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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st BIFF] “협업은 새로운 창문”… 판빙빙이 경계를 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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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판빙빙이 취재진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 시사위크 DB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판빙빙이 취재진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 시사위크 DB

시사위크|부산=이영실 기자  배우 판빙빙은 익숙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다양한 국가의 감독, 배우들과 만나고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하며 끊임없이 가능성을 탐색해 왔다. 그에게 낯선 협업은 또 다른 영화를 발견하게 하는 ‘창문’이다.

지난 7일 부산시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비프힐에서는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BIFF) 판빙빙 기자회견이 열렸다. 판빙빙은 아시아영화의 창 초청작 ‘미친 노인의 일기’와 와이드 앵글-아시아 단편 경쟁작 ‘그녀가 말했다’로 부산을 찾았다.

‘미친 노인의 일기’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웨인 왕 감독의 신작이다. 뇌졸중으로 왼쪽 신체가 마비된 70세 우츠기(릴리 프랭키 분)가 자신을 돌보는 중국인 며느리 수수(판빙빙 분)를 향해 미묘하고 관능적인 욕망을 느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녀가 말했다’는 싱가포르 출신 신예 아이번 탄 감독의 단편이다. 남자친구에게 청혼을 받은 링(판빙빙 분)이 과거 범죄단지에서 로맨스 스캠에 가담하다 탈출했다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사랑을 볼모로 사람들을 속여온 링의 말 가운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질문을 던진다.

판빙빙은 ‘미친 노인의 일기’에서는 자신을 향한 우츠기의 욕망과 미묘한 관계를 형성하는 수수를, ‘그녀가 말했다’에서는 사랑을 볼모로 사람들을 속였던 과거를 털어놓지만 그 말의 진위마저 의심하게 만드는 링을 연기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다시 찾은 소감은.

“다시 오게 돼 기쁘다. 방문할 때마다 아이디어와 격려를 받는 것 같다. 개막식 때마다 흥분된다. 영화제를 통해 한국의 여러 감독님을 만날 수 있어서 기쁘다. 바닷가를 걸을 때마다 익숙한 느낌이 들고 마음도 가벼워지는 것 같다. 모두 영화제를 다양하게 즐겼으면 좋겠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다면.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건 현장에서 즐겁게 놀 수 있는지다. 결과를 추구하는 건 힘들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스태프, 감독님과 함께 즐겁게 놀 수 있으면 좋다. 좋은 캐릭터와 각본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감독들과 함께하는 과정도 즐겁게 생각한다. 스태프들이 함께 즐겨야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 것 같다.”

-다양한 국가의 작품에서 여러 캐릭터를 연기해 왔다. 새로운 작품과 캐릭터에 계속 도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다. 나는 중국 배우지만 다양한 나라와 협업해 왔다. 나라마다 스타일이 있고 각자의 특색이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영화에 도전할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 ‘미친 노인의 일기’를 촬영하면서는 현지의 언어도 배웠다. 협업은 나에게 창문을 열어준다고 생각한다. 그 창문을 통해 밖에 있는 영화가 이렇게 재미있고, 또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배우에게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다. 가능성이 있어야 새로운 것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캐릭터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계속 나아가야 새로운 가능성과 다양성을 발견하고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다. 그래야 새로운 차원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곳으로 나가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친 노인의 일기’에서 수수를 연기한 판빙빙(왼쪽) 스틸. / 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
‘미친 노인의 일기’에서 수수를 연기한 판빙빙(왼쪽) 스틸. / 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

-웨인 왕 감독의 ‘미친 노인의 일기’에 참여한 과정과 촬영 경험은 어땠나.

“‘미친 노인의 일기’는 원작 소설이 있는 작품이다. 원래 웨인 왕 감독을 좋아했기 때문에 제안을 받았을 때 특별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70대의 나이에도 창작하고 싶어 한다는 게 놀라웠다. 영화는 죽음과 질병, 욕망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작품을 촬영하려고 했을 때 감독님께서 ‘마지막 작품이 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70대임에도 모니터 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내려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함께 호흡을 맞춘 일본 배우들도 훌륭했다. 그들의 연기를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촬영이 끝난 뒤 웨인 왕 감독님께서 ‘더 많은 작품을 찍을 수도 있겠다’고 하셨다. 즐겁게 촬영한 뒤 심경에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나 역시 그 과정이 재미있었다. 협업에서 언어가 소통의 장애가 될 수도 있지만 언어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촬영하며 나누는 교류가 중요하다.”

-‘미친 노인의 일기’의 어떤 점에 끌렸나.

“배우로서 캐릭터를 선택할 때 위험한 관계에 놓인 상황을 좋아한다. 자주 만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원작 소설도 특별했다. 뇌졸중에 걸리고 자신의 나이에서 오는 충격을 느끼고 있지만 욕망만큼은 살아 있는 인물이다. 우리가 노인이나 부모님 세대, 할아버지와 할머니 세대에 대해 그동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 낮은 기대치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그들도 인간으로서 욕구와 욕망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뇌졸중으로 행동이 불편해지고 정신적으로도 무너졌음에도 욕망을 통해 새로운 불꽃이 보인다고 느꼈다. 위험한 관계 속에서 새로운 불꽃이 튀어나온다고 생각했다.

웨인 왕 감독은 이런 이야기를 블랙코미디 방식으로 보여준다.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을 때도 관객들의 반응이 서로 달랐다. 영상과 이야기를 좋아한 분들이 있는 반면 반대의 평가도 있었다. 영화를 보는 관객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나는 현장에서 즐겁게 놀았다는 게 중요하다. 감독님도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이전과 다른 것을 느꼈다고 하셨다. 예전에는 촬영을 마치고 편집에 들어가면 ‘100번 이상 자기 자신을 죽이고 싶었다’고 하셨는데, 이번 작품은 ‘편집 작업도 행복했고 내가 원했던 작품이었다’고 하셨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중요하다.”

‘그녀가 말했다’에서 링을 연기한 판빙빙. / 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
‘그녀가 말했다’에서 링을 연기한 판빙빙. / 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

-신인 감독인 아이번 탄과 단편 ‘그녀가 말했다’를 작업한 경험은.

“싱가포르의 신인 감독이다. 처음에는 감독님도 불안해했다. 프로듀서님이 작품을 가져왔을 때 ‘신인 감독인데 학문적인 감독이고 학교에서 영화를 가르치고 있다. 이런 작품을 촬영하고 싶어 한다’고 했다. 나는 이 영화를 촬영하면서 재미있게 놀았다고 생각한다.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싱가포르와 대만, 부산까지 초청받았다. 영화인으로서 신인 감독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감독, 배우들과의 협업에서 받은 인상이 있다면.

“많은 한국 영화인들과 협업했다. 코로나19 시기에도 한국에서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 한국 영화를 보면서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장이머우 감독님도 이야기했지만 한국 배우와 감독들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고 다양한 장르를 보여주고 있다.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을 봤는데 정말 좋았고 새로운 충격을 받았다. 배우들이 자유롭게 영화 속을 헤엄치고 있다는 게 부러웠다. 한국에는 다양한 콘텐츠가 존재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녹야’에서 이주영의 모습을 봤을 때도 프로다운 모습과 그 안의 신선함을 느꼈다. 그런 경험을 통해 내 영화에도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AI 기술이 영화 산업으로 빠르게 들어오고 있다. AI가 배우를 대체할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또 데뷔 30주년을 맞은 배우로서 생각하는 좋은 연기란 무엇인가.

“AI는 아직 진행형이라고 생각한다. AI 숏폼 드라마가 굉장히 많고 나도 가끔 본다. 숏폼 드라마를 보면 비슷하게 생긴 모습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 배우들의 모습이 비슷하고 기억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국의 젊은 세대가 좋은 작품을 많이 접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작품을 봐야 예술에 대한 심미안을 가질 수 있는데 요즘 젊은 친구들은 숏폼 드라마를 많이 본다. 이런 숏폼이나 AI 작품으로 배우가 대체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부 감독들이 예산을 줄이기 위해 AI를 사용하고 있지만 감정이나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 한 사람의 삶에서 나오는 노련함과 기술은 AI가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능한 사랑’을 보면서도 AI는 저런 연기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데뷔 30주년을 맞은 나에게도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배우들이 서로를 잘 알고 감독도 배우들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만들고 관계성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연기도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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