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선 수명 깎는 독초 취급하는데… 한국인만 즐겨먹는 ‘이 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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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싹을 틔운 고사리의 모습. / Francesca Leslie-shutterstock.com

봄에 싹을 틔운 고사리의 모습. / Francesca Leslie-shutterstock.com
봄에 싹을 틔운 고사리의 모습. / Francesca Leslie-shutterstock.com

초여름이 되면 들판이나 산자락에 나물을 캐러 가는 사람들이 하나둘 보인다. 취나물이나 다래순처럼 익숙한 나물도 있지만, 이맘때 가장 눈에 많이 띄는 건 고사리다. 줄기를 꺾어 삶은 뒤 말려 두면 사계절 내내 보관이 가능하다. 4월에 꺾은 고사리는 ‘초물고사리’라 불리며, 가장 연하고 맛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5월 하순이 지나면 줄기가 단단해지고 질겨지면서 맛이 떨어진다.

고사리는 비빔밥이나 된장국, 제사 음식에도 자주 쓰인다. 한국에서는 너무 익숙한 재료지만, 뉴질랜드, 영국, 일본 일부 지역에서는 식용으로 인정하지 않거나 아예 금지 식물로 분류되기도 한다. 특히 고사리는 반드시 손질과 조리 과정을 거쳐야 하는 식재료다.

생으로는 절대 먹을 수 없다. 고사리에는 쓴맛과 떫은맛의 원인이 되는 독성 물질이 들어 있으며, 체내에서 비타민 B1을 분해하는 효소도 포함돼 있다. 이런 성분들은 몸에 남으면 해로울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고사리를 조리하지 않고 먹는 건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지난달 23일, 식품안전정보원은 고사리를 안전하게 섭취하는 방법을 공식 발표했다. 고사리에 포함된 독성 성분은 열에 약하고 물에 잘 녹는다. 끓는 물에 5분 이상 데친 뒤, 찬물에 12시간 이상 담가두면 대부분 제거된다. 이때 비타민 B1을 분해하는 효소도 함께 사라진다. 손질이 복잡해 보여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광주시 보건환경연구원의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고사리를 삶은 후 오랫동안 찬물에 담가두고, 중간에 물을 여러 번 갈아주면 독성 성분이 점점 줄어든다. 단순히 데치기만 해서는 부족하다. 연구진은 “5분 이상 가열하면 독성은 점차 줄지만, 그 이후엔 완만하게 감소한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고사리를 삶는 것보다 물에 담가 우려내는 과정이 중요하다. 식품안전정보원은 관련 내용을 카드뉴스로 제작해 배포했다. 생고사리 손질법, 안전한 섭취법, 보관 요령 등이 정리돼 있으며, 식품안전정보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손질만 잘하면 훌륭한 식재료

한국인들 밥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고사리 나물. / Hyung min Choi-shutterstock.com
한국인들 밥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고사리 나물. / Hyung min Choi-shutterstock.com

고사리는 영양 면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칼륨, 마그네슘, 철분, 인 등이 풍부하고 식이섬유도 많아 변비 완화나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열량도 100g당 19kcal 수준으로 낮은 편이다. 칼슘과 단백질도 적지 않아 성장기 어린이나 골다공증이 있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산에서 나는 쇠고기’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동의보감에는 고사리가 차가운 성질을 지닌 식물로 기록돼 있다. 열을 내려주고 이뇨작용을 도와준다고도 나와 있다. 단, 몸이 차가운 체질이라면 고사리를 많이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일반적인 체질의 사람도 과다 섭취하면 복통이나 설사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 적당량만 섭취해야 한다.

이런 특성 덕분에 고사리는 대체 나물보다 선택이 많다. 예를 들어 도라지나 고비는 손질이 더 까다롭고 맛도 강해 부담스러운 반면, 고사리는 손질만 잘하면 대중적인 맛과 향으로 여러 요리에 무난하게 활용된다. 대파나 마늘처럼 알리신이 풍부한 식재료와 함께 조리하면 향도 잡고 영양 조화에도 도움이 된다.

고사리 어떻게 골라야 하고 어떻게 보관해야 할까

고사리 나물 자료사진. / Dr. Victor Wong-shutterstock.com
고사리 나물 자료사진. / Dr. Victor Wong-shutterstock.com

좋은 고사리를 고르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준이 있다. 생고사리는 잎이 펴지지 않고 주먹처럼 감겨 있어야 하며, 줄기는 통통하고 색이 선명한 것이 좋다. 삶은 고사리는 밝은 갈색을 띠고, 줄기가 오동통한 것을 고르는 것이 안전하다. 건고사리는 색이 지나치게 어둡지 않으며, 고사리 특유의 향이 진하게 나는 것이 신선한 제품이다.

국산과 중국산을 구별하는 것도 중요하다. 국산 고사리는 줄기가 짧고 윗부분에 잎이 붙어 있으며, 색이 연하고 향이 강하다. 반면 중국산은 줄기가 길고 털이 많으며 향이 약하다. 특히 중국산은 농약 잔류 가능성 때문에 충분히 씻고 삶는 등 손질 과정에 더 신경 써야 한다.

보관 방법도 까다롭다. 데친 고사리는 햇볕에 완전히 말린 뒤 밀폐 용기에 담아 통풍이 잘 되는 그늘진 실온에 보관한다. 짧게 보관할 경우엔 데친 고사리를 물에 담가 냉장고에 넣고 하루 2~3회 물을 갈아줘야 한다. 곰팡이나 이상한 냄새가 나면 즉시 폐기한다.

생고사리가 유통될 때는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채취 직후부터 냉장이 이뤄지지 않거나, 충분히 데치지 않고 판매되는 경우가 있어 소비자가 직접 손질해야 할 때가 많다. 건고사리 역시 유통 과정에서 곰팡이나 이물질이 섞이는 일이 있어 구입 시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지역별 고사리 품질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제주산은 해풍을 맞고 자라 향이 진한 편이며, 강원도 고사리는 산간에서 자라 줄기가 굵고 부드럽다. 지리산 고사리는 재배량이 많고 품질 관리가 잘돼 가정용으로 인기가 높다. 포장 상품을 고를 땐 원산지뿐 아니라 채취 시기, 손질 상태, 건조 방식 등을 확인해야 한다.

요즘은 대형마트나 온라인에서도 고사리 가공품을 쉽게 살 수 있다. 데쳐서 바로 볶을 수 있는 냉장 제품이나, 건조 후 손질이 완료된 포장 제품도 다양하다. 간편하게 쓸 수 있는 만큼, 손질법을 몰라도 먹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어떤 형태든 반드시 데치고 물에 담가 우려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고비와의 혼동을 피해야 한다

일반 고사리 자료사진 . / Hank Asia-shutterstock.com
일반 고사리 자료사진 . / Hank Asia-shutterstock.com

고사리와 고비는 생김새가 비슷해 혼동하기 쉽다. 고사리는 줄기가 하나로 곧게 자라고 털이 거의 없다. 반면 고비는 줄기가 여러 갈래로 나뉘고 솜털이 많으며, 질기고 쓴맛이 더 강하다. 고비는 데치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우려내야 할 독성도 많다. 고사리인 줄 알고 고비를 같은 방식으로 조리하면 제대로 익지 않거나 독성이 남을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고사리를 채취하거나 구입할 때는 이런 차이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직접 산에서 캘 경우 더 조심해야 한다. 생김새가 비슷하다고 같은 나물은 아니다.

이처럼 고사리는 제사 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식재료다. 삼색나물 중 하나로 꼽히고, 산적이나 고기 반찬에도 자주 쓰인다. 명절이나 큰 행사가 아니더라도, 일상 식단에서 흔히 등장하는 나물이다. 하지만 너무 익숙하다 보니 손질이나 조리 과정이 생략되기 쉽고, ‘늘 먹던 거니까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고사리는 반드시 조리법을 따라야 하는 식물이다. 아무리 좋은 식재료도 조리 실패 하나로 독이 될 수 있다. 직접 채취했든, 마트에서 샀든, 포장 제품이든, 똑같이 데치고 우려내는 과정을 거쳐야만 안전하게 먹을 수 있다. 고사리는 맛으로 먹는 나물이 아니라, 손질을 전제로 먹어야 하는 식재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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