 얀은 ‘월드 모델’을 깊게 말씀하셨어요. 월드 모델은 사람처럼 생각하는 AI 모델을 말해요. 원인과 결과로 세상을 이해하고요. 그러면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을 할 수 있어요. 예측값까지 반영해서 행동하죠. 또 언어만이 아닌,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받아들여야 해요. 대신 사람은 LLM처럼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필요로 하지 않아요. 필요한 데이터만 확보해서 추론하죠. 예를 들어 우리가 날씨를 예측할 때 공기 분자 하나하나를 계산하지 않아요. 온도, 기압 같은 중요한 변수를 갖고 내일 날씨를 예측하는 것과 같아요.

왜 얀 르쿤 교수님이 ‘AI의 3대 아버지’ 중 한 명으로 불리는지, 이번에 절감했습니다.


얀 교수는 그의 구상을 구현할 회사를 조만간 세운다. 이 대표는 “이미 어마어마한 대가들이 (그가 만들 회사에) 합류하기로 결심한 것 같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얀의 구상이 피지컬AI로 넘어가는 분기점이란 생각이 든다”며 “실현되면 (AI 모델 구동을 위한) 하드웨어, 에너지 인프라가 지금보다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Q 메타는 후회하게 될까요?

저라면 (얀 르쿤 교수를) 잡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론 메타에 손실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Q 왜 얀 르쿤 같은 이들이 대표님을 찾을까요?

혁신은 구조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사람과 자본, 비전으로 이뤄지는 구조인데요. 저는 꽤 오랫동안 이런 구조에서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려고 했어요. 단순히 사람과 사람을 서로 소개해 주는 것이 아니라, ‘통역’하는 일을 해 왔다고 생각해요. 각자의 언어와 맥락을 알아듣기 쉽게 통역해 주는 겁니다. 실리콘밸리 엔지니어와 서울의 기업가가 쓰는 언어는 분명 다릅니다. 또 일본과 미국 기업이 전략을 짤 때는 속도 감각이 달라요. 오랜 시간 다양한 분들을 뵙고 해외를 돌아다니다 보니, 그 차이를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그래서 부지불식간 서로의 세계관을 통역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뢰가 쌓였고요. 

Q 어떤 질문을 주로 합니까?

저는 답을 묻진 않아요. 정답이 없는 고민들이니까요. 대신 저는 세계관을 관찰하려고 해요. ‘이 사람은 이 기술을 써서 뭘 하고 싶어 하는 걸까?’, ‘이 생각은 이 사람이 이끄는 조직 구조와 전략에 어떻게 녹아 있을까?’를 봅니다. 세계관을 알면, 그가 생각하는 기술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 스스로는 ‘변화’와 ‘인간’을 고민해요. ‘지금의 변화가 인간을 더 행복하게 만들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집니다. 전산학과에 진학할 때부터 그랬어요. 저는 사람들이 보다 쉽게(저렴하게) 컴퓨터를 쓸 수 있게 하면, 사람들이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었거든요. 그래서 창업도 했고, 제 비전에 공감해 준 투자자들에게서 투자도 받았어요. 소프트뱅크에 합류했던 것도 같은 이유였습니다. 손 회장님의 철학이 ‘기술로 인간을 행복하게 하자’였어요. 

Q ‘인간’을 ‘한국인’으로 좁혀보자면.

샘도 그렇고, 한국에 오는 많은 분이 ‘한국은 왜 이렇게 빠르냐?’라고 물어요.

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한국은 집단 학습능력이 강하다.’ 한국은 개인의 천재성보다, 사회 전체의 학습능력이 우수하다고 생각해요. 기술을 흡수해서 실험하고, 적용하는 프로세스의 속도가 상당히 빠릅니다. 사회가 먼저 치고 나가면 정부도 따라옵니다. 그렇게 해서 기업과 소비자, 정부가 거의 동시에 변화합니다. 이런 나라가 정말 드물어요. 

블리자드 사람들은 한국이 신기하대요. ‘스타크래프트’를 온 나라에서 하고, PC방에서 하고, 프로 리그를 만들어서 하고, 게임 전문채널을 만들어서 하고, 온라인 동영상 생중계도 해요. 게임을 구동하기 위한 GPU도 가장 빠르게 보급됐어요. 오죽하면 젠슨 황이 ‘한국의 PC방 덕분에 엔비디아가 여기까지 왔다’고 했겠어요. 

이런 것들이 상당한 기술 응용력이거든요. 기업 입장에선 정말 좋은 ‘테스트 베드’예요. 얼마 전 방한한 니콘 관계자도 ‘한국은 미래 시장의 축소판 같다’고 하더군요. 

이런 장점은 AI 시대에도 잘 맞아요. AI가 내놓는 답의 품질은 질문에서 갈리거든요. 새로운 질문을 얼마나 빨리 던지고, 응용 서비스를 실험해 보느냐가 경쟁력이 됩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의 이런 능력이 강력한 자산이 될 거라고 봐요. 

Q 샘 올트먼이 K팝 제작사들을 만나고 싶어했다고요.

AI 시대가 오면 생산비용은 ‘제로’에 수렴할 거예요. 그러면 남는 건 IP와 브랜드일 거라고 샘은 생각하더군요. 그래서 K팝의 가치가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보고요. 

Q IP 리더십이 AI 리더십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소라2가 분기점이 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배우 이정재 씨가 1년에 영화 세 편을 찍을 수 있었는데, 이제 백 편에 등장할 수 있는 시대가 오는 거예요. IP의 가치가 정말 높아지겠죠. 다만 가치를 극대화하려면 ‘이렇게 IP를 관리하겠다’라는 기준을 잘 세워야 합니다.

인프라 중심 소버린AI

[사진=AP/뉴시스]
[사진=AP/뉴시스]

‘소버린AI가 무엇이냐’를 두고 여전히 갑론을박이 있다. 우리 정책은 갑론을박의 최대공약수에 가깝다. 빅테크가 대규모 언어모델을 만들었듯, 한국도 자체 언어모델을 갖자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이런 갑론을박이 소버린AI를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한정한 데서 온다고 봤다. 그는 ‘인프라 중심 소버린AI’로 다시 정의했다. 이렇게 보면, 한국이 살 길이 보인다. 인프라 산업은 한국이 잘해왔던 분야라서다. 그는 한국의 장점을 모아 ‘한국형 데이터센터’ 표준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데이터센터를 짓고, 인접국에 연산 자원을 수출하는 판을 생각한다. 그는 이를 ‘컴퓨팅 파운드리’라고 불렀다. 

마침 샘 올트먼도 이재명 대통령에게 “AI 인프라”를 조언했다. 과거 손정의 회장이 故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브로드밴드”를 조언했던 것처럼.

이 대표의 제안은 그간 한국의 성공 문법과도 결이 맞다. 진대제 전 삼성전자 사장과 권영수 전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은 과거 포춘코리아 인터뷰에서 두 가지를 꼽았다. 공정 엔지니어링(“실제로 팔릴 제품을 개발하고, 양산 시 수율이 나도록 품질을 관리하는 것”)을 통한 빠른 제품 개선, 그리고 설비투자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할 수 있는 ‘니치 마켓’을 찾는 것.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배터리 모두 같은 문법으로 세계 1위에 올랐다. 우리가 잘해온 제조 역량을 하나의 브랜드로 모으고, 자본과 인력을 집중하잔 그의 제안과 다르지 않다.

Q ‘소버린AI’의 범주를 넓혀야 한다고요.

지금껏 한국 사회에서 소버린AI는 ‘우리만의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로 여겨졌어요. 틀리진 않았지만, 좁은 정의예요. 소버린AI는 ‘자체 언어 모델을 갖고 있느냐’ 이상으로, ‘AI를 구동할 수 있는 물리적, 제도적 생태계를 스스로 구축하고, 통제하고 있느냐’의 문제를 포괄합니다. AI를 구동하려면 그 이면에 상당한 규모의 인프라를 갖춰야 하거든요. 데이터센터만 봐도, 전력망, 반도체, 냉각 기술, 통신 네트워크, 데이터 관리 체계 등이 들어가 있어요. 이 중 하나만 흔들려도 AI는 멈춥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AI의 진짜 주권은 컴퓨팅 코드가 아니라, 전력선과 냉각 시스템에서 나온다.’ 이 관점에서 보면 한국에 독특한 기회들이 있어요. 한국은 반도체 공급망, 전력 인프라, 기타 제조업 및 건설 역량이 모두 연결돼 있는, 몇 안 되는 나라이거든요. 

Q 소버린AI를 아예 ‘인프라 중심’으로 규정하네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서 볼 수 있듯이, 파운데이션 모델 학습에는 수백 조 원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기술적으로야 한국도 만들 수 있는데, 그게 끝이 아니잖아요. 그렇게 만들어도 수익을 낼지 의문이고요. 그런데 사실 말씀드린 것처럼, AI 생태계는 언어 모델로만 이뤄지지 않거든요. 인프라와 효율적인 에너지 시스템, 그리고 응용 서비스가 AI 산업을 지탱해요. 그리고 이 지점에서 한국은 생태계를 주도할 수 있는 힘이 있고요. 

인프라 중심의 소버린AI는 ‘국가 차원의 컴퓨팅 파운드리’ 전략으로 정의할 수 있어요. 연산 능력을 빠르게, 대규모로 확보하고, 인접국들에 공급하자는 겁니다. 반도체 생태계의 중심엔 TSMC가 있었죠. AI 생태계에선 연산 능력을 공급할 수 있는 기업, 국가가 허브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반도체 생태계의 중심엔 TSMC가 있었죠. AI 생태계에선 연산 능력을 공급할 수 있는 기업, 국가가 허브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Q ‘컴퓨팅 파운드리’를 연산 능력을 갖추는 것과 공급하는 것 두 차원으로 말씀하셨는데요. 갖추는 일부터 짚어보겠습니다. 국내 입지가 괜찮습니까? 한국의 산업용 전기료가 저렴하다는 것도 옛말이라고 합니다.

한국은 가성비보다 ‘신뢰비(reliability cost)’에서 강점이 있어요. 일본이나 동남아시아 지역과 비교할 때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은 예측 가능한 전력망을 갖추고 있죠. 단적으로 소프트뱅크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김해에 데이터센터를 지었어요. 그리고 정책 신뢰도, 숙련된 기술인력, 빠른 건설 속도,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인프라 기술들. 예를 들면, LG의 공조, 냉각 시스템은 가격과 기술력을 고려하면 캐리어보다 경쟁력 있어요. ‘동남아 국가에 데이터를 전송하는 게 꺼려진다’는 업계 반응도 있습니다. 우리가 기술과 인력, 인프라, 제도를 조합하면, ‘컴퓨팅 파운드리’라는 브랜딩을 할 수 있다고 저는 봅니다.

그리고 일본에 견주면 전기요금도 비싸지 않아요. 내부적으로 검토했을 때 일본 요금의 60%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오사카-도쿄의 데이터 레이턴시(※데이터가 목적지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 레이턴시가 높아질수록 인터넷 반응속도가 느려진다.)와 부산-도쿄의 레이턴시가 거의 비슷합니다.

Q 데이터센터가 전기는 많이 잡아먹는데, 일자리는 별로 만들지 못한단 반응도 나옵니다.

데이터센터 운영 자체만 놓고 보면 그럴 수 있죠. 그런데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유지보수 하는 데 필요한 연관 산업을 놓고 보면, 차원이 다른 이야기예요.

Q ‘AI 산업은 곧 에너지 산업’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세 가지 접근이 있겠습니다. ▲더 많은 발전소를 짓는 것, ▲전기 낭비를 줄이는 것(PUE, 전력 효율), 그리고 ▲같은 연산을 더 적은 전기로 처리하는 것(연산 효율). 대표님은 어떤 접근을 선호합니까?

(10월 대담에서) 샘이 한 말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 말이었어요. “에너지를 이렇게 직접적으로 경제 생산성으로 전환한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어요.” 

저는 이 말을 ‘전기를 지능으로 전환하는 시대’라고 이해했어요. 그렇다면 지능을 고도화한다는 건, 전기를 효율적으로 쓴다는 뜻이겠죠. 네, 저는 효율성에 집중해요. 예를 들어 AI 데이터센터 한 곳의 전력 효율을 20% 개선하면 수십만 가구분의 전기를 아껴요. 국가 전략도 마찬가지예요. 컴퓨팅 파운드리는 ‘더 많은 전기를 쓸 수 있는 역량’이 아니라 ‘더 효율적으로 전기를 쓸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기업과 국가의 몫이 될 겁니다.

그래서 투자도 AI 인프라에 집중합니다. 연산 효율을 높여주는 칩 개발사, 공조 시스템을 최적화해 주는 데이터센터 관리 소프트웨어 개발사, 전기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저장해 주는 배터리 개발사…. 이런 회사들이 AI의 ‘에너지 지능’을 설계하고 있다고 저는 봐요. 


이 대표는 SBVA의 포트폴리오 회사인 ‘스탠다드에너지’를 예로 들었다. 이 회사 김부기 대표는 데이터센터용 배터리(ESS, 에너지저장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기존의 리튬이온이나 리튬인산철(LFP) 대신, 강철의 강도를 높이는 데 쓰던 금속인 ‘바나듐’을 주원료로 쓴다(‘바나듐이온 배터리’). 이론상 화재 위험이 없고, 수명이 기존 배터리에 비해 상당히 길다. 대신 에너지 밀도가 낮아 차량보다 ESS에 적합하다. 물론 이론상 그렇다. 현실에선 이론상 숫자가 잘 나오지 않았다. 여러 금속을 조합하는, 화학의 황금률을 찾지 못했다.

김부기 대표는 2019년 세계 최초로 바나듐이온배터리를 개발했다. 그 무렵 SBVA도 스탠다드에너지에 처음 투자했다. 이 대표는 “처음에 투자 검토할 땐 ‘연금술’이라고까지 생각했다”며 “그 일을 김 대표가 10년 만에 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최근 김 대표를 국내 유력 배터리 제조사에 소개했다. 제조사 고위 임원을 만난 자리에서 스탠다드에너지를 소개한 것. 첫 반응은 ‘그게 되나?’ 기술 임원의 반응도 같았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해당 임원이 김 대표를 저녁 자리에 초대했다고 했다. 이후 스탠다드에너지 공장까지 둘러본 그는 ‘너무나 중요한 기술’이라며 협업을 제안했다.

이 대표는 당시 일화를 소개하면서 “한국의 전문가들도 잘 모르지만, 사실 세계적 수준에서 협업할 수 있는 회사가 한국에도 충분히 있다”고 설명했다.


SBVA와 오픈AI는 10월 13일 서울 강남구 울프강스테이크하우스에서 오찬 행사를 열고, 오픈AI 측 관계자와 스타트업 창업자들 간 상견례를 주선했다. [사진=SBVA]
SBVA와 오픈AI는 10월 13일 서울 강남구 울프강스테이크하우스에서 오찬 행사를 열고, 오픈AI 측 관계자와 스타트업 창업자들 간 상견례를 주선했다. [사진=SBVA]

Q 공급 차원도 궁금합니다. 연산 능력을 전 세계에 공급하잔 뜻일까요?

저는 인접국인 일본과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 국가들을 생각해요. 연산 수요가 높으면서, 한국에서 데이터를 보내도 레이턴시가 높지 않은 국가들이죠. 

Q 그렇게 하자면 어느 정도의 연산 능력을 확보해야 할까요? 기가와트 규모이겠죠?

맞습니다. 그 이상이 돼야겠죠.

Q 샘 올트먼이 삼성, SK와 손잡고 한국에 스타게이트 데이터센터를 짓기로 했죠. 그런데 20㎿ 규모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테스트 베드’에 가까워 보여요.

시작했다는 데 의미가 있어요. AI 미래를 만드는 회사가 한국을 실험실로 택한 겁니다.

실험실에서 한국의 시스템을 검증해야 해요. 검증한 시스템을 팔아야 하고요. 칩 회사는 칩 회사대로, 배터리 회사는 배터리 회사대로, 운영을 효율화하는 소프트웨어 회사는 또 소프트웨어대로 납품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저희 포트폴리오사 대표님에게도 “칩 하나 더 파는 걸 목표로 하시면 안 된다”고 조언해 드려요. 글로벌 경쟁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데이터센터에 패키지로 공급하고, 한국의 시스템을 브랜딩해야죠. ‘한국 시스템을 도입했더니 운영비가 10분의 1로 줄었다’고 하면 해외에서 안 쓰고 싶겠습니까? 그렇게 하려면 한국에서, 작은 스케일에서부터 적용해 보고 검증해야 하겠죠. 

Q 오픈AI와 소프트뱅크가 일본에선 아예 합작법인(JV)를 만들었던데.

그건 엔터프라이즈(기업용) 솔루션을 파는 법인이에요. 챗GPT를 기업에서 쓰려면, 기업 데이터를 학습시킨 다음, 기업의 자체 서버(온프레미스)에서 구동하게끔 하는 과정이 필요하거든요. 물론 시장 규모는 굉장히 커요. 하지만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건 아닙니다. 사실 얼마 전 JV 대표님이 한국에 오셨어요. 오히려 제가 ‘일본의 인퍼런스(추론) 작업 중 일부를 울산, 부산에서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시면 어떠냐’고 제안드렸어요. 더 저렴하니까요.

“‘진짜’ 행복할까?”

전산학과에 진학할 때부터 그랬어요. 저는 사람들이 보다 쉽게(저렴하게) 컴퓨터를 쓸 수 있게 하면, 사람들이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었거든요.

이 대표의 생각만큼이나 SBVA의 포트폴리오 역시 몇 년 새 크게 바뀌었다. 

2021년 SBVA(당시 ‘소프트뱅크벤처스 아시아’)는 포트폴리오사들의 홍보 담당자와 기자들을 소개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10여 개 스타트업 중 대부분은 플랫폼 서비스를 주력으로 했다. 그 무렵, 이런 서비스 기업들 가운데 유니콘 기업이 속출했고, 일부는 상장에 성공했다. 투자를 주도했던 심사역들 역시 상당한 보수를 받았다는 소식이 종종 나오곤 했다.

2025년 11월, SBVA는 오픈AI 관계자들과 스타트업 대표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 대표는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대표들에게 “핫라인”을 만들어주는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참여한 10여 곳의 스타트업 중 반도체 팹리스(‘하이퍼엑셀’, ‘세미파이브’), 배터리 개발사(‘스탠다드에너지’) 등 AI 인프라 기업이 다수 눈에 띄었다.

이 대표는 “사실 응용 서비스 회사들도 주의 깊게 봤는데, 투자하고 보니 인프라 회사가 많았다”며 “좋은 기술로 얼마나 사업을 키워낼 수 있느냐를 본 결과”라고 설명했다.

Q 포트폴리오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한 사이클이 지나갔다고 해야 할까요?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야후, 라이코스 같은 검색엔진이 떴죠. 처음엔 업체들이 난립하다가 선두주자가 나오고, 결국 소수 업체로 시장이 정리됐어요.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우버, 카카오T 같은 모빌리티 서비스가 떴죠. 역시 정리됐습니다. 그 다음 새로운 기술과 인프라를 바탕으로 새로운 산업이 나오곤 했어요. 

이제 챗GPT를 계기로 AI 시대가 열렸어요. 갈수록 AI 인프라 수요가 늘어납니다. 브로드밴드가 뜨면서 구리선, 광케이블 회사, 또 시스코 같은 네트워크 장비 회사가 떴던 것처럼요.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시장을 연다. 그러면 자본은 새로운 기회를 갖는다. 하지만 사람은 새로운 시장에 적응하는 일이 쉽지 않다. 샘 올트먼 같은 테크 리더들은 결과적으로 AI에 맞는 일자리가 나올 것이라고 낙관한다. 하지만 오늘을 사는 사람에게 그런 전망은 충분하지 않다. 그렇다면 다시 묻게 된다. ‘AI는 정말 인간의 확장을 도울까?’

당장 AI를 빌미로 기업들은 특히 신입사원 채용을 줄이고 있다. 젊은 세대가 경제활동을 하고, 자산을 축적할 수 있는 문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2020년 보수 성향의 벤처 투자자 피터 틸은 마크 저커버그 등에게 보낸 메일에서 “밀레니얼 세대 중 다수가 자신을 ‘친사회주의적’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들을 조롱하면 안 된다”며 “자본주의 체제에서 어떤 지분도 갖지 못한다면, 그 체제에서 등을 돌리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 11월 미국에선 최저임금 인상, 월세 등 생활비 안정을 내건 ‘사회주의자’ 후보가 뉴욕 시장에 당선되자, 다시 SNS에서 그의 글이 회자되고 있다. 조란 맘다니 당선인의 나이는 만 34세. 만 45세 미만 유권자의 3분의 2가 그를 택했다.


Q 피터 틸의 과거 글이 다시 회자되고 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죠. 30대에서 구직을 포기한 인구가 최고치(33만 4천 명)를 찍었어요. 올 초 국민연금 개혁안도 여야 막론하고 젊은 국회의원들은 반대했고요. 

Q AI로 가장 타격을 입는 세대도 이들입니다. 반감이 커질수록, 기술 수용성은 낮아지겠죠.

비슷한 질문을 샘에게도 했어요. ‘없어지는 직업이 있는 만큼 새로운 직업도 생겨날 것’이라고 하더군요. 산업혁명이 그랬듯이요.

Q 팬데믹도 누군가에겐 기회였습니다. 

맞습니다. 오늘을 사는 사람에겐 무거운 주제예요. 저도 밤 늦게 귀가해서 자는 아이들을 볼 때면 고민이 깊어져요. 어느 분과 이야기해도, 뚜렷한 답은 없었습니다. ‘질문을 잘하는 사람으로 키워야 하지 않을까?’라는 데엔 공감하죠. 좋은 질문을 해야 AI가 좋은 답을 낼 테니까요.

Q 모두의 문제에 대한 개인적 해법이네요. 

그렇죠. 그래서 요즘 제가 던지는 질문에 한 단어를 더하고 있습니다. “‘진짜’ 행복해질까?” 결국 AI 시대에 맞는 일자리가 생길 겁니다. 하지만 AI 시대를 맞는 중간 관리자들, 취업 준비생들도 행복할까요? 중요한 건, AI 시대의 리더십은 기술의 의미를 해석하는 능력에서 나온다는 겁니다. 기술을 기술적으로 이해하는 능력보다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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