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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한 원석이 힙한 오브제가 되는 과정, 대만 화롄의 석조 공간 4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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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화롄은 자체 채굴은 물론, 전 세계 희귀 원석을 수입해 다듬는 기술력으로 아시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여기서 돌은 건축 자재가 아니다. 화롄 사람들의 일상과 예술 깊숙이 자리 잡은 삶의 재료다. 거친 원석이 세련된 예술과 라이프스타일로 바뀌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거나 예술품을 즐길 수 있는 명소들을 소개한다.

화롄 현립 석조박물관 (花蓮縣石雕博物館, Hualien County Stone Sculpture Museum)

화롄 현립 석조박물관은 1995년 대만 최초의 석조 전문 박물관으로 문을 열었다. 채굴된 돌이 예술가의 손을 거쳐 조형물로 완성되기까지, 화롄의 지질학적 조건과 창작자들의 집념이 한 공간 안에 담겨 있다.

전시의 중심은 2년 주기로 열리는 화롄 국제 석조 예술 축제에서 수집한 전 세계 거장들의 작품들이다. 대리석 특유의 차가운 질감 위에 부드러운 곡선을 새긴 추상 조각들이 눈길을 끈다. 돌의 무게감을 덜어내고 물의 흐름이나 바람의 움직임을 포착한 형태들은 생각보다 꽤 놀랍다. 화롄의 파도와 태평양의 바람이 돌의 결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천천히 들여다보면 관람이 한층 풍성해진다.

야외 광장의 대형 석조물들은 해안 풍경과 어우러지며 볼거리를 더한다. 박물관 한편에는 작업 공구 전시와 제작 과정 설명도 마련돼 있다. 화롄 사람들이 대리석을 다뤄온 방식을 기록한 자료들이다. 길거리 보도블록부터 화장실 세면대까지 대리석이 없는 곳이 없는 화롄에서, 박물관은 그 흔한 소재가 예술이 되는 순간을 붙잡아 둔 공간이다. 익숙한 화강암과는 전혀 다른, 대리석 특유의 반투명한 질감과 다채로운 문양은 화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미학적 즐거움이다.

지오카레 커피 (Giocare義式.手沖咖啡)

화롄의 예술가 부부가 운영하는 지오카레 커피(Giocare義式.手沖咖啡)는 일본 통치 시기 경찰청 관사로 쓰이던 낡은 목조 가옥 앞마당을 개조한 노천 카페다. 남편은 원두를 직접 볶고, 아내는 도자기를 굽는다. 부부의 작업이 고스란히 이 공간 안에 녹아 있다.

투박하게 잘라낸 조각들이 테이블이 되고 의자가 되며 화단의 경계를 나누는 이정표로 쓰인다. 일부러 다듬지 않은 돌의 질감이 화롄의 날것 같은 자연과 잘 어울린다. 커피는 안주인이 직접 빚은 도자기 잔에 담겨 나온다. 손에 닿는 흙의 묵직한 촉감과 눈앞에 펼쳐진 대리석의 미감이 교차하며 화롄이라는 도시의 무게를 은근히 전달한다.

메뉴는 간결하다. 이탈리아식 에스프레소 기반 음료와 정교한 핸드드립 커피가 주를 이룬다. 주인장은 매일 아침 그날의 기온과 습도를 고려해 원두를 선택하고, 손님이 고른 원두에 가장 잘 맞는 잔을 골라 내어준다.

고양이들이 유유자적 마당을 가로지르고, 오래된 목조 건물의 처마 밑으로 화롄의 짙은 녹음이 스며든다.

비너스 갤러리 (維納斯藝廊, Gallery Venus)

비너스 갤러리는 창고를 개조해 만들었다. 1980년대부터 화롄의 예술적 자존심을 지켜온 공간으로, 다양한 작품들이 입구에서부터 방문객을 기다린다. 화롄의 대리석은 유독 결이 깊고 색이 선명하다. 갤러리 운영자이자 기획자인 베이린(Baylin, 貝林)은 원석을 예술가들의 상상력과 결합해 ‘화롄다운’ 미학을 구축했다. 타이베이의 화려한 야경이나 지우펀의 홍등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대만의 무겁고 원형적인 예술이 화롄 항구 창고 안에 모여 있다.

고루한 박물관과는 거리가 멀다. 지역 작가들이 가루를 뒤집어쓰며 깎아낸 현대 조형물부터 버려진 폐석을 활용한 생활 소품까지 전시 스펙트럼이 넓다. ‘돌에도 체온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촉각적인 전시 방식은 정적인 관람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매끈한 대리석 테이블 위의 차 도구, 돌의 결을 살려 만든 의자 등은 대리석이 화롄 사람들에게 삶을 지탱하는 철학임을 보여준다.

화롄의 대리석 산업은 한때 경제의 중심이었으나 비너스 갤러리 같은 문화 공간을 통해 예술 산업으로 진화했다. 갤러리 밖으로 이어지는 화롄 항구의 풍경은 덤이다. 갤러리에서는 가끔 대리석 워크숍이나 아티스트 토크를 열어 외지인과 지역 예술가를 잇는 가교 역할도 수행한다.

화롄 장미석 예술관 (花蓮玫瑰石藝術舘, Saint Pink Cafe)

화롄 장미석 예술관(花蓮玫瑰石藝術舘)은 일반적인 보석 전시관과 다르다. 화롄의 산과 강에서 채집한 원석을 정교하게 가공해 그 단면에 숨은 풍경을 찾아내는 ‘장미석(Rose Stone)’ 전문 갤러리다. 장미석은 망간 성분을 함유해 특유의 분홍빛을 띤다. 석영이나 벽옥 등 다른 광물과 섞이며 독특한 절경을 만들어낸다.

화롄 사람들은 길가에 굴러다닐 법한 돌덩이를 가져와 겉면을 깎고 다듬어 그 안에 담긴 구름과 폭포, 산맥을 발견해낸다. 화롄의 척박한 지형을 삶의 터전으로 일궈낸 주민들의 끈기와 미학적 통찰이 그대로 담긴 작업이다. 가공되지 않은 원석의 투박한 겉면과 대조되는 내부의 화려한 색채가 반전의 묘미를 준다. 자연이 수백만 년 동안 빚어낸 결과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독특한 경험이다.

예술관 내부에는 한 점에 수억 원을 호가하는 대형 장미석부터 손바닥 크기의 정교한 수석들이 빼곡하다.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면 돌 하나에 담긴 선 하나, 점 하나가 어떻게 대만의 지형적 특성과 연결되는지 이해하게 된다. 조명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분홍빛 단면은 사진이나 영상으로는 담기지 않는 입체적인 깊이감을 자랑한다.

권효정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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