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이 본인 똥고집 하나로 200명 수장시킨 어이없는 일
때는 1804년 5월, 나폴레옹은 원로원결의에 따라 프랑스의 황제로 즉위하게 된다.
다만 위 짤과 같은 대관식은 12월에 하긴 함.
그로부터 2개월 뒤인 7월, 나폴레옹은 볼로뉴 해안가를 순시하고 있었다.
당시 나폴레옹이 고민하고 있던 문제는 바로 ‘영국’
아미앵 조약으로 발생헜던 프랑스와 영국의 휴전이 끊겼는데, 영국은 자체 군사력도 있지만 뛰어난 신용과 막대한 자금으로 끊임없이 다른 나라들에게 지원금을 뿌려서 대 프랑스 동맹을 유지시킬 수 있는 숙주 같은 존재였음.
그러니 근원을 뿌리채 뽑으려면 결국 영국을 정복해야 하는데… 영국은 배 타고 가야 하는 ‘섬나라.’
어떻게 프랑스 대육군을 섬나라에 떨굴 수 있는 방법이 없나 고심하던 시기였음.
(결과적으로 이 문제는 끝까지 답을 못 찾음)
근데 문제는 나폴레옹은 해군에 대해선 쥐뿔도 몰랐다는거
나폴레옹 재단 연구서
해군이 심각하게 쇠락한 상태였음에도 보나파르트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끊어 버리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대육군(Grande Armée)’은 피카르디에 집결했고, 모든 노력은 1798년과 1801년에 편성했던 선단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소형 함대를 건설하는 데 집중되었다. 이 선단의 지휘와 건조를 각각 책임진 브뤼(Bruix)와 기술자 튀피니에(Tupinier)의 추진 아래, 사업은 대규모로 확대되었다.
대서양 연안의 항구들에서 네덜란드의 항구들에 이르기까지 수백 척의 평저선이 건조되기 시작했다. 내륙의 하천에도 조선소가 설치되어 센강과 루아르강 연안은 물론, 파리와 멀리 콜마르에서도 선박을 건조했다.
1805년에 이르러 2,000척이 넘는 선박으로 구성된 이 선단에는 해안에 쉽게 접안할 수 있도록 설계된 다양한 선박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길이 35미터에 병사 200명을 수송할 수 있는 프람선(prame), 병력과 장비 수송을 위한 길이 24미터의 포함(chaloupe-canonnière), 60명을 태울 수 있는 길이 18미터의 평저선(péniche) 등이었다. 이러한 선박들은 모두 18파운드에서 36파운드에 이르는 대구경 포를 한 문 이상 탑재했으며, 돛이나 노를 이용해 움직였다.
조직과 규율 역시 육군식이었다. 상륙선단은 16개 사단으로 편성되었고, 이 사단들은 다시 군단으로 묶였다.
정규 함대의 지원 없이 수행하도록 구상된 영국 상륙 작전은 육군 지휘관들의 관점에서 볼 때 거대한 강을 건너는 도하 작전과 다름없었다. 이러한 발상은 1940년 폰 만슈타인과 같은 일부 독일 장군들에게서도 다시 나타나게 된다.
…1803년 7월 21일에 수립된 계획에 따르면 상륙선단은 정규 해군의 지원 없이 독자적으로 행동해야 했다. 불로뉴, 칼레, 에타플, 앙블퇴즈의 항구에서 출발한 선단은 기습적으로 영국해협을 횡단할 예정이었다. 작전은 밤에, 악천후가 잦은 계절에 수행하며, 필요하다면 노를 저어서라도 해협을 건너기로 했다.
불가피한 경우에는 선박에 탑재된 포병 화력을 이용해 영국의 해상 감시 전력 사이로 돌파로를 개척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실제로 상륙선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려스러운 약점들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작전을 수행할 수단으로서 상륙선단의 성능은 유난히 형편없었던 것이다.
나폴레옹은 처음에 해군도 육군식으로 편제하고,
상륙전단을 해군 도움 없이 운용하려고 했음.
영국해협 뭐 얼마나 크다고 걍 강 건너는 느낌으로 슥 가면 된다 이런 느낌.
영국 해군에게 들키면? 안들키게 기습적으로 하면 됨.
밤중이나 비가 내리는 악천후 속에서 몰래 노저어서 가면 된다는 거.
그냥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고
위험하기도 위험하고 애초에 대군이 해안에서 쪽배에 타고 나가는것만 이렇게 되는게 아니라 며칠이 걸림.
아무튼 그런 나폴레옹은 볼로뉴 해안의 해군을 둘러보다가
사열 좋아하는 윗분들 답게 “한번 우리 군대 위풍당당한 모습 사열이나 해서 보자” 해서 육군 정렬시킬듯 가볍게 사열하라고 함.
안전하게 정박해있던 배들이 사열을 하려면 해안가에서 좀 나간 항구 밖 먼 바다에 집결해야함.
시간이 걸리니까 나폴레옹은 사열 명령 내려놓고 아침 승마 한번 조지고 옴.
그런데 돌아와서 깜짝 놀랐는데, 사열하라고 명령해놓은 해군이 꿈쩍도 안하고 있던거.
당시 해군을 담당하고 있던 사람은 브뤼 제독이라는 장군.
브뤼는 나폴레옹의 지시를 듣고 말도 안된다고 하면서 오늘 사열은 없다고 해서 배는 한척도 안 움직이게 됨.
돌아온 나폴레옹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서 두 번이나 더듬거리며 물어봄.
“왜 안움직였다고?”
“브뤼 제독이 움직이지 말라고 했답니다.”
“그러니까 왜 사열을 안했다고?”
“브뤼 제독이 움직이지 말라고 했답니다.”
“그 색휘 당장 데려와!”
그렇게 불러놓고도 씩씩 거리다가 도저히 분이 안풀리는지 제독이 늦는다고 생각해서 직접 밖으로 나가 오던 중엔 제독과 만남.
“야 이 색휘야, 왜 내 명령에 복종 안하냐?”
“페하. 지금 눈으로 보십시오. 폭풍우가 오고 있습니다. 제게 보이는만큼 폐하에게도 분명히 보이고 계십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색뀍야?”
“그토록 많은 용감한 병사들의 목숨을 날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내가 임마 왜 명령에 복종 안했는지 물어봤지 폭풍우 오냐고 물어봤냐? 폭풍우 와서 다 죽어도 내 책임이니까 넌 명령이나 똑바로 들어라.”
“못합니다.”
“이 건방진 새래끼가!”
(때리려고 채찍 꺼냄)
“폐하, 조심하십시오!”
(손을 칼에 얹고 꺼낼 태세 보임)
황제가 장군을 채찍으로 후려칠려고 하고 장군이 칼 꺼낼 태세 꺼내는 상황 되니까
다들 놀라서 아무것도 못하고 쳐다만 봄.
나폴레옹이 한참 노려보다가 채찍 내던지고, 그러자 브뤼 제독도 검 손잡이에서 손을 땜.
“당신, 일단 나중에 지시할테니까 24시간 앞에 내 눈앞에서 꺼져. 네덜란드로 가버려. 이 쓰애이끼 해임하고 마공 소장 데려와.”
마공(Charles Magon de Médine). 나중에 프랑스 해군 이끌고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영국의 넬슨과 싸우다가 패배하고 전사함.
“부르셨습니까?”
“지금 바로 당장 내 명령대로 해!”
앞에서 본게 있는데 마공은 당연히 바로 사열 준비에 나섬.
문제는 브뤼 말대로 진짜로 폭풍우가 오고 있고, 그게 사람들 눈에도 똑똑히 보였다는거.
나폴레옹의 시종이었던 콩스탕의 회고에 따르면 첫번째 준비가 끝나기도 전에 하늘에 검은 구름에 다 가려졌고, 천둥번개가 미친듯이 치고, 바람이 폭풍처럼 변해서 해안을 덮쳤다고 함.
상식적으로 나폴레옹이 아무리 해군을 몰라도 정신지체아도 아니고 여기까지 오면 아 이거 좆된거 같은데 라는거 모를 수가 없음.
문제는 본인이 앞에서 지른게 있어서,
나폴레옹도 “그만해라” 라는 말 못하고 초조하게 해안가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지켜보고만 있었음.
그러다가 결국은 빈 배도 아니고 병사들이 꽉꽉 찬 배 20여척이 한번에 걸레조각마냥 부서지면서 해안으로 떠밀려옴.
바람은 미친듯이 불고 폭풍은 엄청나고 천둥벼락 치는 가운데
병사들은 박살나는 배와 파도속에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치고
해안가의 사람들은 그거 보면서 비명 지르는 지옥도가 됨.
상황이 이렇게되자 나폴레옹도 눈돌아가서 구명정 찾아서 구하러 가겠다고 퍼포먼스를 함.
당연히 주변사람들이 다 붙들고 안된다고 막는데 “나를 제발 내버려둬! 저 사람들 구해야해!” 하고 소리침.
그러다가 파도 한번 크게 와서 구명정 뒤집혀지고 나폴레옹 포함한 사람들 나가떨어지기까지함.
퍼포먼스가 효과가 없진 않아서 어떻게든 구하겠다고 옆에 사람들이나 군인들이 달려나가서 겨우 몇명은 구하긴 함.
그렇지만 구할 수 있던건 일부였고, 다음날 아침 최소 200명 이상이 해안가에 시체로 떠밀려왔다고함.
너무 어이없는 일화라 개구라 같은데 나폴레옹의 옆에 항상 붙어 있던 시종 콩스탕이 증언해서 회고록에 남아있는 일화.
마지막 단락에 따르면 상황이 너무 어이없어서 분위기 씹창나고 공개항의시위까지 나오려고 하는데,
나폴레옹이 보낸 요원들이 볼로뉴 시내에 가서 사람들에게 돈 좀 뿌리면서 분위기 좀 누그러뜨리게 잠재웠다고 함.
여기서 대담할 정도로 나폴레옹과 대치한 브뤼는 얼마 안 있어 결핵으로 죽어서 나중에 다른 문제가 생기진 않음.
이 사건 직후에 나폴레옹은 부인인 조제핀에게 편지를 보냄.
“부인이자 사랑하는 아내에게,
그대와 떨어져 지낸 나흘 동안 나는 거의 끊임없이 말을 타거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건강이 조금이라도 나빠지지는 않았소.
마레 씨가 내게 전하기를, 그대는 월요일에 출발할 예정이라고 하였소. 짧은 구간씩 나누어 여행한다면 지나치게 피로해지지 않고도 온천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오.
지난밤 바람이 강해져 폭풍으로 변했소. 정박지에 있던 우리 포함 한 척이 닻이 끌려가면서 불로뉴에서 한 리외가량 떨어진 암초에 부딪혔소.
처음에는 모든 것이 끝장났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결국 그들 모두를 구해 낼 수 있었소.
그 광경은 장엄하면서도 끔찍했소.
일정한 간격으로 울려 퍼지는 구조 요청 포성, 해변을 따라 곳곳에 피워 놓은 불, 사납게 격동하는 바다.
우리는 그 불행한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죽어 가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아야만 하는 것인지 걱정하면서 밤을 지새웠소.
영혼은 영원과 밤, 그리고 대양을 마주하고 있었소.
새벽 5시가 되자 모든 상황이 진정되었고, 모든 사람이 구조되었소.
나는 이 모든 일이 마치 낭만적이고 영웅적인 꿈이었으며, 오직 나 혼자만이 그 모든 일을 겪은 것 같은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었소.
그러나 너무나 피곤한 데다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으므로, 잠을 자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소.”
조제핀에겐 구체적인 일 전혀 이야기 안하고
폭풍이 왔는데 사람 다 구했다,
한바탕 낭만적이고 영웅적인 꿈을 겪은 기분으로 잤다 이렇게 편지를 씀.
그렇지만 옆에서 보좌하던 술트는 전쟁장관 베르티에에게 공식적인 보고를 해야 했는데
브뤼제독과 황제의 언쟁 같은거 이야기 안하고 바람이 너무 많이 불었다,
대충 황제께서 친히 해안에 머물러 영웅적으로 구조활동에 나섰다 이런 소리 덧붙이면서도
못해도 배 8척은 박살났다, 적어도 한 50명은 죽은것 같다고 씀.
이걸 팩트로 보건 혹은 회고록에 비해 좀 더 공식문건에건 가감을 해서 줄였던
최소로 잡아도 50명에서 200명 가량이 진짜 개어이없이 물귀신이 된 어처구니 없는 사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