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푸드] “강력한 미식 소프트파워”…‘미식 한류’로 부상하는 한식
[리얼푸드=육성연 기자] “오이는 빼고, 소스는 랜치, 고기는 미디엄, 달걀은 써니사이드업으로 주세요.”
“여기 대표 메뉴 하나 주세요.”
메뉴 주문 시 서구권과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조적 모습이다. 서구에서는 샌드위치전문점 써브웨이에서 재료를 고르듯, 자신만의 맞춤형 주문을 선호하는 이들이 많다. 반면 한국인은 하나의 완성된 대표 메뉴로 음식점을 평가하는 성향이 강하다. 개인주의보다 공동체적 성격, 한 가지 풍미보다 다양한 맛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러한 특성에 최근 전 세계에서는 ‘미식 한류’가 부상하는 중이다.
이제 한식은 단순한 인지도 향상을 넘어, 프랑스 요리처럼 미식의 수준에서 주목받고 있다.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몽드(2025)는 “미식 한류가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외신들은 고급 한식당의 미식 요리도 조명하고 있다. 미국 CNN은 지난 7월 미쉐린 3스타의 ‘밍글스’를 통해 한식의 글로벌 미식 위상을 다뤘다. 뉴욕타임스는 뉴욕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돼지곰탕전문점 ‘옥동식’을 극찬한 데 이어, 지난 5월에는 제주 씨간장을 사용하는 한식당 ‘메주(Meju)’를 ‘2026년 뉴욕 100대 레스토랑’ 중 4위로 선정했다.
송미화 한식진흥원 실장은 “미식 한류가 주목받는 것은 한식 고유의 미식 가치가 세계가 주목하는 식문화 방향과 맞닿았기 때문”이라며 “발효음식이 만들어내는 건강하고 복합적인 풍미와 제철·지역 식재료를 활용하는 특징이 글로벌 미식 트렌드와 부합된다”고 말했다.
영국 식품업계 전문지 스페셜리티푸드도 지난 6월 “왜 우리는 한식을 갈망할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영국에 불어닥친 미식 한류를 조명했다. 매체는 “한식이 발효 문화와 대담하면서 흥미로운 비주얼을 가진다”며 특히 “달콤새콤함처럼 여러 맛이 어우러진 풍미는 서구인이 중독적으로 한식을 찾게 만든다”고 분석했다.
실제 한식은 ‘맛의 조화’가 중요한 식문화다. 다양한 맛이 정교하게 균형 잡힌 미식을 추구한다. 반면 서구 대중 음식은 한 가지 주된 풍미를 강하게 부각하는 방식이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크림소스 파스타에 치즈 가루와 베이컨, 반숙 노른자 등을 더해 고소하고 농후한 풍미를 끌어 올린다. 담백한 칼국수 요리에 매콤한 김치를 곁들이는 한식과는 다르다.
맛의 조화와 함께 ‘공동체 문화’가 반영된 것도 ‘미식 한류’가 주목받는 한식의 특징이다. 더불어 사는 가치와 나눔의 문화가 담겨 있다. 한국식생활문화학회지(2004)의 경희대학교 식품영양학과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김장과 장 담그기에는 농경사회의 상호부조 전통이, 반찬을 가운데 두고 나눠 먹는 밥상에는 공동체적 식사 방식이 남아 있다.
이는 메뉴 선택 시 한국인이 자주 묻는 말에서도 엿볼 수 있다. 메뉴판을 보며 “너 뭐 먹을 거야?”라는 질문은 서양인이라면 거의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인은 상대가 어떤 메뉴를 먹느냐에 따라 내 메뉴 선택이 달라진다. 음식을 나눠 먹을 때 어울리는 ‘음식 조합’을 찾기 위해서다. 또는 상대방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 음식 가격이나 스타일을 고려할 수도 있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서구 밥상과 다르게, 한국의 밥상에는 공동체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가 담겨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2022)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미식 소프트파워(soft power·매력과 설득으로 영향을 미치는 힘)’에서 가장 탁월한 국가는 한국”이라고 짚었다. K-푸드는 한류의 부수적 현상이 아니라, 국가 이미지와 경제적 영향력을 넓히는 소프트파워의 핵심 축이라는 평이다.
전문가들은 음식이 현대 시대에 가장 강력한 소프트파워 중 하나라고 손꼽는다. 음식은 한 번 익숙해지면 평생에 걸쳐 소비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K-팝 그룹과 한 편의 드라마, 한 개의 화장품 소비에서 그치는 것과 다른 속성이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한류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한식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송미화 실장은 “매일 먹는 음식은 다른 문화콘텐츠와 구분된다”며 “한식이 일상에서 자리를 잡으면 반복적으로 소비할 수 있어 그 영향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더욱이 “한식에는 한국의 역사와 지역, 계절 등 고유한 정체성과 가치가 담겨 있기 때문에 중요한 소프트파워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