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반가운 변주, 아쉬운 리듬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좋은 리메이크는 익숙한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원작이 지닌 매력과 정서는 품되, 지금의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그런 점에서 김도영 감독의 ‘인턴’은 꽤 영리한 선택을 한다. 11년 전 사랑받았던 이야기에 한국의 정서와 오늘의 직장 풍경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면서 원작과 닮았지만 분명 다른 ‘인턴’을 완성했다.
영화 ‘인턴’은 론칭 3년 만에 패션계의 다크호스로 급부상한 CEO 선우(한소희 분)의 회사에 경력 37년 차 실버 인턴 기호(최민식 분)가 입사하면서 시작되는 오피스 라이프를 그린 작품이다. ‘82년생 김지영’ ‘만약에 우리’ 등을 연출한 김도영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2015년 개봉한 동명의 할리우드 영화를 한국의 정서와 시대 변화에 맞춰 리메이크했다.
큰 줄기는 원작을 충실하게 따른다. 오랜 직장 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기호가 패션 스타트업 우투투의 실버 인턴으로 새로운 출발에 나서고, 자신과 모든 것이 다른 젊은 CEO 선우와 만나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변화한다. 원작의 따뜻한 정서와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이라는 중심축도 고스란히 이어간다.
하지만 세부적인 설정과 인물의 관계에서는 제법 과감하게 다른 길을 택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판 ‘인턴’만의 매력이 살아난다.
가장 반가운 변화는 기호를 둘러싼 관계다. 원작에서 벤의 새로운 로맨스가 한 축을 담당했다면 한국판은 이를 덜어내고 우투투 직원들과의 관계에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오랜 시간 함께한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기호의 삶을 새로운 사랑으로 채우기보다 낯선 세대와 어울리고 다시 사회의 일원이 되는 과정에 집중한 선택이 한국적인 정서에도 더욱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기호와 젊은 직원들이 가까워지는 과정이 현실적이다. 처음부터 모두가 기호를 반기는 것은 아니다. 자신과 다른 세대의 입사 동기가 신기하면서도 어렵고,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라 어색해한다. 영화는 그 낯선 거리를 억지로 뛰어넘지 않는다. 함께 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쌓이면서 조금씩 기호에게 마음을 열고, 어느새 동료이자 인생 선배로 그를 의지한다.
기호는 요즘 청춘들의 곁에 한 명쯤 있었으면 싶은 ‘좋은 어른’이다. 자신의 경험을 앞세워 가르치려 들기보다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필요한 순간 손을 내민다. 특히 열심히 일하고 성과를 내고도 자신의 몫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유진(박예니 분)의 진가를 알아보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모습은 오늘도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버티고 있는 청춘들을 향한 응원처럼 다가온다.

선우도 원작과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워킹맘이라는 설정을 덜어내고 젊은 여성 CEO가 감당해야 하는 책임과 불안에 보다 집중했다. 특히 후반부 선우가 내리는 선택은 한국판 ‘인턴’이 원작과 가장 뚜렷하게 갈라서는 지점이다. 사랑했던 것도 이별하는 것도 후회하지 않겠다는 그의 선택은 누군가와의 관계가 아닌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성장으로 이어져 깊은 여운을 남긴다.
기호와 선우 외에 주변 인물을 확장한 선택도 효과적이다. 원작보다 역할이 커진 영환(김준한 분)부터 성실하지만 자신의 성과를 빼앗기는 유진, AI에 과몰입한 민아(류혜영 분), 처세술에 능한 준형(임성균 분), 기호를 살뜰하게 챙기는 입사 동기 주성(김요한 분)과 윤희(윤상정 분) 등 저마다의 개성을 지닌 인물들을 더해 지금의 직장 풍경을 보다 풍성하게 그려낸다.
한국적인 색채를 입힌 소소한 디테일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기호가 건네는 오란다부터 지금의 신조어와 과거의 유행어, 남산타워와 서울의 아름다운 야경까지 익숙한 풍경과 정서를 곳곳에 자연스럽게 녹여내 한국판 ‘인턴’만의 감성을 완성한다.
아쉬움도 있다. 121분이었던 원작보다 11분 늘어난 132분의 러닝타임은 다소 길게 느껴진다. 애초에 거대한 사건이나 강한 갈등으로 밀고 나가는 작품이 아닌 만큼 인물과 서사가 늘어나면서 중간중간 호흡이 처지고 루즈하게 느껴진다. 극적 재미를 살리기 위해 심어놓은 장치도 순간의 재미로는 기능하지만 전체적인 리듬을 끌어올리는 데까지 이어지지는 못한다.
한소희의 연기도 아쉽다. 특히 선우가 처음으로 자신의 불안과 흔들리는 마음을 털어놓는 장면에서 감정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와닿지 않는다. 선우의 단단한 겉모습 뒤에 숨겨진 내면을 온전히 마주하게 되는 중요한 순간인 데다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지만, 그 절박함과 불안이 충분히 전해지지 않아 인물의 마음에 온전히 닿기 어렵다.
반면 최민식은 기대를 뛰어넘는다. 오랜 시간 강렬하고 굵직한 인물들을 주로 연기해 온 만큼 이렇게 평범하고 따뜻한 인물에서도 자신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을지 궁금했는데, 기우였다. 힘을 한껏 덜어내고도 존재감을 잃지 않는 모습에서 최민식이라는 배우의 진가를 새삼 확인하게 한다. 원작의 로버트 드 니로가 단 한순간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최민식의 기호’만 남는다.
김도영 감독은 “원작의 메시지를 잃지 않으면서도, 한국적 공감대와 MZ세대의 언어를 녹여내 하나의 영화로 재탄생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연출 의도를 전했다. 오는 16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