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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 욕구가 높은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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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에는 의외로

근면성실하고 성공적인 커리어를 유지 중인 분들이 많이 찾아오십니다.

이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명확한 공통점이 하나 보이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의 삶을 통제하려고 하는 욕구가 매우 강하다는 거예요.

예상치 못한 변수들을 줄이고,
불편할 수 있는 상황을 최대한 제거함으로써

보다 안정적인 삶을 조성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그래서 더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더 많은 상황을 관리하려 하고,
조금의 변수도 허용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통제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이 신경 쓰이고 힘이 부치기 시작하는 겁니다.

새장 속의 새

진시황은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의 축조를 지시했다. 그 의도는 분명 안전을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이 길어질수록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켜야 할 구간이 늘어나고, 보수해야 할 구간이 늘어나면서, 결국엔, 이 거대한 성을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자원을 계속 투입해야 하는 구조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구도는 비단 공성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에요.

통제의 본질이 이렇습니다.

하나를 통제하기 시작하면, 

그 통제를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것들을 추가로 통제해야만 하죠.

그렇게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삶을 통제하는 사람이 아니라,

통제를 유지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나와 통제 사이에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랄까?

통제 욕구가 강한 사람들은 일이든 인간관계든 모든 걸 자신의 통제 아래 둬야지만 비로소 안정감을 느낀다. 즉, 통제 욕구의 발현은 불안감(불편감)을 최대한 제거하기 위한 의도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이들이 항상 하는 생각이 있다. “내가 이만큼 통제하고 있으니까, 이 정도로 괜찮은 거야.” 이들에게 통제는 불안을 없앨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의 뇌는 경험을 통해 일관적인 해석과 평가를 만들어 냅니다.

가령, 뭔가를 통제함으로써 기분이 안정되었던 경험이 누적될수록,

우리 뇌에서는 이러한 메세지가 반복적으로 학습됩니다.

“이번에도 통제했기 때문에 안전할 수 있었다.

즉, 통제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이 믿음이 쌓일수록,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것들을 통제해야만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 돼요.

결국, 통제는 불안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안을 계속해서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죠.

“통제하지 않으면 위험해. 

불안이 싫다면, 너는 항상 통제에 만전을 기해야만 해.”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뇌는 우리의 안전을 볼모로 삼아, 계속해서 통제를 강요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볼 때 새장 속의 새는 갇혀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작 새는 울타리 속에서 보호받고 있다고 느낄 지도 모른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삶을 통제함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다고 믿지만, 통제 경험이 쌓일수록 뇌는 통제 없이는 안전하지 않다고 학습한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를 통제라는 새장 속에 가두게 된다.

그렇다면, 어떡해야 새장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앞의 내용을 다시 한 번 복기해 봅시다.

“우리의 뇌는 경험을 통해 일관적인 해석과 평가를 만들어 낸다.”

통제할 수 있는 건 어차피 한정돼 있고,

통제할 수 없는 일은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벌어지게 돼 있어.

그러니, 이제 그만 통제 욕구를 내려 놓자.

“새장 속이나 밖이나 결국 도찐개찐인 것을…”

이렇게 통제 없이도 괜찮다는 것을 조금씩 경험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내면에서 하나의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동안 통제를 유지하는데 쓰이던 막대한 에너지가 세이브되기 시작하는 거죠.

무너지지 않으려고 버티는데만 쓰이던 힘이

이제야 비로소 내가 진짜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랄까?

우리는 항상 쉽게 지치는 이유를 에너지가 없어서라고 탓하지만,

어쩌면 에너지는 부족했던 게 아니라,

불필요한 곳에 너무 많이 쓰이고 있었던 걸 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통제를 내려놓으면 곧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무너지는 것은 삶이 아니라, 우리가 붙잡고 있던 “착각”일지도 모른다. 통제는 우리를 지켜주는 성채가 아니라, 우리가 계속 붙잡고 있어야만 하는 새장일 뿐이다. 결국, 더 나은 삶은 더 많은 것을 통제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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