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의 주주총회가 확 달라졌다. KT는 소유분산기업의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탓에 최고경영자(CEO)가 외풍에 의해 교체되는 일이 흔하고 이에 따라 사업과 인사 관련 잡음도 많아 주총장에 고성과 몸싸움이 없으면 어색할 정도였다.
그러나 올해는 역대급으로 조용해졌고 무난하게 마무리됐다. 지난해 8월 말 임시 주총을 통해 선임된 김영섭 신임 대표의 노련한 주총 진행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김 대표는 28일 서울 서초구 KT연구개발센터에서 제42기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하고 △제42기 재무제표 △정관 일부 변경 △이사 보수한도 등 총 3개 의안을 상정해 원안대로 의결했다.
이날 주총에서도 일부 주주들의 항의성 발언들이 나왔다. 이석채 회장 시절 르완다 지역 투자로 인해 발생하는 누적적자와 관련한 질의가 포문을 열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현재는 대규모 손실이 아니고, 정리 과정을 밟고 있다”고 밝혔다.
퇴직 임원이 자문역으로 남아 사무실과 차량 제공을 받는 것이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대표는 “자문역 제도는 국내 기업 대부분이 퇴직 임원의 지식을 활용하기 위해 활용하는 것”이라면서도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것은 고치고 있는 과정”이라고 답했다.
KT의 시장 경쟁력이 하락하고 있다는 발언에도 적극 해명했다. 그는 “통신업 전부가 그런 상황”이라며 “사업 본질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KT는 반전하기 위해 통신 기반에 IT(정보통신)와 AI(인공지능)를 더해 AICT 기업으로 빠르게 성장해 나가겠다”고 했다.
검찰과 정치권에서 ‘낙하산’으로 임원들이 오면서 내부 인재가 배제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강하게 반박했다. 김 대표는 “KT에 축적되지 않은 분야의 인재를 영입한 것”이라며 “양심에 손을 얹고 검찰과 정치권이라는 이유로 영입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KT를 상대로 자주 지적되는 사안들에 대해 얼버무리거나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답하자 주총 참석자들 사이에선 “KT 주총은 처음일텐데 진행을 잘하네”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
특히 KT에서 27년간 일했다는 70대 여성 노인이 잔뜩 격앙된 목소리로 주주의견을 피력했을 때가 이번 주총의 하이라이트였다. 김 대표가 “말씀을 좀 살살해주세요”라고 다독였을 때 해당 주주의 격앙된 목소리가 극적으로 차분해지면서다. 김 대표는 그러면서 “KT인의 자부심으로 살고 계신 점과 말씀하신 내용들을 기억에 담아가겠다”고 말하며 주총 분위기를 바꿨다.
김 대표는 이어 대규모 구조조정에 우려된다는 목소리에 대해 단호하게 답하면서 마침내 ‘기술’을 선보였다.
그는 “제가 저녁 자리에서 말한 것도 아니고 취임 직후 6만명이 넘는 임직원 앞에서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다’고 공식적으로 말했는데 왜 안 믿고 왜 불안해하는지 모르겠다”며 “의안과 관계없는 말씀이나 지나간 의안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고 있는데, 주주 여러분이 박수로 의안을 승인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제안했다.
김 대표는 주주들의 목소리를 듣고 답변을 충실히 하면서 마무리는 박수를 통해 찬성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3개 의안을 모두 통과시켰다.
KT는 이번 재무제표 승인에 따라 주당 배당금은 1960원으로 확정하고 내달 26일 지급할 예정이다. 또한 정관 일부 변경 승인에 따라 올해부터 분기배당을 도입하고, 이사회에서 결산 배당기준일을 결의할 수 있도록 배당 절차를 개선했다.
김 대표는 “혁신 없는 회사는 성장하지 않고, 성장하지 않는 회사는 많은 결실을 맺을 수 없다”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KT는 통신회사라는 한계를 넘어 AICT(인공지능과 정보통신기술) 기업으로 한 단계 도약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