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라는 왜 사랑의 도시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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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한(Shah Jahan)은 무굴 제국의 5대 황제(1628~1658)로, 무굴 제국의 황금기를 이끈 군주다. 어릴 적부터 건축에 있어서 뛰어난 두각을 나타냈으며, 아그라의 아그라 포트(Agra Fort), 델리의 붉은 요새(Red Fort), 자마 마스지드(Jama Masjid) 등 많은 역사 유산을 남겼다. 그의 건축물 중 가장 유명하고 또 세계의 이목을 끄는 것이 있으니, 바로 아그라의 타지마할이다.

타지마할은 언젠가 한 번쯤 가보고 싶은 세계의 명소, 순백색의 아름다운 건물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타지마할은) 여타 건축물처럼 평범한 건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돌로 빚어낸 황제(샤 자한)의 사랑과 열정

Edwin Arnold

영국의 시인 에드윈 아놀드(Edwin Arnold)는 위와 같이 타지마할의 아름다움과 역사에 대해 극찬했다.

영원한 사랑을 상징하고, 세계적 예술가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는 타지마할.

그 내막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타지마할에 얽힌 무굴제국의 황제 샤 자한과 그의 아내 뭄타즈 마할(Mumtāz Mahal)의 사랑 이야기를 들어볼 것을 추천한다.

사랑의 도시 아그라에 얽힌 천년의 사랑 이야기를 만나보자.

Chapter 1

샤 자한의 사랑



타지마할에는 무슬림 지도자 샤 자한과 그의 두 번째 아내 뭄타즈 마할의 사랑이 담겨있다. 뭄타즈 마할과 첫눈에 반한 샤 자한은 15세였던 1607년 곧바로 정혼을 하고 그로부터 5년 후인 1612년 혼인했다. 뭄타즈 마할의 원래 이름은 아르주만드 바누 베굼(Arjumand Banu Begum)이었으나, 샤자한은 그녀에게 ‘왕국의 보석’이라는 뜻을 가진 뭄타즈 마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왕국의 보석이라니, 아내에게 붙인 이름부터 그의 절절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당시 무굴 제국의 황제들은 정치적 안정을 위하여 아내를 여럿 두는 것이 관행이었다. 실제로 샤 자한도 총 9명의 아내를 두었으나, 다른 아내들은 정치적 목적의 대외적인 관계였을 뿐이라고 한다. 샤 자한의 관심과 애정은 오직 뭄타즈 마할에게만 집중되었고, 그녀를 전장까지 동행할 정도로 극진한 사랑을 표현했다.

뭄타즈 마할은 1631년 샤 자한과 20년간의 결혼생활 끝에 14번째 아이를 낳다가 사망한다. 샤 자한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걸맞은 웅장한 무덤을 지어주리라 다짐하였고, 그 이듬해인 1632년 착공했다. 무덤 축조에는 2만 명의 인부가 동원됐다. 22년이라는 장기간의 공사 끝에 야무나 강변에 지어진 것이 바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 타지마할이다. 건물 주위로는 17만㎡의 아름다운 정원이 조성되었다. 그 사랑의 크기만큼 전대미문의 규모를 자랑하는 이슬람 건축의 걸작이 탄생한 것이다.

Chapter 2

샤 자한의 생애

샤 자한은 무굴제국의 황금기를 통치한 군주로 꼽힌다. 하지만 타지마할 축조에 천문학적인 국세와 노동력을 투입하면서 그의 위세가 흔들리게 된다. 이후 1657년 샤 자한이 병고에 시달리면서 아들들 사이에 권력 다툼이 일어났다. 1958년 삼남인 아우람제브(Aurangzeb)가 권력 다툼에서 승리하면서, 샤 자한은 아그라 요새 탑에 감금된다. 그가 사망할 때까지 8년간 이어진 유배 생활 동안, 그의 유일한 위안은 탑 창밖으로 보이는 뭄타즈 마할의 묘뿐이었다.

외로운 유배 생활 끝에 샤 자한은 1666년 74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사망 후 그의 시신은 야무나 강을 통해 타지마할까지 운구되어 아내 곁에 나란히 묻히게 된다. 죽음을 맞이한 후에야 비로소 그리워했던 아내와 함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항간에는 샤 자한이 본인의 무덤으로 검은 타지마할을 지으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검은 타지마할은 타지마할의 그림자처럼, 야무나 강 건너 타지마할과 마주하고 지어질 계획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권을 빼앗기고 계획이 무산되면서 현재는 그 터인 메탑 박(Mehtab Bagh)만이 남아있다고 한다.

Chapter 3

타지마할의 건축미

‘백색의 보석’, ‘동서양을 통틀어 하나뿐인 하늘에서 내려온 예술품’ 등 타지마할에는 다양한 찬사와 수식어가 붙는다. 멀리서 본 타지마할은 순백색의 건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세밀한 조각, 장식, 보석들이 하얀 대리석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샤 자한은 아름다운 궁전을 짓기 위하여 미얀마와 오스만, 이집트에서까지 대리석, 벽옥, 수정, 진주, 에메랄드, 터키옥, 사파이어, 청금석 등 값비싼 자재와 장식재들을 수송했다. 또한, 인도 국내는 물론 유럽, 중국 등 각 나라의 최고 기술자와 예술가를 초청했다. 타지마할 건설에 들어간 비용은 3200만 루피로 알려져 있는데, 오늘날로 치면 약 8억 달러, 한화 약 9000억 대의 자금을 투자된 것이다. 이러한 물질적, 인적 투자 끝에, 화려한 건축미를 뽐내는 웅장한 규모의 묘역이 탄생했다.

정교한 대칭, 조형미와 주변 경관과의 조화 등 아름다운 건축미를 자랑하는 타지마할은 인도 이슬람 예술작품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꼽힌다. 그 아름다움과 애절한 역사로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2008년 유네스코가 발표한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지정되었다.

이러한 아름다움을 아내에게만 선물하고 싶었던 샤 자한은 건설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손목을 잘라버렸다. 이것은 타지마할과 같은 혹은 그보다 더 아름다운 건축물이 만들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처사라고 한다.

Chapter 4

타지마할에 대한 찬사

현대에 봐도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타지마할인데, 수백 년 전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보다 더 큰 감동과 위엄을 자랑했을 것이다.

이에 그 아름다움에 감탄한 전 세계인들이 남긴 기록이 전해져 내려온다.

빌 클린턴(Bill Clinton)은 아래와 같은 말로, 타지마할을 보고 북받친 감정을 묘사한 바 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타지마할을 보고 좋아하는 사람과 타지마할을 보지 않고 좋아하는 사람. 나는 사람들이 나의 타지마할을 보고 사랑에 빠지기를 바란다

Bill Clinton

또한, 인도의 시인 겸 철학자 라빈드라나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는 시를 통해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찬사를 남기기도 했다.

어느 날 흘러내린 눈물은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더 맑고 투명하게 빛나리라.

그것이 타지마할이라네.

오, 황제여! 그대는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으로

시간에 마술을 걸려 하였다네.

그대는 경이로운 꽃다발을 짜서

우아하지 않은 주검을 죽음을 모르는 우아함으로 덮어버렸다네.

무덤은 자기 속으로 파묻고 뿌리내리어

먼지로부터 일어나 기억의 외투로

죽음을 부드럽게 덮어주려 한다네.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의 ‘타지마할’

글 = 정윤지 여행+ 인턴기자

검수 = 홍지연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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