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외화대출 허용해 수요분산…”해외 충격땐 부작용 우려도”

14
대기업 외화대출 허용해 수요분산…'해외 충격땐 부작용 우려도'
한 은행원이 1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 대응센터에서 달러화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기획재정부가 20일 ‘외환시장 수급 개선 방안’을 발표하면서 “그동안 외환 유출에 대해서는 자율적 기조를 유지해온 반면 외환 유입은 대외 건전성 관리를 엄격히 제한해왔다”며 “국제금융·외환시장 환경 변화를 감안해 정책 기조를 재검토했다”고 밝혔다.

대기업 외화대출 허용해 수요분산…'해외 충격땐 부작용 우려도'

기본적으로 외화 유입은 적은데 나가는 금액이 많은 상황이 지속돼 원·달러 환율이 고공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증시 투자를 비롯한 환전 수요는 꾸준하지만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으로 단기적인 외화 조달 여건이 악화했다는 의미다.

정부는 이 같은 문제를 풀기 위해 시장에 외환을 공급할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풀고 은행의 외화 대출 제한을 철폐해 시장에서의 달러 수요를 대체할 수 있게 하기로 했다. 은행이 해외에서 외화 자금을 조달해 기업에 직접 풀게 하겠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번 개선 방안에는 시설 투자에 한해 기업들의 원화용도 외화 대출 제한을 없애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현재는 중견·중소기업이 2010년 6월 말 잔액 기준으로 64억 6000만 달러 한도에서 시설 투자 자금을 조달할 때를 빼면 외화 대출이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대기업도 시설 자금에 한해서는 원화용도 외화 대출이 가능해진다. 외환 당국의 고위 관계자는 “앞으로는 금융사가 조달만 가능하다면 기존의 65억 달러 한도 제한 없이 외화 자금을 들여오도록 해 이를 대출에 쓸 수 있게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이번 규제 완화로 엔화처럼 기준금리가 낮은 국가들의 통화로 자금을 융통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예를 들어 충북 청주에 공장을 지으려는 중소기업이 자금을 조달할 때 원화 대신 엔화 대출을 받는 방식으로 자금 운용이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이 경우 자연스럽게 국내 외화 자금 시장에서 엔화 유동성이 늘어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은행 선물환 포지션(외화 자산-외화부채) 한도를 상향한 것도 주요 대책 중 하나다. 구체적으로 국내 은행의 선물환 포지션 한도를 자기자본 대비 50%에서 75%로, 외국계 은행 지점의 경우 250%에서 375%로 올리는 방식이다. 은행들이 보다 많은 선물 외화 자산을 보유할 수 있도록 유도해 시장에 보다 많은 외화 자금이 돌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다. 정부가 선물환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2020년 3월 국내은행 선물환 포지션 비율을 40%에서 50%(외은 지점의 경우 200%에서 250%)로 올린 이후 4년 9개월 만이다.

금융기관에 대한 외화 유동성 감독 규제도 완화한다. 원래 금융 당국은 올 6월 강화한 외화 유동성 스트레스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는 금융기관에 대해 내년 1월부터 유동성 확충 계획을 제출하도록 강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은 실무 매뉴얼을 바꿔 이 같은 감독성 조치 시행 시기를 내년 7월부터로 유예하기로 했다.

달러 환전 없이 기존의 결제 체계를 활용해 상대국 통화로 결제할 수 있도록 현지 통화 직거래 체제(LCT)도 확대한다. 구체적으로는 한국에서 인도네시아로 대금을 지급할 때 무증빙 한도를 상향한다.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주요 아세안 교역국과 LCT 추가 체결도 검토할 계획이다. 외환 당국 간 국민연금 외환스와프 한도도 기존 500억 달러에서 650억 달러로 확대하고 만기를 2025년 말까지 연장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이 외화 유동성 확대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특히 최근 2거래일 연속으로 원·달러 환율이 1450원대를 유지할 정도로 고환율 여건이 지속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정부에서도 고육지책을 썼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외환 당국에서는 외화 유동성 규제 완화에는 상당히 신중한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대책이 현재의 원·달러 환율 상승세(원화 약세)를 추세적으로 억누르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박상현 iM증권 전문위원은 “최근의 환율 오름세는 국내의 외화 자금 부족보다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치 불확실성과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 기조 전환과 같은 요인이 다방면으로 엮여 있기 때문”이라며 “유동성 규제 완화로 환율 상단을 다소 제한하는 역할을 할 수는 있겠지만 환율 상승을 되돌리는 역할까지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분석했다.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의 판단도 비슷하다. 그는 “경제 펀더멘털이 정상적이라면 모르겠지만 해외 금융 부문에서 충격이 발생한다면 외화 유동성 규제 완화 조치가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며 “이번 규제 완화는 장단점이 명확하다”고 짚었다.

+1
0
+1
0
+1
0
+1
0
+1
0