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_돈1 /사진=임종철 |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사이버보안 ‘디지털플랫폼정부’ 구현을 선언하고 디지털 전환이 화두가 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핵심 인프라인 사이버 보안에 투자하는 전용 정책펀드는 전무한 실정이다. 정책자원 지원이 부족하니 민간자금의 유입도 미미하고 국내 사이버보안 기업들의 자금조달도 어려워 혁신기술 개발과 신시장 개척이 난항을 겪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재 중소벤처기업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부처들이 운용하는 정책펀드는 23개에 이르고 이들을 통한 운용 자금의 규모는 1조6200억원에 이른다. 이들 자금은 ‘모태펀드’라는 이름 하에 각 소관부처별 육성대상 산업의 지원에 활용된다.
그러나 여기에 ‘사이버 보안’ 또는 ‘정보보호’이라는 이름을 단 펀드는 단 1건도 없다. 그러다보니 사이버 보안 산업을 대상으로 한 민간 투자금의 유입도 미미하다. 지난해 5월 과기정통부, 벤처기업협회가 발표한 ‘2022년 ICT(정보통신기술) 분야 벤처캐피탈 투자 동향’ 자료에 따르면 ICT 업종 전체 투자자금(3조1438억원) 중 패키지·게임 소프트웨어에 투자된 자금이 2조152억원에 달했고 정보통신·방송(7005억원) 전자부품(3177억원) 등 분야에도 주로 자금이 투자됐다.
/그래픽=김현정 디자인기자 |
반면 사이버 보안 산업에 대한 투자는 찾아볼 수 없다. 게임이나 아웃소싱, 의료, 모빌리티, 자율주행 등 유행을 타는 분야에만 자금이 몰릴 뿐 사이버 보안은 투자 대상에서 소외돼 있다는 얘기다.
정책자금에서의 소외와 민간 투자의 외면으로 사이버 보안 산업의 영세성은 심화돼 왔다. 국내 정보보안 669개 기업 중 2005년 이전, 즉 설립 이후 현재까지 업력이 18년 이상이 되는 기업의 비중은 50.8%에 이른다. 그런데 이중 자본금 10억원 미만 기업 비중은 73.5%에 이르고 50억원 미만 중소기업까지 더한 비중은 93.2%에 달한다. 정보보안 기업의 90% 가량이 비상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정보보안 산업은 비상장 영세 중소기업 위주로 구성된 업종인 셈이다.
이들 669개사의 2021년 한 해 매출은 4조5497억원, 같은 해 글로벌 정보보안 시장 전체 규모(약 177조원)의 2.6% 수준에 그친다. 미국(40.9%) 중국(7.5%) 영국(6.5%) 일본(5.4%) 독일(5%) 등에 비해 크게 뒤쳐지는 수준이다. 1개사당 평균 매출은 불과 68억원, 같은 해 코스피 상장사 595개사의 연결매출 평균치(3조2249억원)는 물론이고 코스닥 상장사 1048개사의 매출 평균치(1762억원)에 크게 못 미친다.
실제 올들어 생성형 AI 등 출현에 따른 기술 고도화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지만 국내 정보보안 기업 10곳 중 7곳 가량이 자금조달 어려움으로 인해 기술개발을 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그래픽=김현정 디자인기자 |
지난해 9월 발간된 정보보호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정보보안 기업 669개사 대상 조사에서 ‘기술 개발시 가장 큰 애로사항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자금조달’이라고 답한 이들이 40.8%로 가장 많았고 △’인력확보 및 유지'(28.7%) △’기술정보 부족 및 획득 곤란'(13.8%) △’신기술의 짧은 수명주기'(12.2%) △’연구설비 기자재 부족'(4.4%) 등 답변이 뒤를 이었다.
이 중 ‘인력확보 및 유지’ 항목도 결국은 자금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데서 비롯된 문제다. 사실상 ‘자금조달 어려움’ 때문에 기술을 개발하기 어렵다고 답한 기업의 비중이 69.5%에 이른다는 얘기다.
이에 업계에서는 사이버 보안 전용 정책펀드의 조성을 호소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영세한 규모로는 AI 등 딥테크를 활용한 보안 기술 선도화 경쟁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책펀드의 투자가 이뤄진다는 것은 정부가 해당 산업을 육성·지원하겠다는 의지가 투영된 것인 만큼 민간에만 의존했을 때에 비해 훨씬 큰 규모의 자금이 유입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