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익숙한 궁궐을 낯선 세계로… 최정규 감독이 밝힌 ‘동궁’ 탄생기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동궁’은 귀의 세계를 넘나드는 능력을 가진 구천과 비밀을 간직한 궁녀 생강이 왕의 부름을 받고 동궁에 깃든 저주를 파헤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다.
‘불가살’ ‘손 the guest’ 등을 통해 자신들만의 오컬트 세계관을 구축한 권소라·서재원 작가와 ‘악마판사’ ‘붉은 달 푸른 해’ 등의 최정규 감독이 의기투합한 작품으로, 지난 17일 공개 후 3일 만에 490만 시청수(시청 시간을 작품의 총 러닝 타임으로 나눈 값)를 기록, 글로벌 TOP 10 비영어쇼 2위에 오르며 국내를 넘어 글로벌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적인 정서와 미학을 판타지 장르의 문법 안에 녹여낸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익숙한 궁궐이라는 공간에 귀의 세계와 기담, 오컬트적 상상력을 결합한 설정이 해외 시청자들에게도 신선하게 다가갔다는 평가다. 다만 일부 VFX 장면의 이질감과 후반부 액션 시퀀스, 기존 사극과 다른 말투와 연기 톤을 두고는 호불호가 갈렸다. 구천의 헤어스타일 등 세부적인 고증을 둘러싼 지적도 나왔다.
최정규 감독은 이러한 반응을 피하지 않았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그는 귀의 세계를 구현한 방식부터 꺼먹살이의 탄생 과정, 마지막 액션 시퀀스의 연출 의도까지 작품을 둘러싼 다양한 궁금증에 솔직하게 답했다. 배우들과의 협업 과정과 세계관 설계, 후속 이야기에 대한 생각도 전했다.
-공개 후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와 비슷하다는 반응도 많더라. 참고한 부분이 있나. 귀의 세계를 표현하는 데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었나.
“그런 작품과 비교된다는 것 자체가 반갑고 좋았다. 다만 저승, 지옥처럼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와는 다른 세계, 망자들의 세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온 인간의 상상이다. 그 세계를 어떻게 표현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보통은 그런 세계를 황폐하거나 기괴한 공간으로 떠올리기 마련이다. 우리가 자연스럽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들이 오히려 낯설고 기이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들과는 현실의 거울 같은 세계였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무엇보다 이 세계와 현실 세계의 교류를 통해 구천과 생강의 감정과 서사를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이 많았다. 가장 직관적인 방법이 컬러라고 생각했다. 현실의 자연과 궁궐의 모습과 대비될 수 있도록 큰 컬러 콘셉트를 잡았다. 레드를 활용한 공간도 있고, 쌍두사목이 지배하는 공간은 퍼플, 후반부의 삭막한 공간은 옐로우처럼 색을 통해 세계를 구분하고 표현했다.”
-꺼먹살이는 어떻게 탄생했나. 디자인 과정도 궁금하다.
“꺼먹살이는 작가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만들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귀신과 귀매들은 모두 설화나 기담 등 실제 전해 내려오는 존재들이다. 그것들을 우리 시리즈에 맞게 변용하고 시각화했다. 꺼먹살이는 다른 귀매들과 달리 비교적 근대에 만들어진 도시기담에서 착안했다. 장산범도 사실은 근대에 만들어진 존재다. 그런 지점을 참고해 만든 것이 꺼먹살이다. 디자인 과정은 굉장히 어려웠다. 다른 귀매들은 주인공과 대립하거나 스산한 분위기를 만드는 등 역할이 비교적 명확한데, 꺼먹살이는 주인공들과 감정적인 교류를 해야 했다. 또 변화와 변신, 본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해야 했기 때문에 최소한의 물리적인 근거까지 마련해야 했다.
귀신과 귀매, 크리처 디자인은 미술팀과 콘셉트 디자이너, 작가들, VFX팀, 스태프들이 오랜 시간 함께 다듬었다. 그중에서도 꺼먹살이가 가장 많은 변주를 거쳤다. 동물형을 비롯해 여러 디자인이 나왔지만, 최종적으로는 검은색이라는 이미지를 중심에 두고 어떤 형태가 가장 잘 어울릴지를 고민했다. 단순히 검은 기운으로 표현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전통 석상이나 돌, 흙으로 만든 토우 등 실제 존재하는 것들에서 이미지와 질감을 가져왔다. 검은 흙의 질감과 돌의 질감으로 연결해 디자인을 완성했다. 촬영 직전까지도 크리처들의 형태를 계속 수정했다.”

-VFX와 실제 세트의 비중은 어떻게 가져갔나.
“VFX 비중을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VFX가 많이 들어가는 작품인 것은 맞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대상과 세계를 전제로 촬영하고 연기해야 했기 때문에 어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원칙은 분명했다. 가능한 한 실제로 구현해 보자는 것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만큼이나 미술도 실제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최대한 구현해 보자는 원칙을 세웠다. 예를 들어 귀의 세계는 겨울에 촬영했고, 현실 세계는 봄과 가을에 촬영했다. 그 위에 VFX를 통해 컬러와 질감을 더하는 방식이었다. 실제로 구현된 공간을 기반으로 촬영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았다. 그래서 같은 궁궐이나 복도, 불당이라고 해도 현실 세계용 세트와 귀의 세계용 세트를 각각 따로 제작해 촬영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판타지 요소가 많이 들어간 만큼 이질감에 대한 고민도 많았을 것 같다. 특히 마지막 액션 시퀀스가 다소 과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어떤 콘셉트로 연출했나.
“VFX가 들어가는 장면은 아무래도 이질감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주어진 환경이나 시간 같은 현실적인 조건 때문에 원래 계획과 조금씩 달라진 부분도 있었다. 다만 후반부 액션 시퀀스들은 각각 콘셉트가 모두 달랐다. 궁녀들과 함께하는 화재 장면은 궁녀들의 한과 정서를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카메라가 멀리서 크게 움직이며 그 감정을 담아내는 방식으로 연출했다. 별감귀신 시퀀스는 지옥 같은 공간을 뚫고 나온 뒤 지친 구천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카메라가 구천을 한 호흡으로 계속 따라가는 방식으로 설계했다. 마지막 액션 시퀀스는 세자와의 1 대 1 대결을 중심으로 조금 더 정통적인 액션 문법을 택했다. 그 과정에서 주변 백성들의 모습도 함께 담아내려고 했는데 헤비한 시퀀스로 느껴졌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한국적 정서가 고스란히 담긴 미장센도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구현하려 했나.
“촬영감독의 커리어 첫 작품이 ‘취화선’이었고, 나 역시 사극을 많이 했다. 둘 다 20~30대 커리어 초반에는 막내로 사극 현장을 많이 경험했는데, 지금은 무엇을 새롭게 할 수 있을지를 많이 고민했다. 원로 촬영감독들에게도 조언을 구하고 미팅도 여러 번 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은 지금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을 피하지 말고 솔직하게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미사여구 없이, 특히 현실 세계에서는 있는 그대로 담아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경복궁을 비롯한 여러 로케이션을 직접 다니며 접근했다. 소품이나 의상, 복식 역시 과시적으로 보이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훌륭한 스태프들이 많아서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도 많이 제안해 주고 함께 수정해 나갔다.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전통적인 음악과 현대적인 감각을 어떻게 조화시킬지 주저하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음악감독이 먼 나라의 전통 악기까지 구해와 연주했는데, 오히려 우리 전통 악기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런 다양한 시도를 많이 했다.”

-궁궐과 의상 등 전반적인 미술은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다. 다만 구천의 뒷머리 등 세부적인 지점에서는 고증과 다르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사실 모니터를 보면서 ‘저걸 짚는 사람은 우리 편이다’라는 이야기를 했다.(웃음) 그만큼 애정을 갖고 작품을 봐주시는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부분을 모르고 넘어간 것은 아니다. 원래는 머리를 위로 묶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지금보다 훨씬 길어야 한다. 그런데 시간적인 문제도 있었고, 처음 디자인을 적용해 보니 배우가 연기하는 데 제약이 너무 크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머리를 1년 이상 길러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고, 배우가 조금이라도 덜 불편한 상태에서 자유롭게 연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선택을 하게 됐다. 그 부분은 어쩔 수 없는 양해를 부탁드리고 싶다. 변명의 시간이었다.”
-왕 캐릭터가 굉장히 입체적이었다. 어떻게 설계했나.
“왕은 정말 어려운 캐릭터였다.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직접적으로 속을 드러내지 않아야 했다. 그렇다고 모든 걸 다 보여주면 서사의 기본 축이 흔들릴 거라고 생각했다. 작가님들과 콘셉트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나눈 단어가 ‘비밀’이었다. 이 사람이 숨기고 있는 비밀을 어디까지 드러낼 것인지, 비밀이라는 말이 가진 매혹과 위험함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왕에게는 분명 죄악과 악행이 있다. 하지만 단순히 개인이 악인이어서 그런 선택을 했다는 느낌보다는 궁이 상징하는 인간의 욕망과 권력, 선대를 둘러싼 이기적인 마음들이 드러났으면 했다. 그의 선택을 선과 악으로 명확하게 나누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너무 양면적인 캐릭터는 자칫 모호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임금이라는 인물만큼은 그런 지점을 담아내고 싶었다.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해준 사람이 조승우였다. 정말 조승우 덕분이었다.”
-조승우가 감탄할 만한 연기력을 보여줬다. 현장에서는 어땠나. 특히 다과를 먹는 시퀀스가 인상적이었는데.
“워낙 잘하는 배우고 멋있는 배우다.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을 다 표현해 줬다고 생각한다. 촬영 중에도 현장에서 계속 이야기를 나눴고, 촬영이 없을 때는 전화로도 많이 소통했다. ‘이 장면은 이런 감정으로 가자’라고 하기보다는 이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촬영하면서도 다시 이야기를 나눴다. 생강과의 관계에서는 부성과 음모를 얼마나 섞을지 같은 부분도 굉장히 많이 의논했다. 워낙 세심한 배우라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었다. (다과 장면은) 새로 만든 세트에서 처음 촬영하는 거였는데 촬영 며칠 전에 ‘어디서 찍는지 보여줄 수 있냐’고 해서 도면을 보내주고 함께 의견을 나눴다. 이 공간을 얼마나 잘 표현할 수 있을지 계속 이야기했고, 그렇게 동선과 콘셉트가 만들어졌다. 조승우는 극적인 본능이 정말 뛰어난 배우다. 이 장면을 어떻게 소화하고 표현할지 몇 주 전부터 함께 고민하고 의논했다. 나는 그 형이 시키는 대로 했다.(웃음)”
-대비를 연기한 장영남도 강렬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장영남 선배와 촬영 전에 대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 사람은 자신의 신념이 굉장히 명확한 사람이고, 자신이 가는 길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신분제 사회와 자신의 태생, 쉽게 말하지 못하는 억눌린 권력욕까지 있지만, 본인은 자신의 길을 굉장히 믿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당당하게 보여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극의 역할로 봤을 때도, 특히 초반부에서 대비가 극적인 순간들을 만들어내는 인물이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에너지를 다 발산하자’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자’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였고, 그래서 강렬한 연기가 나왔던 것 같다.”

-남주혁, 노윤서의 연기 톤이 다소 어색하다는 반응도 있었는데.
“‘동궁’은 가상의 국가와 가상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지만, 익숙한 사극의 외형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반응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작품은 일반적인 사극과는 구조가 조금 다르다. 사극치고 등장인물의 규모가 굉장히 작다. 보통 사극처럼 대신이나 가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많지 않고, 구천과 생강, 그리고 왕과 대비에게 이야기가 집중된다. 왕과 대비는 신분과 지체가 높은 인물이라 공적인 대사를 많이 하는 역할이다. 반면 구천과 생강은 신분과 태생도 그렇고 둘만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친밀감을 나누는 장면이 대부분이다. 심각한 장면에서도 두 사람의 유대와 조금씩 변해가는 감정을 중심으로 끌고 갔다. 그래서 말투나 연기의 톤도 자연스럽게 달라졌던 것 같다. 오히려 구천과 생강은 감정의 폭이 더 넓었다. 개인적으로는 남주혁과 노윤서 모두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굉장히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사극 말투와 현대적인 표현의 균형은 어떻게 맞췄나.
“대사는 작가들과 처음부터 너무 많은 고어체는 쓰지 말자는 이야기를 했다. 일부러 배제하려고 한 것은 아니고,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면서도 형식을 갖출 수 있는 선을 찾자는 것이었다. 고어에 너무 얽매이지는 말자는 방향이었다. 다만 작품 속 대부분의 장면이 궁 안에서 벌어지고, 격식을 갖춰야 하는 자리들이 많다. 사가나 저잣거리, 궁 밖의 이야기가 거의 없기 때문에 다양한 말투를 보여줄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런 점 때문에 더 극단적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다.
사실 인물들이 사용하는 말투도 공간에 따라 분리돼 있다. 구천은 캐릭터 자체가 대비 앞에서도 ‘왜 그러슈’ ‘왜요’라고 말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구천은 생강 외에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장면이 거의 없다. 그런 점도 특징으로 작용한 것 같다. 반면 생강은 임금과 이야기할 때, 대비와 이야기할 때는 공주로서의 예법과 존댓말, 격식을 더 따르도록 톤을 조절했다. 하지만 아버지와 단둘이 있는 순간에는 자연스럽게 공적인 관계에서 부녀의 관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계속 고민했다. 의도적으로 인물을 최소화해 그 공간 안에서는 두 사람의 감정을 더 집중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공적인 이야기에서 부녀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순간을 만들고 싶었다.”
-구천과 생강의 관계는 어떤 방향으로 그리려고 했나.
“작가님들과 초반부터 많이 이야기했던 부분이다. 대본 단계부터 남주혁, 노윤서와도 계속 의논했다. 기본적인 목표는 이랬다. 두 사람이 손을 잡거나 뽀뽀를 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 시청자들이 ‘저 둘이 잘됐으면 좋겠다’고 자연스럽게 느끼길 바랐다. 비슷한 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홈즈와 왓슨, 또 ‘X파일’의 멀더와 스컬리 같은 관계를 떠올렸다. 직접적인 멜로는 하지 않는데 시리즈를 보다 보면 어느새 두 사람을 응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관계 말이다. 우리도 그런 관계를 만들고 싶었다.”
-후속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세계관을 설계한 부분도 있나.
“작가님들이 이 아이템과 이야기를 오래전부터 조금씩 발전시켜 왔다. 두 작가의 세계관이 굉장히 치밀해서 다양한 설정들이 많이 있다. 다만 그 모든 설정을 시청자들에게 얼마나 효과적이고 재미있게 전달할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일부는 생략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작품 속 사건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설정은 모두 있다. 배우들과 함께 연기하고 촬영하려면 그런 배경 설정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후속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일부러 남겨둔 것은 아니다. 작품을 만들 때는 지금 이 작품이 전부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