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에 박혀 있던 수상한 빨대의 정체… 깊게 파보니 뜻밖의 생물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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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지렁이 집 자료사진.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되었습니다. / 위키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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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지렁이 집 자료사진.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되었습니다. / 위키푸디

여름철 해안 갯벌에서는 바닥에 수많은 가느다란 관 모양 구조물이 박혀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멀리서 보면 빨대처럼 보이는 이 구조물은 한두 개가 아니라 많게는 수백 개씩 한 구역에 몰려 있다.

3일 유튜브 채널 ‘수상한생선’에 공개된 영상에 따르면, 이 구조물들은 손으로 당기면 쉽게 끊어지지만 땅속 깊숙이 연결돼 있다. 겉보기엔 짧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깊으며, 안쪽에 있는 생물의 본체를 직접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갯벌에 박힌 구조물의 정체

갯지렁이 집 자료사진.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되었습니다. / 위키푸디
갯지렁이 집 자료사진.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되었습니다. / 위키푸디

이 구조물의 정체는 ‘갯지렁이’가 만든 집이다. 갯지렁이 일부는 바닷물에 쓸려가지 않기 위해 땅속 깊숙이 자신만의 거처를 만든다. 흙과 조개껍데기 같은 주변 재료를 몸에서 나오는 끈끈한 분비물로 굳혀 관처럼 세운다.

관 끝은 바깥 공기와 닿은 채로 열려 있고, 몸체는 땅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다. 손으로 잡아당기면 겉부분은 쉽게 부러지지만, 실제 뿌리는 훨씬 아래까지 연결돼 있다. 바닥을 파 내려가면 길게 이어진 관의 끝에 도달할 수 있다.

관 주변에는 흙더미처럼 쌓인 자국도 남아 있다. 이 흔적은 안쪽에서 생물이 실제로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관 안에서 유기물을 걸러낸 뒤 배출한 흔적이 표면 위에 드러나는 것이다.

관 위에 촉수를 펼쳐 둥글게 퍼진 형태로 나오는 종류도 있다. 색과 형태가 산호나 말미잘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지렁이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생물이다. 이런 종류는 물속에서 부유하는 유기물을 촉수로 모아 먹이로 삼는다.

촉수는 관 위로 살짝 드러나 있다가, 바람이나 물의 움직임이 느껴지면 빠르게 몸속으로 숨긴다. 해류를 타고 떠다니는 작은 입자나 찌꺼기를 감지해 먹이로 섭취하고, 다시 안쪽으로 숨는 방식이다.

또 다른 종류는 바닥의 퇴적물을 뒤져 먹이를 찾는다. 몸을 바깥으로 내밀고 주변을 더듬어 남은 찌꺼기나 죽은 생물 조각 등을 모아 관 안으로 끌고 들어간다. 이런 활동은 밤에 활발하게 이뤄진다.

갯벌에 집을 짓고 사는 생물들

갯지렁이 집 자료사진.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되었습니다. / 위키푸디
갯지렁이 집 자료사진.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되었습니다. / 위키푸디

갯지렁이는 우리나라 갯벌 곳곳에 퍼져 있다. 눈으로만 봐서는 종류를 쉽게 구별하기 어렵다. 겉모양이 비슷하고 색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름이 붙은 종들 중에는 관 위에 조개껍데기를 붙이는 것도 있고, 흙만 이용해 만드는 것도 있다.

영상에 나온 구조물은 관 형태가 길고 굵으며, 주변 흙과 밀착돼 있다. 돌 주변을 파낸 관에서는 실제 생물 본체가 나오기도 했다. 얇고 긴 몸에 촉수를 가진 생물로, 바닥에서 유기물을 끌어올려 관 안으로 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생물들은 관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위험을 피하면서도 먹이를 끌어들이기 위해 입구만 살짝 열어두고, 나머지는 땅속에 깊게 숨긴다.

갯벌 생태를 떠받치는 존재

갯지렁이 집 자료사진.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되었습니다. / 위키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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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지렁이가 갯벌에서 하는 일은 단순하지 않다. 땅속을 파고 다니며 쌓인 유기물을 걸러내고, 불필요한 찌꺼기를 제거해준다. 이런 활동 덕분에 갯벌 바닥이 썩지 않고 숨을 쉴 수 있다.

갯벌 표면에 남은 흙더미나 조그마한 배설 흔적은 이들이 지금도 살아 있다는 신호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갯벌을 움직이는 바탕이 되고 있다. 조개, 게, 물고기 같은 해양 생물들도 이런 지렁이의 활동 덕분에 안정된 환경에서 살아간다.

이처럼, 갯벌에서 보이는 관이라는 구조도 단순히 숨는 용도가 아니다. 먹이를 끌어들이고, 주변과 연결되며, 자신만의 공간을 유지하는 수단이다. 한 자리에 정착해 사는 생물들이 만든 땅속 구조물은 그 자체로 작은 생태계다.

지금도 갯벌을 자세히 보면, 바닥에 수없이 박힌 관처럼 생긴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생물의 터전이며, 해안 생태의 일부다. 하나를 뽑는 일이 단순한 장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생태계 일부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갯벌에서 이 구조물을 봤다면, 손대지 않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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