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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악의 시대, CEO의 생존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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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최고경영자가 되는 일은 원래도 쉽지 않았지만, 지금처럼 힘든 환경은 없었다. 『CEO 레디(CEO Ready: What You Need to Know to Earn the Job — And Keep the Job)』의 공저자인 마크 톰슨과 바이런 로플린은 지금이야말로 리더십에 가장 큰 부담이 걸리는 시기라고 말한다.

최고경영자 연합(Chief Executive Alliance) 회장이자 세계 최고의 CEO 코치로 꼽혀온 톰슨, 그리고 나스닥 글로벌 이사회 자문 총괄인 로플린은 C레벨과 이사회라는 서로 다른 관점에서 이 시기를 입체적으로 짚어낸다. 이들은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리더십과 혼란을 관통하는 ‘셰익스피어적’ 테마, 그리고 “왕관을 쓴 자의 무거운 머리”라는 감각을 공유했다.

톰슨은 최고 자리에 오르고 싶은 이들에게 멘토 마셜 골드스미스로부터 배운 통념을 전했다. “지금까지 여러분을 여기까지 오게 한 것들은, 사실 전체 여정의 절반밖에 못 데려다줍니다.”(골드스미스는 2007년 『What Got You Here Won’t Get You There』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에 따르면, 특정 ‘레인’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는 임원에서 기업 전체를 바라보는 관점으로 전환하는 과정에는 완전히 새로운 학습과 역량 개발이 필요하다. 아무리 준비된 경영자라도 CEO 자리는 ‘존재론적’ 수준의 리스크가 달려 있는 자리기 때문이다.

톰슨은 “향후 1~2년 안에 CEO가 자리에서 잘려나갈(lose his or her head) 확률이 최소 20% 수준이고, 대형 브랜드에서는 체감상 그 두 배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는 최근 포춘에 이 같은 CEO ‘참수(해임)’ 현상을 다룬 에세이도 기고했다.

이 압박을 키우는 또 다른 요인은 이사회 기대치의 급격한 변화다. 예전처럼 ‘골프를 치던 친구들’에 가까운 이사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이사회 멤버들 스스로 성과 압박을 받는 위치에 있고, “참을성이 줄어들었으며” 자신들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실제 결과를 내야 하는” 역할을 요구받는다.

이런 환경에서는 사실상 모든 CEO 후보가 ‘평시와 전시를 동시에 치르는 CEO’ 역할을 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톰슨은 말한다. 즉, 기존 기업 문화를 잘 살려내면서도 동시에 “판을 뒤집고 새로운 길을 여는” 능력을 함께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CFO 같은 기능 조직 출신 임원이 승진하면 “월가와 주주를 읽는 감각과 중량감”은 갖췄을 수 있지만, 전사 구성원의 마음을 움직이고, 고객과 동행하며 현장을 뛰는 리더십은 부족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포춘은 2025년 내내 이 같은 CEO들의 불안정한 순간을 추적해 왔다. 헤드헌팅사 챌린저, 그레이 & 크리스마스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에만 1235명의 CEO가 자리를 떠났는데, 이는 2024년 대비 12% 늘어난 수치이며 2002년 집계를 시작한 이후 상반기 기준으로 가장 많은 수준이다.

수십 년간 주주 행동주의를 추적해온 바클레이스 글로벌 주주자문 총괄 짐 로스먼 역시 2025년 CEO 교체 중 상당수가 행동주의 투자와 연결돼 있다고 분석한다. 그는 이전 포춘 인터뷰에서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사실상 상장사를 사모펀드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다”며 이제 CEO는 “조직 내부 승진으로 자리 잡은 사람이 아니라, 운영자로 평가받는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말이 아니라 ‘실적’이 전부인 시대라는 뜻이다.

이 같은 환경은 CEO가 느끼는 고립감도 키운다. 많은 CEO가 말하듯 최고 자리는 외로운 자리다. 리더는 부하 직원에게는 말할 수 없지만 이사회에는 반드시 공유해야 하는 정보들을 혼자 떠안는다. 과거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도 맥킨지 인터뷰에서 이런 ‘정보 비대칭’의 무게를 언급한 바 있다.

맥킨지 CEO 프랙티스 공동 리더이자 설립자인 캐럴린 듀어는 포춘과 인터뷰에서 “조직 안팎 어디에도 CEO만큼 전체 그림을 동시에 보는 사람은 없다”고 말하며, 리더가 자신이 신뢰하는 조언자들, 일종의 ‘키친 캐비닛(kitchen cabinet)’을 주변에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로플린은 포춘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관계학(relationology)’이라는 개념을 좋아한다고 했다. 일종의 관계를 다루는 학문이라는 의미다. 그는 리더가 상황에 딱 맞는 “親밀한 관계의 포트폴리오”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CFO와 애널리스트 데이를 논의할 때, 컴플라이언스 팀과 규제 이슈를 조율할 때, 노조 간부들과 신뢰를 쌓을 때 등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언어와 감수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로플린은 “유능한 리더들조차 실제로는 7개 정도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 그룹과 깊게 소통해야 하고, 회사를 다음 단계로 끌어올리려면 6가지 정도 새로운 역량을 더 키워야 한다는 사실에 놀라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이 ‘맥락을 읽는 깊은 관계’는 사생활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그는 덧붙인다. 일과 삶을 완전히 분리할 수 있다는 생각은 “리더십을 약화시키고 회사의 조직문화도 해친다”는 것이다. 특히 이사회 의장은 CEO를 “셰익스피어 극에 나오는 인물처럼, 아주 깊은 수준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만 적절한 책임을 묻고, 회사 규정을 어길 수 있는 사적 관계가 지배구조를 위협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사회는 CEO 자신보다 더 깊이 CEO를 이해해야 할 때도 있다는 얘기다.

셰익스피어 마니아라고 스스로 밝힌 로플린은 비극과 희극의 차이는 주인공의 “취약성과 자기 인식 수준”에서 갈린다고 말한다. 스스로 변화와 성장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가 비극의 출발점이라는 해석이다.

톰슨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CEO로 살아남기 위해선 그리스 비극에서나 볼 법한 “이상한 조합”의 자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바로 ‘허브리스(hubris·오만)’와 ‘겸손’이다.

CEO는 자신이 업계 최고가 될 수 있다고 믿을 만큼의 허브리스를 갖고 있어야 한다. 동시에 혼자서는 절대 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깊은 겸손도 갖춰야 한다.

톰슨은 이 직업이 요구하는 기준이 얼마나 가혹한지 설명하며, 퀄컴 CEO 크리스티아노 아몬과의 인터뷰를 인용했다. “1년 전의 나와 똑같은 상태라면, 승진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는 허브리스를 “능력의 경계에 서 있는 상태”로 정의하며, 그때 뒤로 물러서기보다는 그 경계선으로 더 나아가 새로운 기술과 도움을 받아야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최고 자리는 어떤 상이 아니라 “이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특권”이라고 톰슨은 말한다. 올림픽 선수들이 기록을 세우는 순간부터 더 치열한 도전을 받기 시작하듯, CEO도 기록을 세우는 순간 더 강한 경쟁자들을 끌어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로플린은 이사회와 경영진 모두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식 마인드를 넘어서 진정으로 사람을 아끼고 신뢰와 책임을 키워가는 리더십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려면 리더가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성장의 여지가 있다고 털어놓는, 일종의 ‘특별한 취약성’을 드러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사회 역시 더 진정성 있는 인간적 애정, 때로는 ‘엄한 사랑’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자신들이 지켜보는 무대가 진짜 셰익스피어식 비극으로 끝나는 일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로플린은 최근 자산 300억 달러 규모 기업의 이사와 아침 식사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당신은 경영진을 사랑합니까?” 이사는 10여 년을 함께 일하며 다른 이사들과 C레벨 구성원들과 가족처럼 지낸 관계라며 “그렇다”고 답했다.

로플린은 수십 년간 이사회 거버넌스를 자문해온 경험을 돌아보며, 더 많은 이사회가 이런 태도를 갖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좋은 아버지는 문제를 일으키는 아들에게 가서, 제대로 대화하려고 하잖아요. 그게 멘토링이든, 경고든 간에요. 세상에는 늘 안 좋은 일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런 비유가 중요한 겁니다.” 월스트리트의 늑대처럼 굴자는 얘기가 아니라, “늑대, 혹은 행동주의 투자자는 항상 문 앞에 서 있다”는 현실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다.

/  Nick Lichtenberg & 김다린 기자 quill@fortun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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