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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그를 총수로 지정했다면, 쿠팡은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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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이 참사에 가까운 정보 유출 사고를 냈고, 이 회사 소유주는 창업주 김범석 의장이다. 그런데 김 의장은 “글로벌 CEO로서의 일정이 있다”며 국회 청문회장 출석을 회피했다. 이번만 그런 게 아니다. 쿠팡이 숱한 악재에 휘말릴 때마다 그랬다. 2021년, 김 의장을 쿠팡의 총수로 지정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장면이 연출됐을지도 모른다.

김다린 기자 quill@fortunekorea.co.kr

국회가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청문회를 열었지만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사진=뉴시스]
국회가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청문회를 열었지만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사진=뉴시스]

온 나라가 ‘쿠팡’으로 난리다. 대한민국 성인 3분의 2에 달하는 3370만 명의 개인정보를 유출해 국민적 혼란을 야기해 놓고, 정작 이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지 않아서다. 사고의 엄중함과 견줘보면 쿠팡의 후속 대처는 납득하기 어렵다.

해법은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가 관건이다. 일단 한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쿠팡의 지배자가 누군지 안다. 바로 창업주 김범석 쿠팡Inc. 의장이다. 그와 쿠팡의 성공 스토리는 ‘로켓 신화’로 포장됐다. 이런 회사가 사고를 냈다면, 당연히 김범석 의장이 책임지는 모습도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게 전혀 없다. 지난해 12월 연달아 열린 국회 청문회장이 대표적이었다. 쿠팡의 실소유주인 김범석 의장은 “글로벌 비즈니스 일정이 바쁘다”는 사유서를 제출하고 불출석했다. 대신 증인석에 앉은 인물은 사건 발생 직후 전격 선임된 해럴드 로저스 신임 대표였다. ‘동문서답’과 오역 논란에 휩싸이면서 맹탕 청문회로 끝났다.

지난해 말 김범석 의장이 “미흡한 대응과 소통부족에 사과한다”며 사과문을 발표하긴 했지만,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개인정보 유출 사실을 알린 지 29일 만의 ‘늑장 사과’였기 때문이다.

두문불출하는 김범석 의장의 행보도 일견 합리적이다. 김 의장은 2021년 6월 31일부로 한국 법인(쿠팡)의 등기이사 및 이사회 의장직에서 사임했다. 미국 국적자로서 국내 사업과의 법적 연결고리를 최소화했다. “글로벌 경영 활동을 위해 해외에 체류하고 있다”는 해명을 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이처럼 권한과 책임이 불일치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장치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동일인, 즉 총수 지정 제도다. 쿠팡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할 때 실질 지배자를 동일인으로 과감하게 지정했다면, ‘김범석 의장 실종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공정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복기해보자.

공정위는 대기업 집단에 경제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산 총액이 5조 원이 넘는 곳을 매년 조사해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한다. 공시대상기업집단이 되면 총수 일가의 주식 보유 현황, 대규모 내부 거래 현황 등을 외부에 알려야 한다. 2021년 공정위는 쿠팡을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당시 쿠팡은 심각한 적자 기업이었지만, 전국 물류센터 땅값 등이 오르며 이 기준을 넘겼다.

대기업집단 지정엔 중요한 절차가 또 있다. 바로 동일인 지정이다. 그 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동일인(총수)’을 특정해 책임과 공시 의무를 묶는 장치다. 동일인이 지정되면 친족과 특수관계인 범위가 확장되고, 각종 사익편취 규제와 자료 제출 의무가 발생한다. 사실상 대기업 집단의 경제력 집중을 규제하는 출발점이다. ‘누가 지배하는지’가 분명해야 ‘누가 책임지는지’도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동일인을 판단하는 기준은 지분이 아니다. ‘사실상의 지배력’이다. 한국 대기업 총수 일가의 실제 지분율은 평균 3%대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이사회 의결이나 대표 임명 등 경영상 중요 사항을 결정하기 때문에 총수로 불린다. 이론적으로는 동일인 일가가 지배구조 최상단 기업의 지분율을 30% 이상 소유하면 지배력을 인정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공정거래법에서도 ‘사실상 사업 내용을 지배하는 회사’ 등으로 표현한다.

동일인 규제의 효과는 명확하다.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지정자료 제출 책임이 뒤따르고, 해외 계열사 공시 의무가 강화된다. 부당지원과 사익편취 금지 의무도 더 분명하게 적용된다. 총수가 소유한 개인회사가 계열사와 거래하며 이익을 빼내는 구조를 막기 위한 장치도 촘촘해진다. 쿠팡의 경우, 김범석 의장의 지분율은 낮을지 몰라도 차등의결권을 통해 73.7%라는 압도적인 의결권을 행사한다. 명백한 ‘사실상의 지배자’다.

그런데도 당시 공정위는 쿠팡에서 이 장치를 제대로 작동시키지 않았다. 공정위는 김범석 의장이 미국 시민권자라는 이유 등을 들어 ‘사람’이 아니라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했다. 외국인 동일인을 규제하는 데 미비한 부분이 있고 통상 마찰 우려가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이때 공정위는 “김범석 의장이 미국 법인을 통해 국내 쿠팡 계열사를 지배하는 것은 명백하지만, 동일인(총수)을 개인이 아닌 법인으로 지정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가 든 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외국계 기업집단의 경우 관례적으로 국내 최상단 회사를 동일인으로 판단해 왔다는 점, 현행 경제력 집중 억제 제도가 국내를 전제로 설계돼 외국인 개인을 동일인으로 규율하는 데 제도적 공백이 있다는 점, 그리고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보든 쿠팡 법인을 동일인으로 보든 당장 계열회사 범위에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요약하면 “미국 시민권자라는 특수성과 기존 관례, 실무상 변화가 크지 않다”는 논리다.

당시 공정위는 이런 판단을 설명하기 위해 에쓰오일과 GM(당시 한국GM) 사례를 들었다. 에쓰오일의 모기업은 사우디아라비아 국영회사 아람코이고, GM의 최대주주는 미국 GM이다. 지배력만 놓고 보면 에쓰오일의 동일인은 사우디 왕실, 한국GM의 동일인은 GM 본사의 최고경영진이 돼야 할 것처럼 보이지만, 공정위는 두 회사 모두 개인이 아닌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해왔다.

쿠팡의 실질적 지배자는 김범석 의장이다. [사진=뉴시스]
쿠팡의 실질적 지배자는 김범석 의장이다. [사진=뉴시스]

다만 이런 비교가 적합한지는 의문이다. 쿠팡의 지배구조가 에쓰오일이나 한국GM과는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람코나 GM처럼 거대 주주 기반의 글로벌 기업에는 김범석 의장처럼 단일 개인이 압도적 의결권을 행사하는 구조가 존재하지 않는다. 더구나 아람코와 GM은 한국에만 사업 기반을 둔 기업도 아니다.

반면 김 의장은 한국에서 창업했고, 한국에서 사업을 전개하며, 핵심 수익도 한국 시장에서 나온다. 무엇보다 주요 경영사항을 좌우할 수 있는 실질적 의결권을 김 의장이 보유하고 있다. 공정위 역시 총수를 ‘기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사람 또는 법인’으로 규정할 뿐, ‘외국인은 동일인이 될 수 없다’는 명시적 금지 조항을 두고 있지는 않다.

공정위의 설명이 납득하기 어려웠을까. 금세 여론으로부터 “역차별”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김범석 의장이 미국 시민권자라는 이유로 쿠팡만 규제당국의 촘촘한 감시망을 비켜갈 수 있는 건 불공평하다는 지적이다. 당시 비교 대상으로 자주 언급되던 기업은 네이버였다. 네이버는 2017년 처음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될 때 창업주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이 동일인으로 함께 이름을 올렸다.

네이버는 “이해진 의장의 지분율이 4% 안팎에 불과해 회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오너로 보기 어렵다”며 지정 해제를 요구했지만, 공정위는 판단을 바꾸지 않았다. 이듬해 이해진 의장의 지분율이 3%대로 더 낮아졌는데도 결론은 같았다. 지분율이 아니라 ‘사실상의 지배력’을 기준으로, 이해진 의장이 네이버의 핵심 경영 결정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본 것이다.

IT 업계에선 이 대목에서 형평성 논란이 커졌다고 말한다. 한 관계자는 “지분율이 낮은 이해진 의장에게는 총수 지정을 밀어붙이면서, 김범석 의장에게는 법적 근거나 뚜렷한 명분 없이 예외를 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해진 의장은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수년간 불려갔던 반면, 쿠팡은 물류센터 화재, 코로나19 집단감염, 개인정보 유출 등 굵직한 논란이 이어졌지만 정작 출석한 건 한국 법인 대표였다.

국회 관계자는 “당시 김 의장이 쿠팡 한국 법인의 이사회 의장직과 등기이사에서 물러나면서 증인으로 신청할 명분이 약해졌다”며 “그룹을 대표하는 총수로 지정되지 않는 이상 김 의장을 국감이나 청문회에 직접 부르긴 어려운 구조였다”라고 토로했다.

물론 뒤늦게나마 공정위는 제도 개선의 칼날을 만지작거리고는 있다. 공정위는 오는 5월 올해 기업집단 동일인 지정 시점을 앞두고 사실관계 확인에 착수한 상황이다. 쿠팡이 동일인 지정 예외요건을 충족하는지 면밀히 살펴보겠다는 거다. 하지만 이미 3370만 명의 소중한 개인정보가 공중으로 흩어지고, 책임져야 할 이는 ‘글로벌 경영’이라는 면죄부 뒤로 몸을 숨긴 뒤다. 뒤늦은 동일인 지정 검토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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