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송강호 “연기 넘버원? 자괴감·열등감 느껴요”
김지운부터 강제규, 박찬욱, 봉준호, 이창동, 이준익 그리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까지.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적인 명장도 앞다퉈 찾는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관객에게 전달하는 그들의 페르소나이자 파트너 이상의 역할을 해내기 때문이다. 배우 송강호에 대한 이야기다.
삼류 건달부터 시골 형사, 뱀파이어 신부, 천재 관상가, 비정한 왕, 국가란 무엇인지 묻는 변호사, 아들의 학력 위조를 격려하는 허허실실 아버지 등 ‘천의 얼굴’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온 송강호가 이번엔 1970년대 영화감독으로 돌아온다.
18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송강호는 9월27일 선보이는 ‘거미집'(제작 앤솔로지 스튜디오)에 대해 “신선하고 영화적인 느낌이 강한 작품이라 반가웠다”며 “요즘 OTT 등 수많은 콘텐츠가 다양한 채널을 통해 소개되고 있지만, 영화관에서 큰 스크린으로 관객과 같이 웃고 우는 영화만이 가진 매력이 있다. ‘거미집’을 통해 ‘이게 영화지!’라는 말을 들으면 극찬일 것 같다“고 말했다.
김지운 감독이 연출한 ‘거미집’은 1970년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바꾸면 걸작이 될 거라 믿는 영화감독(송강호)이 검열을 피해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 제작자 사이에서 촬영을 밀어붙이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린 블랙코미디. 감독의 영화 현장과 그가 찍는 흑백영화 ‘거미집’이 교차하는 색다른 구성을 띈다.
“낯선 형식이고 늘 봐왔던 영화의 소재나 컬러가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영화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고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송강호는 ‘거미집’을 촬영하면서 ‘반칙왕'(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 ‘살인의 추억'(2003년) 등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의 르네상스기라 불리던 때가 많이 떠올랐다고 고백했다.
“영화를 풀어가는 ‘리듬감’이 상당히 흡사했다”던 송강호는 “누구 하나 각자의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유기적으로 엮여 있었다. 배우들끼리 앙상블과 밀도감을 높이며 흥겹고 열정적으로 촬영했던 그때의 느낌이 들어서 반가웠다”고 돌이켰다.
하지만 최근 고 김기영 감독의 유족이 ‘거미집’에 대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는 등 송강호가 연기한 김 감독이 일부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하면서도 부정적으로 묘사해 인격과 초상권을 침해했다며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는 등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김 감독의 유족과는 극적으로 합의했지만 여전히 오해는 남을 만하다.
“이 영화는 1970년대 초, 열악한 촬영현장에서도 작품에 대한 열정을 보여줬던 거장 감독님들의 태도를 오마주했습니다. 특정 감독님이나 현장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거장 감독님들이 예술의 영혼을 불태우는 모습의 총집합이죠.“
호평받은 데뷔작조차 스승인 신 감독(정우성)의 유작이라는 의심과 이후 작품은 모두 싸구려 치정극이라는 악평에 시달리던 김 감독은 이틀만 다시 찍으면 걸작이 나올 거라는 집착으로 재촬영을 감행한다.
송강호는 “김 감독은 자신감이 있다가도 자괴감에 빠지는, 모든 예술가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을 지닌 인물”이라며 “재촬영을 한 김 감독이 영화를 본 마지막에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그게 정답이다. 인간의 욕망과 야망, 야심은 끝이 없지 않냐”며 극중 자신의 캐릭터를 설명했다.
‘연기로 대한민국 넘버 원’ 아니냐는 말에 송강호는 민망한 듯 “일개 배우일 뿐”이라며 김 감독과 같은 기분과 감정을 느낀다고도 털어놨다.
“걸작을 찍어도 그 속에서 자괴감과 열등감이 생기고 제 재능에 대한 확신이 안 들어 자신감이 떨어질 때도 있어요. 반면에 ‘나 왜 이렇게 잘하지?'(웃음)라는 마음이 들 때도 있고요.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거죠. 김열하고 똑같아요”
송강호는 김지운 감독과 ‘조용한 가족'(1998년)부터 ‘반칙왕’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년) ‘밀정'(2016년)에 이어 ‘거미집’으로 다섯 번째 호흡을 맞추게 됐다. 송강호는 “김지운 감독은 나를 항상 설레게 한다”고 고백했다.
“김지운 감독은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제가 앞서 ‘영화 여행’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김지운 감독과 함께하면 ‘이번엔 어떤 여행을 떠날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두렵기도 한데, 그것은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여행이라는 게 떠나기 전에 항상 설레잖아요. 늘 설레는 마음으로 만났고 함께 작업해왔어요.”
송강호는 “늘 끊임없이 새로움을 향해 한 발자국 내딛는 배우“가 자신의 최종 목표라고 했다. 이런 관점에서 ‘거미집’은 그가 두 팔 벌려 환영한 작품이기도 하다.
“칸 국제영화제, 공포, 어두움 등 ‘거미집’에 대한 선입견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것만 거둬내면 새로운 영화에 대한 반가움이 크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조용한 가족’을 찍을 때 ‘이런 거 찍으면 안 돼’라고 말하는 분도 계셨거든요. 그런데 공개 후 서울 관객만 38만명을 동원했어요. 관객들이 새로운 걸 원하고 있다는 걸 알았죠. 늘 봐왔던 것이 아니라 생경하고 생소할 수 있지만 이런 새로움이 영화의 힘이고 에너지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