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이면 거리마다 노란빛으로 물들어 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나무가 있다. 바로 은행나무다.
은행나무는 벚나무 다음으로 가장 많이 보이는 가로수라서 어디에나 있는 흔한 나무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세계적으로 보면 멸종위기종이다. 인간이 심지 않았다면 지금은 거의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현재 은행나무를 멸종위기 ‘위기(CR)’ 등급에 올려놓고 있다. 전 세계에 남아 있는 개체는 모두 인공적으로 심어진 것이고 야생에서 스스로 자라는 은행나무는 거의 없다.
중국 남서부 일부 지역에서는 몇 그루의 은행나무가 자생한다고 알려졌지만 학계에서는 그마저도 인공적 환경에서 자라난 것일 거라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단풍나무와 함게 가을 대표하는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살아 있는 ‘화석 식물’ 중 하나다. 고생대와 중생대를 지나 지금까지 원형을 거의 유지한 채 살아 있다. 가장 오래된 화석은 약 2억 7천만 년 전 지층에서 발견됐다. 은행나무가 공룡보다 오래된 조상과 함께 존재해왔다는 증거다.
고대 중국에서는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은행나무를 신성한 나무로 여겼다. 사찰이나 궁궐, 무덤 주변에 은행나무를 심은 흔적이 남아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수호신처럼 대했다. 한국·중국·일본에서는 지금도 오래된 절이나 향교를 가면 수백 년 된 은행나무를 볼 수 있다.
은행나무는 단풍나무와 함께 가을을 대표하는 나무다. 잎은 부채처럼 펼쳐져 있고 다른 나무에서 보기 힘든 형태를 가지고 있다. 여름엔 짙은 초록빛을 띠다가 가을이 되면 선명한 노란색으로 물든다. 특히 은행나무 단풍은 낙엽이 떨어진 뒤에도 오랫동안 색을 유지해 풍경을 더 오래 즐길 수 있게 한다.

가을에 열리는 은행 열매는 강한 냄새로도 유명하다. 껍질을 밟거나 만지면 특유의 자극적인 냄새가 난다. 이 냄새는 열매 속의 납산과 황 성분에서 비롯된다. 때문에 수확 시기에 길거리에 떨어진 열매에서 나는 냄새로 인해 거리를 청소하는 이들의 수고가 늘어나기도 하지만 껍질을 제거하고 잘 익힌 은행은 오히려 고소하고 담백하다.
한방에서는 은행을 약재로도 활용해왔다. 열매에는 아미그달린, 단백질, 비타민C 등이 들어 있어 천식이나 기침, 소화불량 등에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단 익히지 않은 생은행은 독성이 강하다. 성인은 하루 7~10알 이상 섭취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은행나무는 병충해에 강하고 공해에도 잘 견뎌 도시 가로수로 많이 심긴다. 뿌리가 깊고 잘 퍼지지 않아 보도블록을 들뜨게 하지 않는 점도 장점이다. 조경수로서도 가치가 높아 공원, 학교, 관공서 등에 널리 식재된다. 봄에 꽃가루를 많이 날리는 수나무는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어 암나무만 골라 심기도 한다.
지구상 유일무이한 단 하나의 종

은행나무는 식물 분류학적으로도 매우 독특하다. 약 30만 종 이상의 식물이 존재하는 지구에서 식물은 10개 정도의 ‘문(門)’으로 나뉜다. 이 중 하나가 ‘은행나무문’인데 이 문에는 ‘은행나무’ 단 하나의 종만 존재한다. 보통 하나의 문에는 수백 종에서 수십만 종까지 포함되지만 은행나무는 예외다. 가까운 조상과 친척들이 모두 멸종하고 혼자만 살아남은 셈이다.
생명력도 강하다.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됐을 당시 반경 수 킬로미터 내 생물들은 거의 전멸했지만 놀랍게도 일부 은행나무는 살아남았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로 알려진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역시 일제강점기 방화에도 불구하고 생존했다.
번식 어려워… 멸종위기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이렇게 강인한 생존력을 갖췄지만 번식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열매 때문이다. 은행나무 열매는 악취가 심하고 독성이 있어 대부분의 동물이 기피한다. 과거에는 공룡이 열매를 먹고 씨앗을 퍼뜨려줬다고 추정되지만 공룡이 사라진 뒤 은행나무 역시 점차 자취를 감췄다.
결국 현재 은행나무는 자생이 거의 불가능해 인간이 심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나무가 됐다. 공생 관계를 맺었던 공룡이 사라지면서 스스로 씨앗을 퍼뜨릴 능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면 은행나무 열매에서 나는 냄새로 많은 이들이 고통을 호소하지만 은행나무는 현재 세계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멸종위기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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