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와 넷플릭스 같은 OTT의 등장으로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를 접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나 세계 팬들의 관심을 받으면서 윤리적 기준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중요시되지 않았던 타국 문화 비하 논란이 번져 갈등이 생긴 사례가 나왔다. 사례들을 살펴봤다.
2021년 방송된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 3’는 로건리(박은석)의 친형 알렉스(박은석)의 첫 등장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해 논란이 됐다. 레게머리에 요란한 타투를 한 채 등장한알렉스의 옷차림이 흑인을 희화화한 스타일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해당 장면을 연기한 배우 박은석은 자신의 틱톡 계정을 통해 영어 의견문으로 사과했다. 박은석은 “그 캐릭터의 어떤 모습도 아프리카계 미국인 사회에 해를 끼치거나, 조롱하거나, 무례하게 하거나, 낙담하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라며 “조롱보다는 문화에 대한 찬미였지만 그 접근법이 문화적 도용(문화적 전유·Cultural Appropriation)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됐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펜트하우스 3’ 제작진도 “특정 인종이나 문화를 희화화할 의도는 없었다”라는 입장을 내놨다
지난해 7월 방송된 MBC 드라마 ‘빅마우스’는 태국 비하 논란에 시달렸다. 같은 달 30일 방송된 2화에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주인공 박창호(이종석)는 한 사이코패스 사형수에게 “네 엄마가 너 낳고 미역국은 드셨냐. 너 같은 사이코를 낳고 도대체 뭘 드셨냐. 똠양꿍? 아니면 선짓국?”이라며 시비를 걸었다.
해당 방송분을 접한 태국의 누리꾼들은 “인종차별적인 대사”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태국의 네티즌들은 SNS에 “똠얌꿍을 먹어서 사이코패스가 되었다는 발언은 인종차별적이다”, “인종차별에 민감하지 않은 대사” 등 불쾌하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지난해 9월 방영한 정서경 작가의 복귀작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는 베트남 비하 논란으로 몸살을 앓았다.등장인물 원기선(이도엽) 장군이 베트남 전쟁에서 무공을 세운 후 푸른 난초를 가져온 이야기를 다루는 부분과 다른 참전 군인이 “한국군 1인당 베트콩 20명을 죽였다”“한국군은 베트남 전쟁 영웅”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문제가 됐다.
베트남 현지 매체들은 해당 부분을 두고 베트남 전쟁을 왜곡했다며 자국 내 방영을 중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논란 전 베트남 계정 넷플릭스에서 줄곧 1위를 달리던 ‘작은 아씨들’은 논란 이후 플랫폼에서 사라지며 현지 방영이 중단됐다.
이에 제작사는 “향후 콘텐츠 제작 시 사회 문화적 감수성을 고려해 더욱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사과했다.
지난해 9월 공개돼 흥행한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은 윤종빈 감독이 연출과 극본을 모두 맡았다. ‘수리남’에는 하정우, 황정민, 박해수, 조우진, 유연석, 장첸 등의 배우들이 출연했다.
실존 인물인 마약왕 조봉행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 마약상이었다가 남미의 작은 국가 수리남으로 도피해 해외 마약상이 된 전요환(황정민)과 그를 잡는 국정원 요원(박해수)의 작전에 투입된 민간인 사업가(하정우)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지만 ‘수리남’이 공개되자 수리남 정부가 강한 유감을 표했다. 알베르트 람딘 수리남 외교·국제사업·국제협력부장관(BIBIS)은 BIBIS 웹사이트에서 드라마 ‘수리남’을 언급하며 “제작사에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람딘 장관은 “‘수리남’ 제작진은 우리나라를 마약을 거래하는 야생의 부정적 이미지로 그렸다”며 “더 이상 마약 운송 국가도 아니고, 이미지 개선을 위해 노력해 왔는데 드라마 때문에 그간 노력이 수포가 될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수리남 정부 측이 드라마 제목을 변경해달라는 요청을 하면서 한국 타이틀은 ‘수리남’으로 하되 영어 타이틀이 ‘나르코 세인츠’로 변경됐다.
이후 장성민 대통령실 미래전략기획관이 동년 10월 수리남을 방문해 찬드리카퍼사드 산토키 대통령을 예방하고 영문 제목을 바꾸도록 한 한국 정부의 노력을 알렸다.
지난 8일과 9일 방영된 JTBC 금토드라마 ‘킹더랜드’에는 아랍 왕자 사미르(아누팜 트리파티)가 등장했다. 사미르 왕자는 극중 남주인공 구원(이준호)의 강력한 라이벌로 등장했다.
구원의 전화를 받으며 등장하는 첫 장면에서 사미르는 호화로운 클럽에서 아름다운 여성들에 둘러싸인 모습이었다.
또 킹호텔에서 음식 대접을 받는 장면에서 사미르는 천사랑(윤아)을 보고 첫눈에 반해 대놓고 추파를 던졌다. 이에 구원은 “바람둥이”라며 사미르를 견제했다.
해당 회차를 본 아랍권 네티즌들은 트위터 등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아랍인이 음주를 하고 심한 바람둥이라는 설정이 현지 문화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또 아랍 왕자로 등장한 배우가 아랍계가 아니라 인도인이란 부분도 지적했다.
이에 ‘킹더랜드’ 제작사는 “특정 국가나 문화를 희화화하거나 왜곡할 의도가 전혀 없었으나 타 문화권에 대한 입장을 고려하지 못하고 시청자 여러분께 불편함을 끼친 점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입장을 발표했다.
이어 “타 문화에 대한 이해와 경험, 배려가 아주 부족했음을 통감하며 이번 일을 계기로 다양한 문화권의 시청자들이 함께 즐겁게 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또 “영상의 문제가 되는 부분은 신속히 최선의 수정을 진행할 계획이며 제작진은 앞으로 시청에 불편함이 없도록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제작하겠습니다”라며 “저희 콘텐츠를 사랑해 주시는 많은 시청자 여러분께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